북미에서 처음 등장한 미니밴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매력있는 세그먼트다. 크로스오버 열풍과 유가상승 등의 이유로 큼지막한 미니밴의 인기가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북미에서는 RV 중 상당히 큰 볼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축구 연습장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열성적인 ‘사커 맘’들에게 넓은 공간과 우수한 실용성을 두루 갖춘 미니밴은 인기가 많다.
한국의 경우 대가족이 한 번에 탈 수도 있고, 필요할 때는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이유로 미니밴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승합차’로 여겨지던 미니밴이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세단의 편의성과 SUV의 실용성, 승합차의 다용도성과 공간활용도를 모두 결합한 고급 RV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캠핑과 아웃도어 활동 등 레저 열풍이 부는 것도 미니밴의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토요타 시에나는 이러한 고급 미니밴 시장의 선구자적 존재다. 오랫동안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 외에 마땅한 신차가 없었던 수입 미니밴 시장에 지난 2011년 진출했다. 북미에서는 이미 미니밴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판매고를 자랑하는 베스트 셀러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현재 미니밴 중 유일하게 풀타임 4륜구동 모델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메리트를 지닌다.
올해 초에는 인테리어를 대폭 손보고 상품성을 개선한 2015년형 시에나가 출시됐다. 국내 미니밴 판매가 활황으로 돌아서고 있는 시점에 다시 한 번 승부수를 건다는 것이 한국 토요타의 속내다. 과연 시에나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한국 미니밴 시장에서 남다른 가치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인가? 3.5 리미티드 AWD 모델을 시승하며 확인해 봤다.
익스테리어는 기존 대비 큰 변화가 없다. 이전 세대 캠리를 닮은 노즈 디자인도 그대로인데, 헤드램프 디자인이 약간 바뀌면서 입체감이 강조됐다. 더불어 LED 주간주행등이 램프 하단에 추가된 점도 변화다. 최신 토요타 패밀리 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무난한 디자인은 특별히 모난 구석이 없다.
후면부의 변화라면 컴비네이션 램프 형상이 바뀐 것. 되려 기존에는 LED 타입이었는데, 벌브 타입으로 바뀌었다. 기존 대비 와이드해 보이는 리어 스탠스는 마음에 들지만, LED가 배제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전장*전폭*전고는 5,085*1,985*1,790(mm)로, 전장은 국내 시판 중인 동급 미니밴-그랜드 보이저, 오딧세이, 카니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짧고 폭도 가장 좁다. 거대한 미니밴을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여성 운전자에게 그나마 덜 부담스럽겠다. 반면 전고는 동급 중 가장 높아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휠베이스는 3,030mm로 짧은 전장에 비해 긴 편이다. 당연히 실내공간 확보에서 잇점이 있다. 전반적으로 운전 편의성과 실용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설계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소한 디테일 업에 그친 외관과 달리 인테리어에는 풀체인지급 변화가 이뤄졌다. 다소 어정쩡한 곡선으로 채워져 있었던 센터페시아는 최신 토요타 모델답게 깔끔하게 정리됐다. 터치 방식이 조합된 스크린과 LCD 디스플레이가 적용됐다. 버튼도 재배치되어 구형 대비 조작 편의성이 좋아졌다. 다만 좌우 폭은 넓은 편인데 터치 스크린이 운전자를 향해 기울어지지 않고 정면으로 배치돼 내비게이션 등을 사용할 때 기울어져 보이는 점은 아쉽다.
고리타분해 보였던 스티어링 휠도 세련된 3 스포크 타입으로 바뀌었고, 계기판 역시 최근 페이스 리프트된 캠리와 비슷한 형상이다. 대쉬보드와 센터 콘솔이 분리된 레이아웃이 이 차가 미니밴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우드와 가죽의 재질감은 고급 세단 못지 않다.
7인승인 시에나의 좌석 배열은 2-2-3 형태로, 2열에는 2개의 오토만 시트가 위치하고 바닥으로 접어 넣을 수 있는 3열 시트도 사람을 앉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7인승 구조에서 오는 압도적인 공간의 여유는 포기하기 힘들다.
차내에서 가장 편안한 좌석인 2열 시트는 끝까지 뒤로 밀고 다리 받침대를 펴면 항공기 비즈니스석 못지 않은 안락함을 제공한다. 리어 휠하우스 때문에 완전히 눕힐 수 없다는 점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그래도 센터 콘솔 뒷쪽을 슬라이딩하면 숨은 수납공간이 생기는 등 토요타의 미니밴 연륜이 그대로 묻어난다.
9인승이나 11인승 미니밴이 사람을 가득 채워 타면 트렁크 공간이 거의 없어지는 것과 달리, 시에나는 시트를 펴든 접든 넉넉한 트렁크 용적을 자랑한다. 시트를 폈을 때는 바닥 깊숙이까지 파인 공간에 짐을 싣을 수 있고 시트를 접으면 2열까지 탁 트여 긴 화물도 부담이 없다.
안전 면에서 시에나는 빛을 발한다. 동반석 시트쿠션 에어백을 신규 추가해 총 8개의 에어백이 장착되며, 기존 에어백의 형상을 개선, 안전성을 강화했다. 그 밖에도 사각지대 경보장치(BSM)과 후측방 경보장치 등 안전장비를 충실히 탑재했다. 안전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 점은 마음에 든다.
주행 성능은 어떨까. 파워트레인은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인 부분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시에나는 한 종류의 엔진만 탑재되는데, 2GR-FE라는 코드명의 3.5L V6 가솔린 엔진이다. 아발론, 캠리, 렉서스 ES 350, RX 350 등에 탑재되며, 로터스 에보라와 슈퍼 GT 사양의 코롤라 레이스카 등에도 유용돼 내구성과 성능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6속 자동변속기가 맞물리고, 전륜구동 또는 4륜구동 구동계가 탑재된다.
최고출력은 266마력, 최대토크는 33.9kg.m에 이른다. 미니밴에 이 정도의 출력이 필요하겠나 싶지만, 실제로 주행해보면 출력에 여유가 있다는 점은 항속 주행은 물론 일상 주행에서도 운전에 여유를 가져다 준다. 기어비가 매우 길고 중량이 무거워 동 출력대의 타 차종과 비교해보면 폭발적인 가속감은 아니지만, 토크가 꾸준히 뿜어져 나오면서 매끄러운 가속이 가능하다.
시에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4륜구동을 채택해 노면이 젖어있거나 눈이 와도 안정적인 트랙션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 2014년부터 4륜구동 모델이 추가됐는데, 노면과 기상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에 산다면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다. 미니밴인 만큼 일상주행에서 AWD의 메리트를 확인할 기회는 거의 없지만, 유사 시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든든하다. 더불어 AWD 모델에는 펑크가 나도 일정 거리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런플랫 타이어가 장착돼 안전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
서스펜션이 기본적으로 승차감 위주로 세팅돼 부드러운 편이지만 코너링에서 어이없이 휘청이지는 않을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전반적인 주행 감각은 RV보다는 차고가 높은 세단에 가깝고, 모든 움직임에 여유가 느껴진다.
가솔린 엔진답게 정숙성이 뛰어나고 진동이 적어 실내는 달리는 응접실같다. 다만 운전석이 전진해 있어 스티어링 휠로는 엔진 진동이 꽤 느껴지는 편이다. 또 프론트 휠 하우스가 운전석 레그룸까지 밀고 들어와 풋레스트가 불편한 점도 거슬린다. 최대 단점은 운전석 사이드 미러가 평면유리라는 점. 몸집이 큰 미니밴임에도 후측방 시야가 극히 제한돼 차선 변경 시 간혹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나마 사각지대 경보장치가 탑재돼 제한된 시야를 보정해 준다.
출력에 여유가 넘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연비다. 공인연비는 전륜구동 모델이 8.5km/L, AWD가 8.1km/L이다. 시승 간 연비에 집중하지 않고 일상적인 주행 습관으로 운전했지만 공인연비만큼의 연비를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시내 연비는 5~6km/L 수준을 맴돌았고, 간선도로에서는 8km/L에 조금 못 미쳤다. 복합 실연비는 6.5km/L를 기록했다. 데일리 카로 타기에는 확실히 부담스럽다. 디젤 엔진이 생각나지만, 안타깝게도 시에나에는 어떤 디젤 엔진도 탑재되지 않는다.
시에나는 나름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탁월한 패밀리 미니밴이다. 출력은 여유롭고, 공간은 넉넉하다. 2, 3열이 안락하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이나 손님을 모시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동급 중 유일하게 탑재된 AWD 파워트레인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카니발이라는 너무나도 강력한 라이벌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지난 해 풀 모델 체인지된 카니발은 상품성이 크게 높아져 녹록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카니발에도 7인승 가솔린 모델이 추가되면서 “안락한 7인승 가솔린”의 비교 우위조차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니발 7인승 가솔린과 비교했을 때 1,500~2,000만 원 가까이 비싼 시에나가 그 만큼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AWD의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AWD 수요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확고한 특장점이 되지 못한다. 2011년 출시 이래 2,000대를 넘지 못한 누적 판매가 부족한 경쟁력의 증거다. 참고로 카니발은 지난 달에만 5,000대가 넘게 팔렸다.
북미에서 판매됐던 2.7L 4기통 가솔린을 도입해 유지 부담을 줄이거나 스포츠 디자인, 8인승 버전 등을 도입해 시에나만의 색깔을 찾을 필요가 있다. 시에나만의 오롯한 아이덴티티가 정립된다면 색이 바랜 “고급 미니밴”이라는 이름표를 다시금 빛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에나가 한국 시장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