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F10 M5는 이전 E60 M5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엔진은 배기량을 낮춘 V8에 트윈터보를 더해 상황에 따라 한 없이 부드럽게 주행할 수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게 달릴 수도 있다. 7단 M DCT 역시 부드러움이나 엄청난 과격함을 모두 표현해 낼 수 있다. 5세대 M5는 양 끝단의 특성을 부드러운 건 더 부드럽게, 거친 것은 더 거칠게, 그 모든 것을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해서 탈 수 있는 차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또 거의 모든 모델에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불리는 고성능 모델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원조를 꼽자면 M3와 M5를 들 수 밖에 없다. M의 원조인 M1과 5시리즈를 기본으로 성능을 높인 E12 M535i를 통해 M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후, 정식으로 M5라는 이름을 단 첫차는 E28 5시리즈를 베이스로 개발됐다. E28 M5는 1985년 등장과 동시에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M5는 E28, E34, E39, E60을 거쳐 F10 M5로 진화했다. (E28, E34, E39, E60, F10 등은 BMW 5시리즈의 세대를 구분하는 코드명으로 현재 판매되고 있는 5시리즈가 F10이다.) 이번 M5는 지난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개인적으로는 V8 5.0 400마력 엔진과 수동 6단 변속기를 얹었던 E39 M5에 대한 로망이 매우 크다. 그 때 그 수동변속기의 짜릿했던 손맛과 강렬한 속도로 4도어 세단을 쏘아 보내던 엄청난 토크의 여운이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하다. 그 때만 해도 M5에는 수동 변속기만 장착됐었고, 그 파워트레인은 환상적인 로드스터 Z8에 그대로 이식되었었다.
E60 M5는 무척 거칠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엔진은 강력했고, 하체는 단단했고, 변속기는 사나웠다. 너무 강하고, 너무 거칠어서 그대로 몰고 서킷으로 들어가도 될 만큼 놀라운 스포츠카였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 만에 최신형인 F10 M5를 만났다. 지금까지 모든 M5들이 그랬듯이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면 그냥 BMW처럼 보이지만 교묘하게 숨겨놓은 흉포한 발톱과 이빨을 찾아낼 줄 아는 이들에겐 언제나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M5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원한 파란색 바디의 M5는 5시리즈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과격함을 품은 바디라인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엄청난 양의 공기를 흡입하기 위해 크게 벌린 입처럼 과격한 범퍼 하단 에어 인테이크와 뾰족한 스타일의 사이드 미러, 낮게 웅크린 차체, 펜더에 뚫려있는 에어 벤트, 거대한 20인치 알로이 휠, 신의 한 수라 할 만한 얇은 리어 스포일러, 좌우에 각각 자리한 트윈 머플러. 이 것들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야수의 발톱과 이빨들이다.
하지만 F10 5시리즈 자체가 이전 5시리즈들에 비해 다소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번 M5도 덩달아 과거보다는 조금 더 온순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온순해 보인다고 긴장을 늦췄다가는 큰 코 다친다.
도어를 열자 실내가 핏빛 붉은 가죽으로 덮여 있다. 외부의 파란색과 대비된 강렬함이 너무도 자극적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근육질의 시트는 어깨 부분이 앞으로 꺾이도록 각도 조절이 되고, 옆구리를 부풀려서 몸을 조여주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안락함에서도 전혀 아쉬움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버킷시트 다운 단단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M5가 추구하는 이상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M3, M4, M6와 함께 사용하는 M 스티어링 휠은 최근 스포츠카에서 많이 사용하는 D컷 타입은 아니지만 긴장감이 돋보인다. 어깨 너머로 살짝 솟아 오른 시프트 패들이 예리하다.
계기판은 의외로 심심하다. 일반 5시리즈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고속도가 330km/h까지 표기돼 있고, 회전계 가운데 M 로고가 붙어 있고, 그 아래 디지털 모니터에 표시되는 정보가 조금 다르다는 것 정도가 차이다. 하지만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차이다.
과거 M3에는 회전이 증가하면 레드존에 이르기 전 회전계 바깥으로 오렌지색 불이 차례로 들어오고, 다시 레드존에 이르면 빨간색 불이 들어와서 정확한 변속 타이밍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 줬고, 지난 M5는 HUD에 회전계를 표시해 주고, 거기서 변속 타이밍을 표시해 줬었다. 이번 M5에도 HUD에 변속 타이밍을 알려주는 신호가 적용돼 있다고 하는데 시승 당시의 설정에서는 그 신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설정에서 변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짧은 시승으로 인해 미처 설정을 바꿔보지는 못했다.
데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은색 트림은 그냥 매끈한 트림이 아니고 표면이 까칠까칠한 타입이어서 자꾸 손을 대서 만져보고 싶어진다. 손이 가요, 손이 가.
그리고 시선이 모이는 곳, 센터 터널 가운데 물방울 모양의, 뭔가 첨단처럼 보이는 기어 레버가 자리하고 있다. E60 M5에서 선 보였던 SMG 기어레버를 쏙 빼 닮았지만 살짝 분위기가 다르다. 사실은 아래쪽이 가늘어지는 모습이 좀 어색하다. 존재감이 덜한 느낌이다.
기어 레버의 모양은 상당히 많이 닮았지만 주변 레이아웃까지 함께 보면 이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주변 버튼들의 배열이 V자 형태로 바뀌었고, 버튼의 숫자도 더 늘어났고, 세팅을 조절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번 M5의 주행특성 세팅을 정리하면 총 4가지의 특성을 각각 3단계로 수동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어 레버 바로 아래에 무선전화 수신감도 그래프처럼 생긴 버튼은 기어 변속 타이임을 조절하는 버튼이다. 1단계에서는 비교적 낮은 회전수에서 자동으로 시프트 업이 된다. 2단계가 되면 좀 더 높은 회전수에서 변속하고, 3단계가 되면 꽤 높은 회전수에서 변속하게 된다. 이전 M5에서는 이 버튼이 5단계, 시퀀셜 모드에서는 6단계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3단계 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변속 타이밍을 조절하는 기능은 일반 자동차에서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런데 일반 BMW는 스포츠 모드가 그리 과격하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이번 M5의 2단계가 일반 BMW의 스포츠 모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스포츠 모드가 좀 더 적극적인 브랜드는 폭스바겐과 아우디를 들 수 있는데, M5의 3단계는 이들보다 좀 더 과격하다.
6단에서 100km/h로 주행하다가 변속타이밍을 2단계로 바꾸면 기어가 5단으로 내려가고, 3단계로 바꾸면 기어는 4단으로 내려와서 회전수가 높은 상태로 주행하게 된다. 3단계면 변속 타이밍이 확실히 느려지면서 고회전을 더 오래 사용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무척 재미있는 주행이 가능해 진다.
레버 좌측에는 4개의 버튼이 배열돼 있는데 가장 아래쪽 버튼은 스티어링 휠 답력을 조절한다. 답력은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의 3단계로 조절된다. 당연히 스포츠 플러스가 되면 스티어링 휠이 무척 무거워지면서 저속에서도 돌리는데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주차할 때 이 단계를 선택하면 팔 운동이 상당히 되겠다. 고속에서는 스티어링 휠 조작이 훨씬 정교해져 안정성에 크게 도움이 된다.
그 아래에는 댐퍼 강도를 조절하는 버튼이 자리한다. 역시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의 3단계로 조절되며, 컴포트에서는 일반 5시리즈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살짝 단단한 수준의 댐퍼로 설정돼 편안한 주행을 제공하고,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로 가면서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더 단단해진다.
3번째는 엑셀에 대한 응답성을 조절한다. 가장 낮은 수준은 컴포트가 아닌 이피션트이고,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가 더해진다. 이피션트에서는 엑셀에 대한 응답성을 낮춰서 연료 효율성을 높여 준다. 덕분에 일상주행에서는 매우 편안한 가속감을 즐길 수 있다. 스포츠 플러스가 되면 엑셀 응답성이 매우 예민해져서 엑셀을 살짝 만 밟아도 엔진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엑셀을 밟는 순간에 충격이 전달되기도 한다.
그 아래에는 차체 자세 제어 장치인 DSC를 끄는 버튼이 자리한다.
이들 외에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들 설정의 조합을 다양하게 운전자가 원하는 상태로 설정할 수 있는 단축 버튼들이 있는데, 이번에는 짧은 시승으로 인해 다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이번 M5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파워트레인이다. 매번 신형 M5가 나올 때마다 획기적인 성능 업그레이드가 있었는데, 이전 모델들이 직렬 6기통에서 V8, 그리고 다시 V10으로 엔진을 키웠다면 이번에는 최근 BMW의 기술력이 집약된 터보 엔진이 적용됐다. 덕분에 엔진은 다시 V8로 줄어들었다.
새 엔진은 V8 4.4리터 직분사 트윈터보로 최고출력 560마력, 최대토크 69.4kgm, 0~100km/h 가속 4.3초의 성능을 뿜어낸다. 이전 세대 M5가 당시 F1 엔진 기술을 적용한 V10 엔진으로 507마력, 0~100km/h 가속 4.7초였던 것에 비해 0.4초가 단축됐다.
변속기는 싱글클러치 반자동 변속기였던 이전 7단 SMG III 대신 처음으로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 M DCT가 적용됐는데 기어 레버는 전자식으로 작동되지만 다른 BMW 모델들에 있는 P 버튼이 따로 없다. 주차할 때는 그냥 D인 상태에서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면 된다.
기어 레버를 N에서 우로 한 번 밀어주면 D가 되고, 한번 더 밀어주면 S가 된다. S는 흔히 봐 왔던 스포츠 모드가 아니고 시퀀셜 모드다. 수동모드라고 보면 된다.
우선 D에 두고 그냥 달려 봤다. 가속력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다. 덩치를 잊게 하는 달리기 실력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 틀어 보면 아쉬움도 남는다. 최고출력이 무려 560마력이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왠지 0~100km/h 가속이 3초 대로는 끊어줘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최근 급격히 성능이 높아지고 있는 수퍼카들 영향이다. 물론 M5는 수퍼카들에 비해서 무게가 월등히 무거울 뿐더러 공기 역학적으로도 불리할 수 밖에 없는 디자인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 실력으로도 인정할 만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그렇다는 거다. ’3.9초만 되도 좋을 텐데’라고 말이다.
가속은 속도 제한이 걸리는 영역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 제한에 딱 걸리는 순간 드는 생각은 언제나 ‘이 제한이 없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갈까?’하는 것이다. 가속되는 여유로 볼 때 300km/h를 넘기는 것은 쉬울 듯 여겨진다.
엔진 회전은 역시 BMW답게 정말 매끄럽다. 그런데 이전 E60 M5와 달리 터보 엔진이 적용되다 보니 엔진 회전수가 최대 6,300rpm 밖에 안 된다. 이전 E60 M5는 V10에 최대회전수가 8,000rpm이 넘었었다. 자연흡기 엔진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고회전의 환상적인 맛을 즐길 수 없게 됐다. 물론 출력과 토크가 더 강력하다 보니 달리기 실력이 더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터보레그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으로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던 그 때의 M에 대한 그리움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M5를 그냥 D에만 두고 탄다면 M5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선 D라 하더라도 다양한 주행 설정이 가능하다.
시퀀셜 모드로 옮기면 기어 레버나 시프트 패들을 이용해서 수동으로 변속할 수 있다. 물방울처럼 생긴 기어 레버를 앞으로 밀면서 기어를 내리는 작동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손바닥이 착 감기듯이 덮는 데다 조작할 때 절도감도 좋다. 하지만 실제로 서킷이나 산길을 달릴 때라면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코너에 들어서면서 기어를 내리면 순식간에 회전수를 높여서 기어를 맞춰주는 실력이 대단하다. 하긴 지난 M5 SMG 때도 변속은 기가 막혔었다. 이제는 듀얼 클러치로 진화한 만큼 부드러움도 완벽하게 갖춘 상태에서 환상적으로 빠른 변속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길을 잠시 달려 봤다. 당연하다는 듯이 스티어링과 댐퍼, 엑셀 반응을 모두 스포츠 플러스로 설정하고 들어섰는데, 노면에 염화칼슘이 남아 있기도 하고, 아직은 본격적으로 산길을 즐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속도를 높이기 어려웠다. 너무 예민해서 엑셀을 조금만 과하게 밟아도 휠 스핀이 일어난다. 코너에서는 당연히 오버스티어다.
생각해 보니 노면이 아직 미끄러운 탓도 있었지만 고르지 않은 노면에서 많이 단단한 댐퍼로 인해 수시로 차체가 튕겨지면서 접지력을 잃기 일쑤였다. 거기다 엑셀에 대한 반응이 너무 예민해서 엑셀을 조금만 과하게 밟아도, 아니 다른 스포츠카 수준으로 코너에서 엑셀을 전개해도 토크가 튀면서 휠 스핀이 일어난 것이다. 터보레그가 거의 없다고는 해도 예민한 응답성과 터보 엔진의 터지는 토크 등이 서로 같이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댐퍼와 엑셀 응답성을 스포츠로 바꾸도 다시 달려 보니 한결 수월하게 엑셀을 밟을 수 있고,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었다. 이런 특성은 노면이 썩 고르지 않은 올림픽 도로에서도 비슷했다. 스포츠 플러스로 세팅하면 지나치게 통통 튀고, 엑셀반응에서 충격이 오기 일쑤였다.
노면이 좋지 않은 국내 도로에서는 굳이 스포츠 플러스를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노면이 비교적 좋은 고속도로에서는 스포츠 플러스로 세팅했을 때 안정감이 확실히 더 높아졌다. 독일 아우토반이라면 스포츠 플러스의 진가는 탁월할 듯 보인다. 물론 서킷도 마찬가지다.
이런 차들의 시승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이런 저런 제약으로 인해 이 차가 가지고 있는 실력을 모두 끌어내서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M5는 기회가 된다면 꼭 서킷에서 달려봐야 할 차다. 하지만 M이 추구하는 바가 그렇듯이 아무리 강력한 파워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평소에는 얼마든지 일상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M5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울 수 있으면서, 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완벽한 야누스에 아주 근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