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R-V는 컴팩트 SUV 중 주행감각이 가장 승용차에 가까워서 편안한 운전이 돋보이는 모델로 늘 기억돼 왔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이번 뉴 CR-V 역시 최고의 장점은 편안한 운전감각이다. 선 굵은 터치로 살짝 바뀐 앞, 뒤 모습에서 세련된 도심형 SUV의 모범적인 스타일이 돋보이고, 넓고 조용한 실내는 주행의 편안함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최신 경쟁 모델들에 뒤쳐지는 CVT, 편의 장비 등은 속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도심형 크로스오버, 혹은 컴팩트 SUV 분야에서 혼다 CR-V는 큰 의미를 갖는 모델이다. 기아 스포티지가 개척한 이 부문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면서 한 때 이 부문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모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워낙 많은 경쟁자들이 등장하다 보니 그 위상이 많이 약해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국산 모델들의 뛰어난 품질과, 독일산 디젤 모델들의 높은 연비와 프리미엄 이미지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거기다 더 작은 미니 컴팩트 SUV까지 가세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혼다는 지난 2011년말 국내 출시한 4세대 CR-V의 페이스리트프 모델을 선보이면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일본 3사 중 하이브리드를 강력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토요타, 디젤을 투입한 닛산에 비해 혼다는 여전히 가솔린 외에 특별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낮아지고 있는 유가가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줄 지, 준비 중인 디젤 모델이 조만간 투입될 때까지 얼마나 잘 버텨 줄 지 안팎에서 우려가 크다.
페이스리프트인 만큼 디자인에서 큰 변화는 없다. 앞 뒤 모습을 조금 손 본 정도다. 앞모습에서는 헤드램프에 주간 주행등이 더해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좀 더 굵은 터치가 더해지면서 정돈되고 선명한 인상을 만든다.
뒷모습에서도 창문 아래를 가로지르는 두터운 크롬 바와, 범퍼 좌우에 포지셔닝 렘프가 더해져 더 선명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를 갖췄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눈에 확 띄는 변화는 아니어서 이전 모델과 크게 구분되는 정도는 아니다.
인테리어도 큰 변화는 없다. 국내에서 장착한 것으로 보이는 오디오가 센터페시아 상단에 추가됐고, 센터 터널과 시트 등 부분적으로 디자인이 살짝 바뀐 정도가 전부다. 전체적으로 선명한 선들이 주를 이루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무난하고 아주 차분하다.
단단한 감각이 돋보이는 스티어링 휠 너머로 보이는 계기판은 가운데 속도계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디자인이 단정하면서 단단한 느낌이다.
뉴 CR-V에는 네비게이션을 적용하는 대신,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인 ‘디스플레이 오디오(Display Audio)를 탑재했다고 한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음악 어플리케이션이나 네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을 센터페시아 화면을 통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마침 기자의 스마트폰이 상태가 좋지 않아 직접 테스트해 보지는 못했다.
몸을 지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역시 편안함이 돋보이는 시트에는 통풍기능은 없고, 열선만 내장됐다. 스티어링 휠 히팅은 없다. 스티어링 휠 좌측에 마련돼 있는 빨간색 이코노미 버튼은 경제 운전을 돕는다.
엔진은 기존 2.4 i-VTEC 엔진이 직분사 엔진으로 바뀌면서 최고출력은 190마력에서 188마력으로 조금 낮아졌지만 최대토크는 22.6kg.m에서 25.0kg.m로 향상됐다. 변속기는 자동 5단에서 CVT로 바뀌면서 연료 효율이 높아졌다. 복합 연비가 기존 10.4km/ℓ 에서 11.6km/ℓ 로 높아졌다. 구동방식은 기존에 2WD와 4WD가 모두 판매됐었는데, 이번에는 4WD만 출시됐다.
가속력은 경쾌한 수준이다. ‘엔진의 혼다’답게 회전이 매끈하게 올라가고 사운드도 경쾌하다. 반면 변속기가 CVT다 보니 급가속 시에는 엔진이 먼저 최고 회전수까지 올라간 후 계속해서 속도를 끌어올린다. 가속하는 동안에는 엔진 회전수가 계속 높게 유지되다 보니 엔진 사운드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 CVT에는 스텝트로닉이나 시프트패들로 조절하는 수동모드가 없고, 스포츠 모드와 로우 모드만 갖춰져 있다.
D에서 100km/h로 주행할 때 회전수는 1,500~1,600rpm 정도를 유지한다. 기어비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도로 여건에 따라 수시로 회전수가 조금씩 변하는 것이 재미있다. S모드로 전환하면 정속 상태에서도 회전수를 좀 더 높여서 주행하다가 빠른 응답성을 제공한다. 100km/h에서 거의 3,000rpm 정도까지 올라간다.
일반적인 주행에서 연비 개선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CVT이겠지만 다이나믹한 주행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닛산 계열의 CVT들이 자동 변속기 못지 않은 다이나믹함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많이 아쉽다. 가장 최근에 캐시카이에 얹힌 CVT는 스포츠모드나 수동모드에서 회전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변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멀모드에서도 급가속하면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회전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변속하도록 해 다이나믹한 주행을 돕는다. 물론 부드럽게 주행할 때는 연비가 크게 향상된다.
CR-V의 최대 장점은 역시 편안한 주행이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특별히 더 나아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CR-V의 주행안정성과 안락함은 이미 오랫동안 정평이 나 있다. 주행 감각이 거의 승용차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분명 시트포지션도 높고 차체도 높은데 주행에서는 SUV다운 주행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의외인 것은 주행 중 차체 강성이 부족한 듯한 삐걱거림이 있다는 것이다. 2, 3세대 CR-V에서는 없었던 것일 뿐더러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점이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뉴 CR-V는 기본기가 매우 좋은 차다. 매끈하게 회전하는 엔진과 안정적인 주행 감각이 돋보인다. 반면 CVT는 연비를 조금 높여 주는 것 외에는 매력이 별로 없다. 비록 CVT라 하더라도 매력적인 엔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수동모드 정도는 갖춰줬어야 했다. 편의 장비가 부족한 점도 많이 아쉽고,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2WD 모델이 빠진 것도 아쉽다. 결국 편의 장비나 다이나믹한 주행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5, 60대나 주부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는 차이지만 더 많은 것을 갖춘 경쟁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