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i40가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더욱 샤프한 디자인과 첨단 듀얼클러치 변속기(DCT)로 무장했다. 시승한 ‘D 스펙’ 모델은 주행안정성과 안락함을 잘 조화시킨 독일차 스타일의 매력적인 하체를 가졌다.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함께 ISG를 기본 장착하고, 공기의 흐름을 고려한 디자인 적용으로 기존 i40의 큰 약점이었던 연비는 이제 동급 경쟁모델들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현대차가 전략적으로 개발한 i40는 탄탄한 주행실력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기반을 구축해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디젤 엔진의 적용으로 큰 기대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1.7 디젤 엔진의 성능과 연비 등으로 인해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판매되는 모델도 유럽 성향의 디젤 엔진이나 왜건보다는 가솔린 엔진과 세단의 판매가 높았다.
현대가 i40의 도약을 위해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자체 개발한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다. 두 개의 건식 클러치와 클러치 엑추에이터, 기어 엑추에이터, 변속제어 유닛, 소프트 웨어 등을 모두 독자 개발했다. 토크 대응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건식 클러치를 적용한 점에 관심이 간다.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토크컨버터를 없애고, 변속기 내에 2개의 클러치를 적용해, 한 쪽 클러치에 기어가 연결되어 주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쪽 클러치는 그 다음 기어를 미리 연결해서 준비하고 있다가 신속하게 변속할 수 있는 첨단 변속기로, 자동변속기의 편의성과 수동변속기의 뛰어난 성능과 연비를 모두 확보한 꿈의 변속기라 할 수 있다. 이로써 현대차는 수동, 자동, CVT, DCT 등 모든 종류의 변속기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몇 안 되는 메이커 중의 하나가 됐다. 이전에 개발했던 6단 DCT는 적극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반면 이번 7단 DCT는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다.
국산 중형 세단에 DCT가 적용된 예로 1.5 디젤 엔진과 게트락제 6단 DCT를 얹은 르노삼성 SM5 D가 이미 있긴 하지만, 신형 i40는 1.7 디젤 엔진과 자체 개발한 7단 DCT가 처음으로 적용된 만큼 이번 시승의 모든 관심이 DCT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폭스바겐 파사트는 140마력 2.0 디젤 엔진과 6단 DCT가 얹힌다.
주차장에 도열해 있는 신형 i40들은 매우 깔끔하게 세미 정장을 차려 입은 스타일이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관심이 가는 왜건 모델은 시승차로 준비되지 않았다. 시승차들은 모두 디젤 엔진과 DCT를 장착한 D 스펙 살룬 모델들이었다.
디자인이 새롭게 바뀐 것도 신형 i40의 키 포인트 중 하나다. TV 광고의 멋진 영상을 통해 선보인 새로운 디자인은 선이 선명하고 샤프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기존 i40보다 분명 나아졌지만 아반떼나 i30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닮은 점은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겠다. 그리고 차체가 더 작아 보인다는 점도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도 차체 크기는 쏘나타보다 조금 작다. 길이가 110mm 짧고, 휠베이스도 35mm 짧다.
공기 저항을 고려한 장치도 새롭게 적용됐다. 안개등 부분에서 휠 아치쪽으로 연결되는 에어커튼이 추가됐고, 하체에는 풀 언더커버를 적용해 공기 흐름을 개선했다. 당연히 연비와 주행 특성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실내는 큰 변화를 알아 차리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시승에서 관심이 모두 파워트레인에 가 있다 보니 실내 디자인은 이전 모델과 꼼꼼히 비교해 보지도 않았다. 편의 장비 등에서도 큰 변화는 없다. LF 쏘나타에까지 확대 적용된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ASCC)은 신형 i40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통풍시트와 뒷좌석 열선 등은 이미 있던 기능들이고, 시동을 끄면 전원이 동시에 차단되는 시스템도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다. 사진에 보이는 투톤 시트와 데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카본 장식은 D 스펙 모델에 제공되는 것들이다.
서둘러 시승에 임했다. 시승은 워커힐 호텔에서 출발해서 춘천 로드힐스 CC까지 왕복 136km에 걸쳐서 이뤄졌다. 거의 대부분이 고속도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엔진은 유로 6 기준을 통과한 신형 1.7 VGT 디젤로 최고출력은 기존의 140마력/4,000rpm에서 141마력/4,000rpm으로 거의 그대로인데, 최대토크는 33.0kgm/2,000~2,500rpm에서 34.7kgm/1,750~2,500rpm으로 소폭 향상됐고, 최대토크 발생 회전수도 낮아져서 실용영역에서 조금 더 나은 주행성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소음과 진동이 대폭 개선됐다고 했는데, 아이들링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로 전달되는 진동은 많이 남아 있다.
거기다 7단 DCT에 ISG(Idle Stop & Go)까지 적용되면서 제원상 연비는 기존 15.1km/l에서 16.7km/L(살룬, 16인치 타이어 기준)으로 10% 향상됐고, 제원상 발진 가속력은 기존 11.6초에서 10.8초로 빨라졌다. 발진 가속이 정확하게 0~100km/h 가속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ISG는 주행하다 차가 잠시 정차하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고, 출발을 위해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동으로 시동을 걸어주는 시스템이다.
시승 결과 발진 가속력은 분명히 더 나아졌다. 가속이 훨씬 더 매끄럽고 회전 상승이 빠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가속력 10.8초가 말해주듯, 7단 DCT를 떠올리며 기대했던 파워풀한 가속력 수준은 아니다. 차의 덩치를 고려했을 때 140마력 1.7리터 디젤 엔진이 강력한 달리기를 선보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만 일상적인 주행에서 전혀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매끈하고 경쾌한 달리기 정도는 된다. 중고속까지 꾸준하게 속도를 밀어 올리는 실력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관심의 대상인 DCT의 완성도는 어떨까? 현대차 측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작동은 무척 매끄럽다. 변속 충격은 찾아 볼 수 없고, 직결감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 하지만 현대차의 DCT는 매끄러움과 연료 효율에 비중을 두고 세팅된 듯하다. 파워풀함에 있어서는 그리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기어비도 7단 DCT치고는 꽤 촘촘하게 설정돼 있다. 100km/h로 주행 시 7단에서의 회전수가 1,750rpm 정도로, 독일 2리터 디젤 엔진차들이 대체로 1,500rpm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차체 크기 대비 출력이 부족한 1.7 VGT 엔진 때문으로 해석되는데, 2리터 엔진 대비 낮은 배기량에서 얻은 이점을 높은 회전수가 상쇄해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승을 통한 결론으로 i40 급의 차체에는 2.0리터 디젤 엔진이 적당하다고 보여진다.
DCT의 변속 프로그램이 매끄러운 변속을 지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듯이, 수동으로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를 보정해 주는 부분도 정교하고 파워풀하기 보다는 반 템포 여유 있게 따라가는 수준이다. 최고 회전수가 낮은 디젤 엔진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회전수를 보정해 주는 프로그램은 현대 기아차에서는 분명 처음 적용된 것이어서 무척 반가운데, 이왕 DCT를 적용한 만큼 좀 더 빠르고, 짜릿하게 회전수를 매칭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어 레버를 좌측으로 옮겨서 수동으로 조작할 때 기어 레버의 조작감은 거의 빵점 수준이다. 특이 기어를 내릴 때의 절도 있는 조작감이 중요한데, 손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멍청한 조작감 때문에 다시는 기어 레버로 조작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시프트 패들이 있어서 좀 다행이지만, 시프트 패들도 조작 시 절도감이 좀 더 경쾌하면 좋겠다. 지금도 단절감이 있긴 하지만 그냥 스프링을 누르는 느낌이지 경쾌하게 명령을 내리는 느낌은 부족하다.
시프트 패들의 디자인도 여전히 불만이다. 도입 초기보다 손가락이 닿는 부분 면적이 넓어지긴 했지만, 손가락이 닿는 부분을 위 아래로 길게 디자인해서 조작의 정확성을 높이는 쪽이 더 바람직하다.
반면 계기판에 기어 포지션을 ‘D’로 표시해 주고, 그 오른쪽에 현재의 단수를 표시해 주는 기능은 반갑다. 여러 독일차들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기능이다.
독자 개발한 7단 DCT는 우선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변속은 충분히 빠르고 매끄럽다. 덕분에 연비도 향상됐다. 수동모드로 기어를 내릴 때 회전수를 보정해 주는 기능도 반갑다. 앞으로 운전자가 주행의 즐거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더 정교하게 다듬고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한국 메이커인 현대차가 독자개발한 최첨단 변속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렇다면 i40 입장에서 이제 아쉬운 부분은 1.7 디젤 엔진이다. 아니 사실 패밀리 세단에 1.7 정도면 충분히 여유롭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i40가 쏘나타보다 비싼, 그리고 ‘PYL’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델임을 감안하면 1.7 디젤 엔진은 아쉬움이 크다. 매우 경쾌한 달리기를 선사하는 투싼 ix의 2.0 R 엔진급의 성능이어야 제격이다. 현재의 7단 DCT가 커버할 수 있는 토크의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2.0 R 엔진과 7단 DCT가 조합을 이룬다면 매우 매력적인 파워트레인이 될 것 같다.
일반형보다 좀 더 단단하게 세팅된 ‘D 스펙’ 모델의 서스펜션 세팅은 솔직히 나무랄 데가 없다. 그 동안 편안한 승차감을 선호해 온 운전자라면 좀 딱딱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유럽 출신의 자동차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수준의 승차감이다. 저속에서든 고속에서든 엉덩이로 전달되는 반응이 무척 안정적이고, 안락함도 충분히 갖췄다.
스티어링 감각도 많이 개선됐다. 고속으로 올라가면서 살짝 무거워지면서 급차선 변경에서도 허둥대는 느낌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1.7 VGT 수준의 파워를 감당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무척 큰 기대를 가지고 시승했던 뉴 i40는 확실히 매력적으로 변했다. 지난 14년간 1천 여대의 신차를 시승하고, 최근까지도 매주 한 두 대의 신차를 시승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경쟁모델들을 모두 테스트 해 본 입장에서 볼 때, 주행감각과 변속기의 성능 등에서 유럽 어떤 모델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시장에서 얼마나 팔릴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앞서도 말했듯이 쏘나타보다 작은 차체이면서, 조금이나마 더 비싼 모델임을 감안하면 과연 경쟁력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포지셔닝의 문제다. 쏘나타가 곧 디젤 모델도 선보일 텐데, 쏘나타 역시 DCT를 채택한다면, 거기다 2.0 VGT 디젤 엔진과 함께 적용된다면 i40의 입지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수입차 중에서 경쟁모델로 지목한 폭스바겐 파사트도 머지 않아 신형 모델이 출시된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국산과 수입 모델을 통틀어서 완성도와 경쟁력이 가장 높은 중형 모델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