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첫 국산 신차가 쌍용 티볼리가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르노삼성은 새해 첫 월요일인 지난 1월 5일, 중형 세단 SM5의 부분변경 모델인 SM5 노바를 선보였다. 3세대 SM5가 2010년 1월에 출시되고 꼭 5년 만의 변화다. 물론 도중에 SM5 플래티넘이 선보인 바 있으니 SM5 노바는 두 번째 부분변경 모델이 되겠다.
SM5는 르노삼성과 명운을 함께 하는 모델이다. 처음 삼성자동차가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 당연히 르노삼성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모델이다. 부진을 겪었던 르노삼성이 지난 해 QM3 출시와 함께 탄력을 받으면서 주력상품인 SM5를 재단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SM5의 ‘노바(Nova)’라는 서브네임은 우리말로 옮기면 ‘초신성’이 된다. 별이 수명을 다 하여 빛이 약해지다가 폭발하여 강렬한 빛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신성의 별빛이 사그라들면 그 잔해에서 새로운 별들이 탄생한다. 재도약을 준비하는 르노삼성에게는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SM5 노바는 하이브리드를 제외한 모든 파워트레인을 제공한다. 2.0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주력 ‘G’, 1.5 디젤 엔진의 ‘D’, 1.6 직분사 터보 엔진에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맞물린 ‘TCE’와 LPG 연료를 사용하는 ‘LPLi 도넛’이다. 특히 새 모델에서는 국내 양산차 최초로 도넛형 탱크를 채택한 LPLi 도넛 모델이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 그 실용성을 확인하기 위해 가솔린 모델과 LPLi 도넛, 두 대의 SM5를 번갈아 시승하며 비교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SM5 노바의 새로운 디자인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면부다. 앞서 QM3를 시작으로 SM7 노바, QM5 네오, SM3 네오에서 선보인 라디에이터 그릴이 SM5 노바에도 적용되었다. 새 그릴은 헤드램프와 연결되고 중앙부가 아랫쪽으로 튀어나온 형태인데, 사실 르노의 라디에이터 그릴 패밀리 룩과 같은 형태이다. 르노 뱃지를 단 수출을 염두에 둔 새 패밀리 룩이라고 봐도 되겠다.
헤드램프 형상은 SM5 플래티넘에서 선보인 그대로이지만 LED 주간주행등이 새로이 탑재됐다. 라디에이터 그릴 실루엣이 바뀌면서 범퍼 디자인도 변경되었는데, 기존에 비해 굴곡이 적고 더 매끈한 라운드 형태가 되었다. 디테일이 화려하면서도 전체적인 볼륨감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뒷모습은 SM5 플래티넘으로부터 큰 변화를 찾기 힘들다. 테일램프 디자인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이나 손질하며 둥글고 볼륨감 넘치게 바뀐 앞모습과 초기 디자인으로부터 큰 변화가 없는 직선적인 뒷모습이 다소 조화롭지 못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후면 디자인 모두 SM5 특유의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테리어 역시 이전 모델인 플래티넘으로부터 거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새로 적용된 스마트 미러링 시스템. SM7 노바에서 앞서 선보인 기능인데, 스마트폰과 차량 디스플레이를 와이파이로 연결하여 양방향 조작 및 어플리케이션 사용을 가능케 한 기능이다. 특히 T-map 내비게이션을 통신사와 상관없이 사용 가능하도록 한 점이나 동영상, 음악, 사진 등 스마트폰에 내장된 미디어를 구동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첨단 신기술’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애프터마켓 시장에서 선보인 기술이라는 점에서 참신성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센터페시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디스플레이는 터치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조작이 불편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그셔틀이 마련되어 있지만, 사용하기 썩 편하지 않은데다 조작감도 떨어진다. 르노삼성의 마감품질이 평균적으로 높은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디스플레이의 단점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능들은 실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닛산의 이미지가 강했던 1, 2세대 SM5와 달리 3세대는 유독 르노의 터치가 많이 느껴진다. SM5가 르노 래티튜드로 수출되고 있는 까닭도 있겠다. 르노의 영향인지, 간결하게 정리된 인테리어는 여지없이 프랑스 차를 떠올리게 한다.
SM5만의 독특한 퍼퓸 디퓨저는 처음 사용해봤는데, 퍽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실내에 방향제를 두기 마련인데, 컵홀더나 대쉬보드 상단에 위치하여 미관상 보기 싫은 경우가 많다. 반면 퍼퓸 디퓨저를 사용하면 원하는 향기를 원하는 만큼 분사할 수 있어 실용성은 물론 탑승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면도 있다. SM5 노바에서는 특별히 홍보되지 않고 있지만, 쓸모있는 기능임은 틀림없다.
날로 늘어나는 스티어링 휠 버튼이 익숙하다면, SM5 노바의 심플한 스티어링 휠은 다소 낯설 수도 있겠다. 블루투스 핸즈프리, 오디오 조작버튼 등은 모두 스티어링 휠 오른쪽 뒷편의 컴비네이션 스위치로 통합되었다. 몇 번 사용해보니 조작법은 까다롭지 않았다. 경쟁차들에 비해서 참신한 맛은 있지만, 버튼 위치가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헤맬 수도 있겠다.
시승차의 경우 LPLi 도넛 차량은 검은색 가죽시트가, 가솔린 차량은 베이지색 나파 가죽 시트가 적용되었다. 코너링 시 시트의 홀딩력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편안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마치 거실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앉는 느낌이다. 게다가 나파 가죽의 재질감은 탁월하다. 많은 브랜드들이 갈 수록 독일차를 따라 스포티하고 꽉 조여진 감각을 추구하지만, 이런 선택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트렁크. 가솔린 모델은 스키쓰루를 탑재했으며, LPLi 도넛 모델 역시 도넛형 연료탱크를 스페어 타이어 위치로 삽입하고 스키쓰루를 탑재했다. 6:4 폴딩 만은 못 해도 기존의 LPG 차량을 생각해보면 놀랄 만한 실용성 개선이다. 트렁크 용량은 기존 292L(LPG차량 기준)에서 347L로 대폭 증가했다. 이제 LPG 차량을 타더라도 유모차, 휠체어 적재는 물론 레저활동에도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환형(環形) 연료탱크는 기존에도 애프터마켓 개조를 통해 설치가 가능했지만, 안전과 직결된 부분인 만큼 양산차에서 직접 이 방식을 채택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LPG 차량 수요가 많은 국내 시장에서 이러한 브랜드의 배려는 경쟁모델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넛 탱크에 대해 첨언하자면, 기존 탱크에 비해 경도가 높고 더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10% 줄였다. 경도가 높음에도 불구, 후방충돌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두께를 15% 늘렸다. 또 연료공급 밸브 시스템도 개선되었다. SM5 LPLi 도넛의 연료탱크,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배터리 등 기존에 트렁크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던 동력계 부품이 스페어 타이어 위치로 이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향후 이러한 변화가 대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팎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주행감각은 여전히 SM5 특유의 부드러움과 여유가 묻어난다. 파워트레인은 가솔린 모델이 2.0L 직렬4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토크 19.8kg.m을 내며, LPLi 도넛 모델은 2.0L 직렬 4기통 LPLi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19.7kg.m의 성능을 낸다. 가솔린과 LPG 연료의 성능 차이가 거의 없는 셈.
세팅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LPLi 도넛의 경우 가속 페달 반응이 보다 예민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순간 경쾌하게 치고 나간다. 나쁘게 말하면 약간 울컥임이 느껴질 정도. 반면 가솔린 모델은 똑같이 가속 페달을 밟아도 좀 더 느긋하게 가속이 시작된다. 가솔린 쪽의 세팅이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회전질감도 가솔린이 더 부드럽고, LPLi 도넛이 고속으로 갈 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데에 비해 가솔린은 꾸준한 가속감을 보여준다. 확실한 것은 둘 다 고속도로 주행에서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차량 모두 변속기는 자트코제 CVT를 탑재하고 있다. CVT의 장점을 살려 경쟁모델들에 비해 낮은 출력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회전수를 유지, 출력부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반 변속기와 달리 변속충격이 없는 것도 장점. 퍼포먼스보다 안락함을 중시한 SM5의 세팅에는 가장 적합한 변속기이다. 단 수동모드에서 스포티한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닛산 모델에 탑재되고 있는 CVT는 보다 기민한 반응을 보여주는데, SM5도 다음 세대에서는 그러한 퍼포먼스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스티어링 감각은 적당히 묵직하지만 고속영역에서는 조금 가볍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서스펜션이 요즘 기준으로는 굉장히 부드러워 코너링 한계치가 높은 편은 아니다. 시내주행이나 일반 고속주행에서는 별 문제 없지만 코너에서 조금만 속도를 높이면 아찔해진다. 프랑스의 르노와 일본의 닛산 모두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세팅되는 편인 것을 생각하면 SM5의 이러한 세팅이 유독 눈에 띈다. 거의 한국시장의 일반소비자에게 특화된 세팅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공인연비는 가솔린이 복합 12.6km/L, LPLi 도넛이 복합 9.6km/L이다. 두 대 모두 복합 실연비는 공인연비와 소숫점 내의 편차만 발생했다. 고속연비는 가솔린이 15km/L, LPLi 도넛이 11km/L 정도를 기록해 이 역시 공인연비(가솔린 14.1km/L, LPLi 도넛 11.2km/L)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CVT 덕에 효율 면에서 아쉬움은 없었다.
LPLi 도넛 모델은 연비에서는 손해를 보지만 요즘의 저유가 덕까지 보면서 주행가능거리 50km에서 풀탱크 충전 시 40,000원 정도의 유류비만 지출했다. 풀탱크 주행가능거리는 연비에 따라 480~550km 정도를 오갔다.
냉정히 시승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SM5 노바는 이전 모델로부터 부분변경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를 이뤄내지 않았다. 파워트레인이나 인테리어에서도 특별한 개선점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전면부 디자인과 약간의 편의사양을 손본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겠다.
하지만 이처럼 소극적인 변화가 SM5 노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우선 SM5 노바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LPLi 도넛 모델은 그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LPG 차량의 나쁜 트렁크 활용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라고 할 만하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소통이 늘 이슈가 되고 있는 작금의 업계 상황에서 이처럼 극적인 피드백이 이뤄진 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SM5 노바의 변화가 적었던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 만큼 기존 SM5의 방향성이 뚜렷하고 특별히 손질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 국적을 불문하고 대다수의 제조사들은 점점 더 단단하고, 타이트하며, 고성능인 자동차를 만드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그런 변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리라. 출력은 일상주행에 부족함이 없으면 그만이고, 주행성능보다는 안락함과 여유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수요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쏘나타나 K5가 아닌 제 3의 길, SM5 노바는 남다른 방향성을 뚜렷하게 잡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지금과 같이 소비자의 요구를 경청하고 받아들인다면, 초신성과 같이 르노삼성의 미래는 다시금 밝게 빛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