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대표적인 독일 럭셔리 메이커들은 서로 직접적인 경쟁모델을 갖추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로 독자적인 니치 모델도 다양하게 쏟아내고 있다. 물론 한 브랜드가 니치 모델을 선보이면 다른 브랜드도 그 경쟁모델을 내 놓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하지 않으면서 독보적인 세그먼트가 되는 경우도 있다.
BMW의 그란투리스모가 그렇다. 최초엔 메르세데스-벤츠 CLS의 대응 모델인 줄 알았지만 BMW가 6시리즈 그란쿠페를 내 놓으면서 그란투리스모는 왜건도 아니고, 4도어 쿠페도 아닌 BMW 만의 모델이 되었다. 그 뿌리를 찾자면 X6부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왜건형에 가까우면서 지상고와 전고가 높아서 공간 활용성이 더 좋지만 SUV는 아닌, 그리고 날렵한 쿠페형 지붕을 갖춘 그란투리스모.
5시리즈 GT를 국내에선 그냥 ‘그란투리스모’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그런데 이번에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결국 원래 이름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번에 국내 판매를 시작한 모델은 320d 그란투리스모다.
지난 2013 서울모터쇼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후 7월 1일 본격적인 판매를 앞두고 기자단을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 건설 부지로 초청했다. 기존에 있던 트랙에서 시승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시승은 영종도 내 주변 도로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간단한 시승이었지만 320d 그란투리스모의 정체를 파악하기에는 나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크기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7시리즈 플랫폼으로 개발되었다. 그래서 이름은 5시리즈이지만 7시리즈 급의 공간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5시리즈 플랫폼으로 만들었을까? 아니다. 중국용 3시리즈 롱휠베이스 모델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크기는 4,824 x 1,828 x 1,489mm에 휠베이스가 2,920mm다. 휠베이스는 3시리즈 세단보다 110mm 더 길고, 5시리즈보다는 48mm 짧다. 휠베이스가 긴 만큼 가장 큰 혜택을 보는 부분은 실내 공간, 특히 뒷자리다. 비록 이름은 3시리즈이지만 운전석에서 뒤를 돌아보면 5시리즈보다 더 넓어 보인다. 실제 뒷좌석 무릎 공간이 5시리즈보다 넓다고 한다.
키가 커져 머리 위 공간도 여유 있고, 시트 포지션이 높아져 타고 내리기도 편하고 시야 확보에도 유리하다.
인테리어는 크게 다를 게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고, 통풍 시트는 없다. 다만 실내로 들어갈 때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처럼 프레임리스 도어가 반가울 따름이다.
판매 트림은 기본형과 럭셔리 트림 2가지가 마련된다. 럭셔리 트림에는 열선 스티어링 휠, 라이트 패키지, 뒷좌석 열선, 스마트 키의 키리스 엔트리 기능에 해당하는 컴포트 억세스와 테일게이트 아래에서 발을 움직이기만 하면 해치가 열리는 스마트 테일게이트 오프닝, 하만 카돈 사운드 시스템, 다코타 가죽, 그리고 기본형의 17인치 대신 18인치 휠이 더해진다.
파워트레인은 기존 320d와 같다. 2.0리터 트윈파워 터보 디젤엔진으로 최고출력 184마력과 최대 토크 38.8kg•m의 힘을 낸다. 변속기는 자동 8단이고, 연비는 320d 보다는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훌륭한 복합연비 16.2km/l를 자랑한다.
가격은 기본형인 320d 그란 투리스모가 5,430만원, 320d 그란 투리스모 럭셔리가 6,050만원(VAT포함)이다. 320d의 가격이 기본형 4,810만원에서 럭셔리 라인 5,570만원이니 500만원 정도 더 비싼 셈이다.
그런데 차체가 커진 만큼 윗급이자 대한민국 대표 베스트셀러인 520d와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520d는 6,260만원이다. 파워트레인은 같고, 연비는 520d가 좀 더 높은 16.4km/l다. 차체 길이와 휠베이스는 520d가 더 크지만 실내 공간에서는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가 뒤지지 않는다. 거기다 프레임리스 도어를 비롯해 컴포트 억세스, 하만카돈 오디오를 비롯한 럭셔리 모델의 고급 옵션을 더하고도 가격이 210만원 더 싸다.
물론 그란투리스모는 니치 모델이다. 그리고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가 5시리즈일 수는 없다. 하지만 위에서 비교한 것처럼 실질적인 면에서 따져보면 오히려 큰 소리 칠 수 있는 상황이다. 혹시 ‘팀킬’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BMW 코리아 담당자에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아무래도 국내 시장에서 그란투리스모는 니치 모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하며, 팀킬 보다는 잘 팔리는 520d에다 또 다른 잘 팔리는 모델이 하나 더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순번을 기다려 거의 끝 무렵에서야 시승에 나섰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184마력의 2리터 디젤 엔진은 파워풀했다. 다만 휠베이스가 늘어나고 무거워진 만큼의 차이가 느껴졌다. 좀 더 안락해 진 느낌이고 안정성도 더 좋다. 예리한 핸들링은 그대로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여유가 더 많아진 듯하다.
무엇보다 시승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드넓은 뒷좌석 때문에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3시리즈를 샀는데 5시리즈가 배달돼서 횡재한 기분이다.
320d의 넉넉한 파워와 감동적인 연비에다 넓은 화물공간을 원한다면 320d 투어링이 답이다. 하지만 단순한 왜건보다는 (물론 320d 투어링은 스타일도 멋지다.) 더욱 개성있고 스포티한 스타일에 좀 더 고급스러운 기능, 그리고 화물공간 뿐 아니라 뒷좌석 공간까지도 더 넓기를 바라면서 5시리즈보다 경제적인 차를 원하는 지독히 욕심 많은 이들을 위해 BMW가 니치 모델에 날 세운 칼은 들려서 내보냈다. 320d 그란투리스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