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삽시간에 광풍처럼 몰아친 컴팩트 CUV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트랙스가 문을 연 세그먼트에 닛산 쥬크가 동참했고, QM3와 2008이 디젤 엔진을 앞세워 지난 해를 뜨겁게 달궜다. 얼마 전 출시된 티볼리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컴팩트 CUV 세그먼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닛산 쥬크는 한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B 세그먼트 컴팩트 CUV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모델이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이 세그먼트에서 제법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모델이고, 닛산 내부에서는 역동적인 새 패밀리 룩을 리드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쥬크가 지난 달 새단장을 하고 등장했다. 200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카자나(Qazana)’라는 컨셉트카로 처음 등장하고 2010년 시판된 지 4년 만의 일이다. 한국에는 2013년 가을에 출시되었으니 1년여 만에 화장을 고친 셈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많이 궁금했던 모델이다. 지난 가을 서킷 주행에서 예상 외로 경쾌한 달리기 실력에 놀란 적도 있었고, 치열해져가는 동급 경쟁모델들 중 스타일 면에서 가장 눈에 띄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가파르게 성장한 한국 닛산의 판매 중 약 22.5%를 담당한 소리없는 스테디셀러라는 점도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흘 간 약 500km 가량을 뉴 쥬크와 함께 달렸다.
새로운 외관은 지난 여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뭐가 바뀌었는 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지만, 하나 하나 살펴보면 기본적인 비례와 디자인 컨셉을 유지하면서 꽤 많은 부분이 고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전면부에서는 방향지시등과 차폭등이 합쳐진 상단 램프가 닛산의 패밀리 룩을 반영하여 부메랑 형태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패밀리 룩을 따라 V-모션 그릴이라 칭하는 V형 크롬 장식이 두꺼워지며 인상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제논 헤드램프가 적용되고 안개등이 추가된 새로운 범퍼 디자인과 사이드 미러 LED 리피터도 새로운 부분.
헤드램프와 차폭등, 방향지시등 따위를 분리하는 형태의 디자인은 쥬크가 최초로 선보였는데, 전통적인 헤드램프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기 때문인지, 개성을 추구하는 신차들이 종종 비슷한 분리형 헤드램프를 채택했다. 지프 체로키, 시트로엥 C4 피카소 등이 그렇다. 쥬크의 참신한 앞모습이 퍽 인상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후면부 역시 비례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테일램프와 범퍼의 형상이 조금 바뀌었다. 테일램프는 입체감을 살리고 전구임에도 불구하고 면발광 LED처럼 보이는 램프 디자인이 독특하다. 처음 쥬크가 나왔을 때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분변경 모델에서는 볼륨감을 더 높여 이제 이전 모델이 밋밋해 보일 정도다.
전장*전폭*전고는 4,135*1,765*1,570(mm), 휠베이스는 2,530mm이다. 르노삼성 QM3와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B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지간이지만 휠베이스는 쥬크가 좀 더 짧고 전장은 10mm 길다. 경쟁차종인 트랙스, 티볼리, 2008 등과 비교해봐도 쥬크는 더 컴팩트하다. 하지만 개성이 흘러넘치는 디자인 덕분에 도로에서의 존재감은 경쟁자들 중 압도적으로 강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두자.
인테리어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 디자인이 워낙 완성도가 높았던 까닭도 있다. 재질감이 썩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풍부한 편의사양 덕분에 단점들이 금새 잊혀진다.
I-CON이라고 명명된 쥬크만의 센터페시아가 인상적인데, 드라이브 모드와 공조장치 버튼을 누르면 하나의 센터페시아에서 두 개의 기능이 수행된다. 가령 드라이브 모드에서 에코, 노멀,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던 버튼은 공조장치 버튼을 누르면 에어컨 등을 조절하는 버튼으로 바뀐다. 하나의 버튼이 두 개의 역할을 하는 셈.
차급의 한계 상 비좁은 센터페시아에 버튼을 덕지덕지 나열하지 않고 이런 아이디어를 활용한 것은 매우 높이 쳐줄 만하다. 버튼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모든 기능을 스크린의 터치 기능으로 집어넣는 것은 운전 중 조작성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센터페시아에도 작은 모니터가 있는데, 상황에 따라 마찬가지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에코 모드에서는 에코 게이지가 되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부스트 게이지로 변신한다. 또 공조장치를 켜면 공조장치 작동상태를 알려준다. 그 밖에 G 센서, 평균연비 게이지 등의 기능도 수행하는데, 너무 낮은 곳에 있어 주행 중 확인하기는 불편하지만 기대 이상의 다기능성을 보여준다.
시승차의 경우 실내 트림이 레드 컬러였다. 마침 익스테리어 역시 붉은 컬러였기 때문에 더욱 잘 어울렸다. 상위 트림인 SV 그레이드에서는 외장 컬러에 따라 실내 트림이 레드 또는 실버로 적용된다고 한다. 센터콘솔은 바이크의 연료탱크를 형상화 했다고 하는데, 플라스틱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급스럽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만족도가 큰 부분이다.
2015년식부터는 꾸준히 지적되어 온 시트도 개선되었다. SV 그레이드부터 선호도가 높은 가죽 시트가 적용되고, 앞좌석 열선도 추가되었다. 열선 스위치는 마치 10년 전 자동차의 그것 같고 위치도 생뚱맞지만, 어쨌든 소비자의 지적을 받아들여 상품성이 개선된 점은 훌륭하다.
당연히 장점 일색은 아니다. 우선 대부분의 동급 모델들이 센터콘솔의 부재를 고려하여 암레스트를 적용하는데, 암레스트가 없어 오른팔이 영 불편하다. 시프트 노브는 너무 긴 데다가 재질감이 떨어지고 수동모드에서 덜그럭거리는 작동감이 조악하다. 스티어링 휠 텔레스코픽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불만이다.
앞좌석이 쾌적한 반면 뒷좌석은 루프라인이 낮게 떨어져서 성인 남성이 앉기에는 좁은 편이라는 것도 지적사항. 조금만 배려하면 개선될 여지가 많은 부분들이라 더 아쉬움이 생긴다. 그래도 적어도 앞좌석에서 느끼는 인테리어의 완성도는 상당히 수준급이다. 차량 가격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강렬한 디자인 때문에 종종 잊혀지지만, 사실 쥬크는 컴팩트 CUV 중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를 자랑하기도 한다. MR16DDT 라는 코드명으로 불리는 1.6L 직렬 4기통 직분사 터보 엔진은 190마력의 최고출력과 24.5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특히 최대토크는 2,000~5,200rpm의 넓은 영역대에서 발휘되어 일상 주행에서도 매우 경쾌하다.
쥬크의 심장은 르노삼성의 SM5 TCE와 공유하는 엔진이기도 하다. 다만 변속기는 SM5가 게트락 듀얼클러치를 채택한 반면, 쥬크는 닛산이 자랑하는 X트로닉 CVT를 조합했다. 닛산 자동차를 탈 때마다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예전의 흐리멍텅하고 답답한 CVT는 잊어도 좋다.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실용영역을 항상 유지하며 스로틀 개도량과 무관하게 두터운 토크감이 느껴진다.
특히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고 변속기를 수동모드로 전환하면, 마치 CVT가 아닌 것처럼 변속기 스스로 기어비를 설정하여 변속을 진행한다. 게다가 변속이 일반 토크컨버터 변속기 못지 않게 빠르고 다운시프팅 시 레브매칭도 정확하다. 변속 속도를 보고 CVT가 맞는 지 제원표를 확인할 정도였다.
코너링도 높은 차고를 고려하면 훌륭한 편이지만 절대적으로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들다. 저중심 설계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시트포지션이 꽤 높다. 가속과 급제동 시 피칭이 느껴지고 브레이크 답력의 한계치가 높지 않아 한계 수준의 퍼포먼스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특히 급가속 시에는 심한 토크스티어가 발생해 차가 좌우로 요동치기도 했다. 그래도 CUV의 한계를 인지하고 주행하기만 한다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주행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공인연비는 복합 12.1km/L인데, 실연비는 조금 낮은 복합 10km/L 정도를 기록했다. 아무래도 터보차량인 만큼 부스트 작동량에 따라 연비 차이가 클 것이다. 시내에서는 9km/L이 조금 안됐지만 고속도로에서는 교통상황과 평균속도에 따라 13~15km/L 정도로 그나마 준수한 연비를 기록했다. 운전 습관에 따라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지만 경제성을 추구하는 컴팩트 CUV의 소비층을 고려할 때 디젤 라인업의 부재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닛산 쥬크는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모델이다. B 세그먼트 CUV 시장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국제 유가 폭락으로 가솔린 모델들의 판매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소 비자들에게 독특한 디자인과 선데이 레이서를 꿈꿔볼 만한 탁월한 퍼포먼스는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추후 다시 유가가 반등하고 디젤 모델의 인기가 높아진다면, 유럽에서 시판중인 1.5L 디젤 엔진을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한국 닛산이 적극적으로 디젤 파워트레인을 도입하고 있는 만큼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또 해외에 시판중인 4륜구동 모델도 추가된다면 가벼운 캠핑이나 레저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쥬크이기에 이런 저런 기대를 해 본다.
평일에는 도심으로, 주말에는 교외로 떠나는 젊은 이들에게 닛산 쥬크를 추천한다. 온 가족을 태우기에는 비좁지만 화끈한 디자인과 섹시한 인테리어, 심장 뛰는 성능을 고루 갖췄다. 2,690~2,890만 원에 불과한 착한 가격도 부담없다. 새단장을 한 쥬크가 올해 한국 시장에서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