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Home / Theme / 카 히스토리 : 현대적 람보르기니의 표상, 람보르기니 쿤타치

카 히스토리 : 현대적 람보르기니의 표상, 람보르기니 쿤타치

CountachLarge

람보르기니와 같은 정상급 슈퍼카 브랜드의 역사에서 최고의 차를 한 대만 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옥같은 하나 하나의 모델들이 모두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놀라운 조형적 완성도와 당대를 선도하는 첨단 기술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Lamborghini-Countach-Gallardo-Miura-001

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람보르기니를 단 한 대만 선택하라 한다면, 적잖은 팬들은 전설적인 람보르기니 쿤타치를 꼽을 것이다. 람보르기니가 미우라를 통해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고 양산형 미드십 스포츠카의 표준을 제시했다면, 쿤타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코드를 처음으로 적용하여 현대적인 람보르기니 모델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Lamborghini-Countach-Turbo-S-r900x600-C-ce4e1d37-299902

지난 화에서는 람보르기니의 탄생과 숨겨진 모델들, 전설적인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 미우라를 살펴보았다. 시대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번 화에서는 현대적 람보르기니의 표상이 된 람보르기니의 두 번째 전설, 쿤타치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기의 시대에 탄생한 걸작

쿤타치가 만들어진 시기는 사실 람보르기니에게도, 자동차 산업 전체에게도 큰 위기가 닥쳤던 때이다. 1970년 당시 미우라의 성공적인 데뷔에 이어 에스파다, 하라마, 우라코 등 신모델을 연이어 선보인 람보르기니는 출시된 지 5년이 지난 미우라의 후속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LP400_5

미우라의 후속이 될 새 모델에는 몇 가지 과제가 추가되었다. 우선은 기존의 미우라가 너무 불편하고 시끄럽다는 점. 레이스카같은 미우라의 소음은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지향하는 그랜드 투어러와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미우라는 작은 차체때문에 설계의 제약을 많이 받았고 엔진과 캐빈룸이 가까워 소음이 심했던 만큼, 새로운 모델은 차체를 더 넓고 길게 만들었다.

80CountachOTD

또 V12 엔진을 가로배치로 탑재하는 것이 공간 상 어렵다는 것을 느낀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5.0L V12 엔진을 미드십에 세로로 배치하였고, 세로배치를 위해 캐빈룸을 한참 앞쪽으로 밀어냈다. 그 결과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면서 설계의 자유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countach-5

이렇게 탄생한 차기 모델의 프로토타입에는 LP500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500은 5리터의 배기량을 뜻하며 LP는 “Longitudinale Posteriore”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후방 세로배치를 의미한다. 오늘날 아벤타도르, 우라칸,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 등 최신 람보르기니 모델명에 들어가는 LP 역시 같은 의미이다. 프로토타입의 디자인은 미우라를 히트시킨 베르토네 스튜디오의 마르첼로 간디니가 다시 한 번 펜을 잡았다.

tumblr_mb2685YqOi1r2dcdfo1_1280

LP500 프로토타입은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미우라의 최종형인 P400 SV와 함께 등장한 노란색 프로토타입은 관객들에게 5년 전 미우라 데뷔를 뛰어넘는 충격을 선사했다. 오늘날 슈퍼카의 표준이 된 전진형 캐빈과 세로배치 엔진, 약 42도로 날카롭게 누워있는 쐐기형 디자인과 수직으로 열리는 시저 도어는 고전적 스포츠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당장 양산하기에는 기술적인 수정이 필요한 디자인이었지만, 이 컨셉트카는 다시 한 번 람보르기니의 걸작 슈퍼카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Lamborghini-lp500-prototype-wallpaper

안타깝게도 LP500 프로토타입이 등장한 시기는 람보르기니 최대의 위기가 봉착한 때였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인해 람보르기니의 재정적 기반이었던 트랙터 사업이 1971년 매각되었고, 개발비용을 댈 수 없었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듬해인 1972년, 친구이자 사업가인 조르쥬-앙리 로세티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1973년에는 오일쇼크가 자동차 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면서 대배기량 슈퍼카를 개발하던 람보르기니에게는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갓 개발을 재개한 LP500은 좀 더 작고 효율적인 4.0L 엔진을 얹는 쪽으로 수정되었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신이 갖고 있던 49%의 지분도 조르쥬-앙리 로세티의 친구인 르네 라이머에게 매각하면서 업계에서 은퇴했다. 결국, LP500 양산모델이 람보르기니의 새 미래를 열어줄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현대적 슈퍼카의 모범답안

Lamborghini-Countach_LP_400_1973_1024x768_wallpaper_04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74년, 컨셉트 프로토타입이 등장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쿤타치는 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버전의 정식 명칭은 ‘쿤타치 LP400′.

쿤타치(Countach)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감탄사이다. 방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어의 일반적인 발음법과도 차이가 있는데, 영국과 일본 등의 매체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카운타크’라는 발음으로 와전되기도 했었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이래로 자사 모델에 투우와 관련된 이름을 계속 사용해왔는데, 쿤타치는 매우 이례적인 작명이라 할 수 있겠다.

Lamborghini-Countach_LP_400_1973_1024x768_wallpaper_05

어쨌든 양산형으로 공개된 쿤타치는 프로토타입의 혁신적인 면모를 그대로 계승했다. 직선적인 디자인은 실제 주행을 고려하여 흡기구와 냉각 에어벤트가 추가되면서 다소 공격적으로 바뀌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공기저항계수는 경량 슈퍼카의 주행성능을 한결 끌어올렸다.

Lamborghini-Countach_LP_400_1973_1024x768_wallpaper_07

디자인 디테일에 있어서는 단조로웠던 테일램프가 현대적인 컴비네이션 램프로 대체되었고, 차량 뒷쪽의 로고는 오직 ‘람보르기니’와 ‘쿤타치’, 두 개 만이 부착되었다. 배기량이나 기통 수를 설명하는 번잡한 숫자는 빠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혁신적인 쿤타치를 길에서 만나면 누구나 람보르기니의 플래그십 슈퍼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Lamborghini-Countach_Quattrovalvole_1985_1024x768_wallpaper_03

기술적인 면에서도 쿤타치는 가장 진보한 슈퍼카였다. 당시만 해도 많은 미드십 슈퍼카들이 엔진을 가로배치했던 반면 쿤타치는 세로배치를 통해 공간을 확보하고 밸런스를 개선할 수 있었다. 차체는 튜브형 스페이스 프레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높은 강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항공기용 알루미늄과 파이버글래스 등 고가의 소재가 아낌없이 투입되었다.

Lamborghini-Countach_LP_400_1973_1024x768_wallpaper_08

쿤타치는 또 프로토타입과 마찬가지로 캐빈룸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세로배치 공간확보에 성공했는데, 당시만 해도 많은 미드십 스포츠카들은 일반적인 프런트 엔진 자동차처럼 긴 노즈를 갖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파격이었다. 이러한 캐빈-포워드 디자인은 오늘날 미드십 슈퍼카의 표준이 되었다.

캐빈룸이 전진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는데, 다름아닌 승하차를 위한 도어의 설치였다. 특유의 스페이스 프레임과 독특한 비례의 넓고 낮은 차체, 거기다가 A필러가 앞쪽 휠하우스까지 전진한 캐빈-포워드 디자인 때문에 옆으로 열리는 일반 도어의 설치는 불가능했다.

Lamborghini-Countach_LP_400_1973_1024x768_wallpaper_02

고심 끝에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였던 마르첼로 간디니는 지붕 면적을 좁히고 기울어진 창문을 설치함과 동시에, 힌지를 가로로 배치하여 수직으로 열리는 시저 도어를 채택하였다. 오늘날까지도 람보르기니 플래그십에 탑재되는 시저 도어는 미래적인 쿤타치의 디자인과 맞물려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물론 복잡한 설계로 고통받은 엔지니어들 만큼은 이 미래형 도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1978_Lamborghini_Countach_LP400_S_lp400_classic_supercars_supercar_interior_engine_engines_1600x1200

첫 버전인 LP400은 힘든 여건 속에서 탄생했지만, 157대가 판매되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우라의 4.0L V12 엔진을 유용하여 최고출력은 375마력으로 낮아졌지만 1,065kg에 불과한 경량 차체 덕분에 최고속도는 290km/h를 마크했다. 0-100km/h 가속은 5.4초면 충분했다. 쿤타치는 미우라에 이어 당대의 가장 빠른 양산차로 기록되었으며, 1984년까지 그 타이틀을 유지했다.

 

감탄사처럼 놀라운 쿤타치의 진화

5046-1

여느 람보르기니 모델들처럼 쿤타치 역시 다양한 개선형 모델들이 존재했다. 그 중 첫 번째 개량형은 1978년 출시된 LP400S이다. 출력은 LP400에 비해 20마력 가량 낮아졌지만, 스타일링이 대폭 바뀌었다. 기존보다 훨씬 넓은 광폭 타이어와 확장된 휠 아치가 적용되었으며, 차체 앞뒤로 에어로파츠가 추가되었다. 뒷쪽에는 거대한 V형 스포일러를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었는데, 옵션가격이 당시 소형차 한 대 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LP400에 비해 과격해진 새 디자인은 호불호가 나뉘었지만, 어쨌든 상업적으로는 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LP400S는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세 종류의 세부사양(시리즈 1~3)이 제작되었으며, 총 237대가 팔려나갔다.

Lamborghini-Countach-LP500-04

뒤이어 1982년에는 출시 8년 만에 람보르기니의 염원이 이뤄졌다. 바로 5.0L급 V12 엔진을 다시 탑재하게 된 것. LP400S와 외관상 크게 차이나지 않는 LP500S는 최대의 슈퍼카 시장인 북미에 처음으로 정식 수출된 쿤타치 모델이기도 하다.

이 때는 람보르기니가 다시 한 번 파산하여 법정관리를 받다가 회생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LP500S가 북미 수출에 힘입어 321대 판매되면서 재정난을 겪던 람보르기니에게 단비같은 존재가 되었다.

Lamborghini-Countach_Quattrovalvole_1985_1024x768_wallpaper_01

1985년에는 양산모델 중 가장 강력한 쿤타치인 LP5000QV가 등장했다. 여기서 QV는 이탈리아어로 Quattrovavole, 우리말로는 4 밸브가 된다. 즉, V12 엔진이 모든 실린더에 4개의 밸브를 탑재하게 된 것. 배기량이 5.2L로 늘어나고 4밸브 시스템을 탑재하면서 최고출력은 461마력에 이르렀다. 단, 북미에서는 카뷰레터 대신 보쉬의 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이 탑재되었는데, 이 때문에 출력이 420마력으로 제한되었다.

Lamborghini_Countach_US_spec_5000QV

LP5000QV는 610대나 생산되며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북미에서는 충돌안전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끔찍하게 못생긴 범퍼를 추가하면서 많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북미에서의 판매가격은 당시 10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5,500달러 짜리 스포일러와 7,500달러 짜리 오디오 시스템 등 2가지 옵션만 존재했다.

Lamborghini-Countach_25th_Anniversary_1989_1024x768_wallpaper_01

1988년에는 LP5000QV를 바탕으로 한 쿤타치의 최종형, 람보르기니 창사 25주년 기념 버전이 출시되었다. 당초 한정판으로 계획되었으나 밀려드는 주문으로 인해 658대가 생산되며 쿤타치 중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했다.

Lamborghini-Countach_25th_Anniversary_1989_1024x768_wallpaper_04

25주년 기념 에디션은 기계적으로는 LP5000QV와 대동소이했으나, 디자인이 대폭 바뀌었다. 디자인 담당자는 오늘날 카로체리아를 이끌고 있는 호라치오 파가니. 거대한 흡기 에어돔이 추가되었고 앞뒤의 에어로 파츠가 완전히 새로 디자인되면서 후속 모델인 디아블로와의 디자인적 중간점에 도달했다. 특히 테일램프는 폭을 좁혀 날카로운 인상을 완성했다. 25주년 기념 에디션은 0-100km/h 가속이 4.7초만에 끝났고, 최고속도는 295km/h에 이르러 가장 빠른 양산형 쿤타치가 되었다.

lamborghini-countach-evoluzione

이 밖에도 쿤타치에는 전설이 될 뻔한 두 대의 원-오프 모델이 존재했다. 하나는 젊은 호라치오 파가니의 주도 하에 개발된 초경량 스터디 모델인 쿤타치 에볼루치오네이다. 프레임을 비롯한 바디 전체를 카본 파이버로 제작하여 일반 쿤타치보다 500kg나 가벼웠고, 최고출력은 490마력으로 높아져 최고속도는 무려 330km/h에 달했다. 쿤타치 에볼루치오네는 카본 파이버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많은 시험주행을 거쳤고, 종국에는 카본 파이버의 충돌 안전성 테스트를 위해 장렬히 산화했다. 오늘날 호라치오 파가니는 자신만의 카로체리아를 설립하여 풀 카본 슈퍼카의 설계사상을 다시금 이어가고 있다.

Lamborghini-Revent-amp--65533-n--Lamborghini-Countach-Turbo-S-r900x600-C-be0186f8-306641

또 하나는 양산되었다면 당대 최고속 슈퍼카가 되었을 LP500S 터보이다. 단 2대의 연구용 모델만 생산되었는데, LP500S에 강력한 트윈터보를 장착, 당대로썬 어마어마한 746마력의 최고출력을 기록했다. 최고속도는 333km/h였고, 0-100km/h 가속은 현재 기준으로도 엄청난 3.6초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검은색 시제차 1대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Lamborghini-Revent--n-trifft-Lamborghini-Countach-Turbo-S-r900x600-C-f3ae40f0-306644

About 이재욱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 2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