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도 자동차 시장에는 많은 이슈들이 있었고, 수 많은 자동차들이 팔려 나갔다. 그 자동차 트랜드를 정리한다면 Green, Family, Style로 압축할 수 있겠다. 고유가로 인해 연비에 더 민감해진 결과 하이브리드와 디젤 자동차가 인기를 끌었고, 전기자동차도 큰 관심을 받았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여유와 힐링을 책임질 아웃도어 패밀리카의 강세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못지않게 언제나 높은 관심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어느 시대나 디자인이 뛰어난 자동차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오늘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워낙 개인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인 만큼 무턱대고 이 차의 디자인이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분으로, 국민대학교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구상 교수를 모시고, 직접 자동차를 시승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그런데 디자인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국내 브랜드 중 가장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그 중에서도 기아의 기함이자 가장 최근에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등장한 ‘더 뉴 K9′의 디자인을 살펴 보면서 기아자동차, 더 나아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먼저 구상 교수는 어려서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었고, 눈만 뜨면 차를 볼 수 있는 곳에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1988년 산업디자인과를 졸업 후 기아 자동차에 입사했고, 91년부터 94년까지 1세대 크레도스 디자인을 담당했다. 95년부터 97년까지는 기아 캘리포니아 디자인 연구소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사람들은 ‘기아가 뭐냐’고 물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랜드였던 만큼, 기아 캘리포니아 디자인 연구소는 기아자동차의 성장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었다.
1997년 대구 가톨릭 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자동차디자인과’가 설립되면서 창단 멤버로 초빙돼, 산업 현장에서의 디자이너 활동을 접고 교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가톨릭 대학교에서 5년 동안 교수로 근무했고, 2002년 대전 한밭대학교를 거쳐서, 지난 2014년부터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과거 기아자동차에서 디자이너로 직접 근무했던 만큼 최근 기아자동차의 디자인과 한국의 자동차 디자인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시승도 함께 하기 위해 구상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국민대학교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은 누가 보더라도 교수 연구실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복잡했는데, 무엇보다 눈을 사로 잡은 건 2개 벽면을 가득 채운 수 많은 자동차 모형들이었다. 자동차 디자인을 가르치는 만큼 전 세계 자동차 모형을 천여 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이 모형으로 자동차의 역사와 디자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 계획이란다.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구상 교수는 자동차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기아가 2012년 K9을 출시하기 전에 구상교수 등을 초빙해 디자인 리뷰를 했던 때를 기억하며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려줬다.
가장 먼저 ‘자동차 디자인’의 정의에 대해 물었더니, 구상교수는 미국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당시 스스로 자동차 디자인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봤다고 한다. Automotive Design is software of emotion in motion. 자동차는 하드웨어인데, 소비자들에게 그 차를 사고 싶도록 ‘감성’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소프트웨어이고, 그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자동차 디자인은 움직임의 감성 소프트웨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운율까지 고려한 참 명쾌하고도 멋진 정의다.
자동차에 있어서 디자인은 얼마나 중요한가?
>>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각 브랜드마다 성격이 명확하게 차이가 났다. 성능이 좋은 브랜드, 주행감이 부드러운 브랜드, 연비가 좋고 실용성이 좋은 브랜드가 서로 나뉘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고 평준화되면서 하드웨어의 차별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고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 브랜드, 디자인 등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그만큼 차의 성능 뿐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에 맞는 매력적인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는 브랜드 차별화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자동차에서 디자인적 자유도가 높은 모델은 아무래도 스포츠카이고, 대형 승용차는 관용도가 낮을 수 밖에 없을 텐데, 특히 ‘대형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 무엇인가?
>> 대형차라고 디자인이 모두 같은 방향을 추구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기아 K9과 현대 에쿠스는 하드웨어적으로 같은 차다. 하지만 판매량은 에쿠스가 더 많다. 당연하다. (더 뉴 K9 출시 이후 K9이 더 많이 판매되기도 했다.) 에쿠스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전형적인 사장님 차다. 하지만 K9은 사장님들 중에서도 성능이나, 디자인, 혹은 개성이나 독특한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차다 보니, 그 수요는 다소 줄어들게 된다. 결국 대형차라 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추구하는 방향에 충실한 디자인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K9의 디자인은 개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 그렇다. 좀 더 개성을 강조하되, 차체 비례 면에서는 이미 개성과 역동성이 뛰어난 만큼 스타일에서 디테일을 저 정교하게 처리해서 명품차가 돼야 하고, 더 나아가 스타일에서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지는 차가 돼야 한다. 광기라고 해서 나쁜 뜻이 아니라 그냥 ‘좋은 차’가 아니라 ‘갖고 싶어 미치도록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는 차’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K9이 역동성이 강조되는 차이긴 하지만 에쿠스도 상당히 스포티한 라인을 갖고 있다. K9과 에쿠스는 어떤 차이가 나는가?
>> 물론 에쿠스도 스포티하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고급차들이 모두 스포티해지고 있다. 독일차, 특히 BMW의 영향으로 고급차도 고성능의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고급차는 그렇지 않았다. 1세대 에쿠스를 보면 트렁크가 무척 길었는데, 3박스 형태의 정통 세단이면서 트렁크 길이가 길면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트렁크의 길이가 후드(보닛) 길이의 1/2이면 중립적, 이보다 더 길면 보수적, 짧으면 역동적이라고 평가하는데, 최근에는 계속 짧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렇게 볼 때 에쿠스도 우아함 속에 스포티함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사장님들이 좋아할 만한 수준까지만 스포티함이 적용됐다고 볼 수 있고, 완전히 역동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K9은 후드(보닛)의 길이가 전체의 29%로, 대표적인 스포츠 세단인 BMW의 29%와 동일하다. 후드가 전체 길이의 25%이면 중립적이라고 보고, 그보다 짧으면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NF 쏘나타의 경우 후드가 25%, 트렁크가 12.5%로 가장 중립적인 비례를 갖추고 있으며, 그 시대의 가장들을 위한 전형적인 패밀리 세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YF 쏘나타는 후드 24%, 트렁크 12%로 좀 짧아졌다. 라인은 스포티한데 가족중심의 비례가 더 강화된 것이다. 그리고 YF 쏘나타의 형제차인 K5는 후드가 26%, 트렁크가 10%로 상대적으로 더 스포티한 비례를 갖고 있다.
K9은 본격적인 후륜구동 세단인 만큼 BMW 7, 5시리즈와 같은 29%로 롱노즈 숏데크의 매우 역동적인 비례를 가졌다. 사람의 체형으로 비교하면 우사인 볼트의 체형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 체형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부각되게 된다. 특히 K9은 운전석에 앉으면 마치 제왕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K9이 운전기사만 좋은 차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K9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중심으로 볼 때 디자인 완성도는 어느 정도인가?
>> 흔히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부분이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잘 다듬어진 디테일은 완성도를 크게 높여 준다. 처음 K9이 나왔을 때는 익스테리어의 비례와 인테리어 디자인이 매우 뛰어났지만, 외관의 디테일이 다소 떨어져서 별 5개 만점에서 별 4개 정도였다면, 이번에 새롭게 바뀐 더 뉴 K은 디테일이 더욱 정교해 지면서 완성도가 높아져, 별 4개 반 정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아 K9은 세계적인 프리미엄 자동차들과 경쟁하게 되는데 주요 경쟁 모델들의 디자인 특징은 무엇인가?
>> 메르세데스-벤츠는 가장 긴 자동차 역사와 프리미엄을 내세우는데, 최근에는 우아함과 미래적인 이미지가 더 많이 강조되고 있다. BMW의 디자인적 특징은 한마디로 고성능이다. 가장 스포티한 비례, 장식을 배제한 기하학적인 선을 통해 독일의 기계적인 면을 강조한다. 차가움의 미학, Cool of Elegance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아우디는 오로지 달리는 즐거움을 강조한 디자인이다. 역시 기하학적인 선을 통해 기능적으로 BMW보다 더 차가움의 미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편이다. 재규어도 롱노즈 숏데크 비례로 스포티함을 강조하면서, 재규어라는 동물의 유기적 라인을 통해 우아한 고성능을 잘 표현해 준다. 특히 영국 브랜드이면서 귀족의 차라는 브랜드 헤리티지에다 고성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브랜드들과 경쟁해야 할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특징은 무엇인가?
>>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특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아자동차가 역사적으로 추구해 온 기능성과 역동성에 서구의 기능주의 디자인이 잘 접목된 논리적인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타이거 노즈’라는 요소를 가지고 다양하게 응용하고 있는 점이 매우 뛰어나다. 직선의 단순함을 통해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K5가 매우 좋은 예다.
현대자동차 그룹으로 보면, 현대자동차는 플루이딕 스컬프쳐를 통해 동양 철학에 입각한 자연, 유기, 조화를 추구하는 디자인이고, 기아자동차는 서양의 기능주의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룹 내에서 디자인 정책을 차별되게 잘 펼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아자동차의 기함인 K9의 디자인적 특징은 무엇인가?
>> 스포티한 프리미엄이다. 과거 고급차는 보수적이어서 실내를 넓게 하고, 가죽과 우드그레인을 잔뜩 사용하면 됐었지만 언제부턴가 프리미엄은 고성능이라는 이미지가 커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전형적인 뒷자리를 위한 차인 에쿠스와 달리, K9은 직접 운전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고성능을 추구하는 차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K9은 2012년 출시 이후 2013년과 2014년에 조금씩 변했고, 이번에 정식 페이스리프트가 이뤄졌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디자인의 방향은 무엇인가?
>> 정교한 디테일을 통한 완성도 향상이다. 초기 K9이 차체에서 완벽하게 역동적인 비례를 갖고 있으면서도 라디에이터 그릴 등의 세부적인 디자인에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통해서 여전히 매력적인 바디라인은 잘 유지하면서 아쉬웠던 디테일을 정교하게 다듬은 결과 기아만의 디자인 특성을 반영한 제대로 된 대형 프리미엄 세단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괜찮다며 쏟아내는 구상교수의 이야기들 속에서 기분 좋은 흥분이 묻어난다. 필자도 마냥 듣고만 있어도 좋았지만, 빨리 새롭게 바뀐 K9을 직접 타 보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필자가 자동차를 시승할 때는 주로 성능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디자인은 개인적인 선호도가 크게 다르다는 이유로 가볍게 소감만 말하고 지나가게 되는데, 오늘은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시승해야 하는 만큼 시승하면서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지 물었다.
먼저 외관에서는 전, 후, 측면, 그리고 비스듬한 상태인 쿼터뷰 등에서의 비례와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비례와 자세를 통해서 보여지는 보수성과 역동성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보는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헤드램프, 휠 등의 디테일이 그 차가 추구하는 방향에 얼마나 부합되며 정교하게 다듬어졌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인테리어는 앉았을 때 눈에 보이는 것들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사용자 관점에서 봤을 때의 편리함과 세심한 마무리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 운전하면서도 헤드업 디스플레이, 계기판, 센터페시아 등 각종 인터페이스가 운전자를 얼마나 고려하여 디자인되었는데, 버튼의 모서리 처리와 조작감, 쇠와 가죽과 나무 등의 터치 촉감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이성을 처음 볼 때 어디를 가장 먼저 보는지 궁금해 하는데, 갑자기 자동차를 보는 첫 시선이 궁금해서 구상 교수는 자동차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는지 물어봤더니, 아무래도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라디에어터 그릴과 헤드램프라고 한다. 그 후에 본격적으로 살펴 볼 때는 결국 비례와 디테일에 신경을 쓰게 된다고.
오늘 만난 K9은 이번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처음으로 V8 5.0 엔진을 얹은 ‘K9 퀀텀’이다. 그 동안 에쿠스에만 V8 엔진을 얹고, K9에는 V6 엔진만 얹음으로써 K9이 다소 아랫급 취급을 받아 왔는데, 이제 당당히 에쿠스와 어깨를 견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미엄 세단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K9 퀀텀은 번쩍이는 메쉬가 돋보이는 라디에이터 그릴 한 쪽에 V8 5.0 이라는 배지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서 있었다.
교수님께 더 뉴 K9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 부분들을 직접 차를 보면서 좀 더 상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먼저 아라베스크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라디에이터 그릴이 기존에는 모서리 곡면이 뭉그러져 있어서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이었는데, 새 K9은 그릴의 에지를 강하게 세워 정교함과 긴장감을 높였다. 또 그릴 가운데에 크롬으로 마감된 매쉬를 적용해 높은 밀도와 짜임새 있는 치밀함을 더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그릴의 기계적인 미학을 완성시켰고, 고성능의 이미지를 잘 표현해 냈다.
옆모습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스퍼터링 휠과 휠 커버는 사물을 강하게 움켜 쥔 손의 힘줄과 근육의 긴장감을 형상화했는데, 이전에 비해 디테일이 정교해졌다. 아우디 A8도 비슷한 디자인으로 기계적인 요소를 강조했는데, 커버 사이로 볼트를 보이게 한 것이 차이다. 그리고 측면 캐릭터 라인은 새총을 당기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이 잘 표현됐다.
후미등은 굳이 금문교의 이미지를 차용하지 않더라도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잘 표현됐다. 이전보다 슬림해진 형태와 후미등 위쪽의 크롬 라인의 예리함 증가로 고성능 이미지가 더해지고 완성도 면에서 크게 나아졌다. 실내는 퀼팅 공법이 적용된 나파 가죽시트로 클래식하면서도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감성의 인테리어를 제공하고 있다.
시승을 하면서 나눈 디자이너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정리했다. 당연히 기아자동차와 최고 디자인 책임자 피터 슈라이어 사장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돼 있다.
디자이너의 중요성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 추구하는 방향이 같더라도 결국은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과 표현방식에 따라 결과물은 많이 달라질 텐데 디자이너는 얼마나 중요한가?
>>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 시스템이나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좋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디자이너의 역량은 창의성과 구현 능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디자이너는 그림은 잘 그리는데 아이디어가 부족하기도 하고, 또 어떤 디자이너는 그림은 잘 못 그려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놓는 사람도 있다.
K9은 아이디어 면에서 이미 뛰어난 완성도를 확보한 만큼 고급감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디자이너가 경험도 많아야 하고, 많은 차도 접해봐야 한다. 만약 젊은 디자이너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으면 결국 수준 높은 팀 운영을 통해 오랫동안 다듬으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의 몫이다.
기아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 영입 전후의 변화가 큰데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가 직접 멋진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 전후로 의사결정 구조가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디자인이 오늘날처럼 강조되지 못했던 시기에는 디자인 비전문가의 입김이 작용해서 디자인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는 피터 슈라이어가 온 후 그를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그에게 결정권을 주게 되면서 디자인 변수가 줄어들고 완성도가 높아지고, 개성 강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쳇말로 “피터 앞에서 잘난 척 하다가 망신 당하지 말자, 전문가에게 맡겨 두자”라는 인식이 최상위 경영진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그의 가장 큰 역할이다.
피터 슈라이어의 컨트롤 아래 디자이너들의 추구하는 방향이 잡히고, 그 차의 디자인 컨셉이 정말 제대로 튜닝이 된 상태에서 최고 경영진에 보고되고, 그 안이 그대로 채택되게 됐다.
매우 뛰어난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어떤 브랜드를 맡게 되면 그 브랜드의 철학에 맞게 디자인 방향도 어느 정도는 수정돼야 할 것 같은데 기아자동차와 피터 슈라이어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
>> 기아차가 피터 슈라이어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원래 기아자동차가 기능과 성능을 강조한 자동차를 오랫동안 만들어 왔는데, 아우디와 폭스바겐에서 독일의 기능주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왔던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 방향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대형차임에도 조금은 단단함을 유지하는 유럽산 프리미엄 세단들에 비해 안정적이면서 안락함이 돋보였던 시승을 마쳤다. 안락하면서도 후륜구동 자동차만이 전달할 수 있는 역동적인 주행 감각은 잘 묻어났다고 구상교수도 입을 모았다. 거기다 섬세한 터치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격 대비 경쟁 상대가 없는 최첨단 안전, 편의 장비들로 인해 더 뉴 K9의 인테리어는 정말 최고라고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이제 시승을 마무리하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마무리할 때다.
직접 시승을 통해 확인한 기아 더 뉴 K9 디자인의 완성도는 어떠한가?
>> 전면부 이미지는 초기에 비해 굉장히 밀도 있고, 힘있고, 세련되어 졌다. 측면은 매우 역동적인 비례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도어 상단의 크롬 몰딩 두께가 조금 더 얇아졌으면 보다 세련된 이미지가 됐을 것 같다. 테일램프는 투박했던 것이 정교해지고, 디테일이 더해지면서 고급감이 높아졌다. 인테리어는 처음부터 최고였다고 장담하는데, 퀼팅 시트가 더해지면서 더욱 고급스러워졌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완성도가 높은 비례를 갖고 있었지만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의 디테일을 많이 보완해서, 가까이서 보더라도 정교하고 조화를 잘 이룬, 싫증을 느끼지 않는 디자인으로 성숙됐다.
더 뉴 K9 디자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 장점은 고급승용차의 단순히 크고 호화로움에서 벗어나 오너가 직접 몰 수 있는 고급차 장르를 잘 표현함으로써, 고성능 프리미엄 세단 디자인의 새로운 기준을 열었다는 점이다. 단점이라기 보다는 아쉬운 점은 광기가 조금 더 더해진다면 K9의 경쟁력이 한 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아자동차 디자인의 경쟁력을 정의 내린다면?
기능성과 역동성을 강조해 온 기아자동차의 역사에 독일식 기능주의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기아자동차만의 유니크한 디자인이 완성되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차량 가운데 기아자동차를 선별하기가 어렵지 않은 만큼 기아자동차만의 차별화된 디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 현대 그랜저 XG가 등장했을 때 매우 신선하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 베이스 모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현대 기아를 막론하고 최근 모델들은 모두 독자모델인 만큼 자신들만의 고유성이 잘 살아있다. 기아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기아의 역사와 디자인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 반면 최근에는 오히려 일본차의 디자인이 쇠퇴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은 이제 브랜드 파워와 헤리티지를 쌓아가야 할 때다. 기술을 과시적으로 보여주면서 만들어지는 전설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구상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필자는 ‘디테일이 생명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동차의 성능과 기능 면에서 실제 상황을 고려한 아주 섬세한 조작방식과 감각의 차이가 결국 명차를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스마트 어드밴스트 크루즈 컨트롤이나,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오토 홀드 같은 편의 장비도 처음엔 존재자체로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부드럽고 정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작동하느냐가 상품성을 결정 짓게 된다.
그런데 디자인에서도 결국 디테일이 생명이라는 구상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디자인을 보는 필자의 시각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좋은 배움을 허락해 준 구상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디자인으로 완성도를 크게 업그레이드 시킨 기아 더 뉴 K9의 디자인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