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양산형 수소연료전지차(FCV)인 ‘미라이’를 선보인 토요타가 관련 특허실시권을 무상 제공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토요타는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델레이 베이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2015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 특허실시권 무상 제공은 전 세계 약 5,680건의 연료전지 관련 특허(심사 계류 중인 것 포함)에 해당되며, 구체적으로는 연료 전지 스택(약 1,970건)·고압 수소 탱크 (약 290건)·연료 전지 시스템 제어(약 3,350건) 등과 같이 FCV의 개발·생산의 근간이 되는 특허들이다. 토요타는 관련 특허를 사용해 FCV의 제조·판매를 하는 경우, 시장도입초기인 2020년말까지 특허 실시권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특허실시권 무상제공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인 FCV의 초기 보급을 우선하여 FCV의 개발과 시장 진출을 진행하는 자동차 메이커와 수소 충전 스테이션 정비를 진행하는 에너지 회사 등과의 협조 체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토요타의 이번 특허 공개는 지난 해 6월 자사의 전기차 관련 특허를 모두 공개한 미국 테슬라의 정책을 떠올리게 만든다. 테슬라는 자사의 전기구동장치, 동력전달장치, 배터리 등 전기차 개발과 관련된 핵심 특허를 모두 공개하며 “짝퉁 테슬라를 만들어도 상관 없다”는 파격 발언으로 업계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테슬라의 특허 공개는 배출가스 없는 전기차로 지구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이념 외에도 전기차 시장 전체 규모를 키우겠다는 테슬라의 계산이 담겨있었다. 북미와 유럽에서 전기차 시장 규모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할 바가 아닌 만큼, 특허 공개를 통해 많은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 파이가 커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사에도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오늘 발표된 토요타 역시 FCV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속내가 보인다. 토요타는 특히 이슈가 되고 있는 전기차 부문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부문에서 여전히 최고로 인정받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토요타가 하이브리드를 고집하는 사이 경쟁자들은 전기차로 다음 세대 기술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쌓는 데에 성공했다. BMW i3, 쉐보레 볼트, 닛산 리프 등의 등장은 한 때 미래의 자동차로 각광받았던 하이브리드를 ‘과도기의 유물’로 전락시키고 전기차가 진정한 미래 자동차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었다.
토요타로써는 전기차로 기울어진 미래 친환경차의 무게추를 FCV로 빼앗아 오고 싶은 셈이다. 이미 선두를 빼앗긴 전기차를 뛰어넘어 FCV를 미래 자동차로 밀겠다는 것이 토요타의 진짜 속내일 것이다.
특히 이번 특허실시권 무상 제공 내용이 수소 충전소 특허를 포함한다는 부분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존 전기 인프라에 손쉽게 이식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와 달리, 수소 충전소는 넓은 부지와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미래 성장동력으로 ‘수소 사회’를 장려하고 있지만 수소 충전소는 수도권 40여 곳에 불과하고, 북미와 유럽 역시 전기차 충전소 분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토요타는 충전 인프라 확보를 위해 수소 공급·제조 등과 같은 수소 충전소 관련 특허(약 70건)에 관해서는 수소 충전소를 설치·운영하는 경우 특허 실시권을 기간 한정 없이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FCV 보급의 급선무인 충전 인프라 확보와 충전 관련 기술표준 선점을 동시에 이뤄내겠다는 계산이다.
과연 토요타의 이러한 방침이 FCV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어올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미지수이다. 중국 등 후발주자들이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반면, 복잡한 생산공정과 비싼 제작비용 등을 감수하면서 FCV 사업에 투자하려는 회사가 아직까지 많지 않기 때문. 토요타가 출시한 양산형 FCV, 미라이 역시 6,200~7,00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모델로써 실질적인 수익보다는 이미지 메이킹 역할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경쟁사들의 추격도 녹록치 않다. 혼다는 이미 2008년에 FCV인 ‘FCX 클라리티’를 리스 형태로 선보인 바 있으며,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그 후속모델을 공개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 역시 작년 2월 투싼 수소연료전지차를 양산하였으며 워즈오토 세계 10대 엔진에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이 선정될 정도로 독자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GM, 다임러 등이 가까운 시일 내로 양산 FCV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타 FCV의 미래가 어둡지는 않다. 어쨌든 이번 특허 공개를 통해 토요타는 시장에서 기술표준을 선점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은 셈이고, 충전시간 등 현실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FCV가 전기차 다음 세대의 미래 친환경차가 될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기 때문.
과연 토요타가 바라는 대로 이번 특허 공개가 수소연료전지차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인가. ‘미라이(일본어로 미래)’가 시장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