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기술같았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국산화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2009년, 현대기아차가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와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것을 기점으로 해 지난 5년 간 국산 하이브리드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현대기아차보다 거의 10년 정도 앞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시판한 토요타에 비하자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제 기술 면에서 어느 정도는 성숙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다.
친환경차의 무게추가 디젤 승용으로 많이 넘어갔다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하이브리드는 정숙성과 쾌적성 면에서 디젤이 따라올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자제품처럼 작동하는 이 미래형 자동차들은 운전자로 하여금 지구를 지키기 위해 첨단 자동차를 탄다는 자부심도 갖게 만들어준다. 요컨대 하이브리드는 여전히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기아 K5 하이브리드 500h를 시승했다. 이 시점에서 굳이 타볼 필요가 없었지만, 얼마 전 준대형인 K7 하이브리드와 SUV인 렉서스 NX 300h 등을 시승하면서 국산 중형 하이브리드 세단의 현주소가 궁금해졌다. 또 며칠 전 출시된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타보기에 앞서 시승을 진행하여 얼마나 바뀌었는 지 확인하기 위한 비교대상이 필요하기도 했다.
새삼스러울 수도 있다. 내년이면 K5 역시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고, 형제차였던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이제 새로운 엔진과 전기모터를 탑재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K5 하이브리드는 꽤 우수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 만큼 차세대 모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줬다.
외관은 K5가 페이스리프트 되고 K5 하이브리드 역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K5 하이브리드는 원래 형제차인 쏘나타 하이브리드에 비하면 일반형과의 디자인 차이가 적었는데, 그나마 부분변경이 되면서 예전보다는 하이브리드 고유의 차이점이 많이 돋보인다.
범퍼에 있던 주간주행등은 헤드램프로 올라갔고, 안개등은 일반형 K5와 마찬가지로 LED 안개등이 적용되었다. 전면부에서는 범퍼 차이가 가장 큰데, 일반형 모델의 캐릭터 라인이 안개등 윗쪽으로 감싸며 내려오는 형태인 것과 달리 하이브리드는 범퍼 끝단에 브리더를 추가하며 바깥쪽을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사소한 차이지만 하이브리드의 범퍼가 더 무게감 있다.
리어 디자인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테일램프. 전용 디자인의 클리어 타입 테일램프는 미래적인 분위기를 한껏 부렸다. 부분변경 되면서 테일램프 면적이 많이 넓어졌는데, 하이브리드 모델에서는 이 부분을 클리어 처리 하여 뒷부분 인상이 한결 부드럽게 바뀌었다. 부분변경과 함께 500h라는 서브네임도 추가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의미불명인데다 별로 와닿지 않는 이름이다.
측면에서는 공기저항을 낮춘 전용 휠과 프런트 휀더의 ‘에코 하이브리드’ 가니쉬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친환경차 이미지를 살리면서 효율을 고려한 디테일 업을 제외하면 일반 K5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인테리어는 계기판을 제외하면 일반 K5와의 차이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운전석을 둘러싸는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는데, 아우디 인테리어를 연상시키는 K5의 인테리어는 출시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기에 인테리어 소재의 재질감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지적이 많았는데, 모델체인지를 앞둔 후기형인 만큼 K5 하이브리드의 인테리어 품질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워졌다.
부분변경 이전 모델과 비교하면 몇몇 개선점이 눈에 띄는데, 정신없었던 센터페시아를 더 깔끔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정리하고 스티어링 휠도 새로운 형태로 교체했다. 스티어링 휠은 국산차 치고는 퍽 두꺼워 그립감이 우수하다. 특히 스티어링 휠 아랫부분의 하이그로시를 제외하고 모든 부위에 열선이 작동하는 것이 좋았다. 시트 역시 기대 이상으로 포지션이 낮고 홀딩력이 우수해 운전석에서 느끼는 인테리어 만족도가 높았다.
계기판은 엔진회전수를 확인할 수 있는 타코미터를 아예 배제하고 에코가이드, 배터리 게이지 및 수온계를 좌측에 배치하고 연료계와 속도계를 우측에 배치하는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레이아웃을 따랐다. 에코가이드 안쪽에는 EV 모드 주행 시 녹색으로 EV 주행등이 들어와 주행습관을 신경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트렁크 공간은 하이브리드인 만큼 한계가 존재한다. 배터리팩이 트렁크 안쪽에 위치하기 때문.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에서는 배터리팩이 트렁크 아랫쪽 스페어 타이어 위치로 이동한 만큼 K5 하이브리드 역시 후속 모델에서는 트렁크 활용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뭐니뭐니해도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파워트레인이 되겠다. K5 하이브리드는 150마력을 내는 2.0L 누우 앳킨슨사이클 엔진에 전기모터를 조합하였다. 부분변경 이전 전기모터 출력이 30kW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35kW(약 45마력) 전기모터가 탑재되어 합산출력은 195마력에 이른다. 2.4L 쎄타II 엔진을 탑재한 K7 하이브리드와는 엔진만 다를 뿐, 전기 모터와 5.3Ah 270V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는 같다.
시동을 걸면 계기판에 Ready라는 표시가 되는 것으로 주행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속도를 서서히 높이면 처음에는 전기모터가 위이잉-하는 소리를 내며 차를 굴리다가 가속이 필요하거나 언덕을 오를 때에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K7 하이브리드 시승 때에는 시동이 걸리는 순간의 충격이 다소 심하게 느껴졌는데, 되려 아랫급인 K5 하이브리드에서는 비교적 회전질감이 부드럽고 티나지 않게 시동이 걸렸다. 앳킨슨 사이클 엔진의 필연적인 진동이 잘 억제된 부분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주행감각은 일반 K5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추가되면서 무게는 2.0 일반 버전보다 150kg정도 무거워졌는데, 출력 또한 상승하여 둔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기 모터가 초반 토크를 더해주면서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제법 경쾌한 가속이 가능했다. K7 하이브리드의 경우 가솔린 엔진에 비해 출력이 부족했지만, K5 하이브리드는 그 반대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CVT 대신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리니 CVT 특유의 이질감이 적어 운전이 더 수월하다.
에코 타이어의 높은 편평비와 낮은 접지력이 아쉽지만, 서스펜션 역시 고속영역대에서도 퍽 안정적이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차기 모델에서는 앳킨슨 사이클 엔진이 GDi 엔진으로 변경되니 더 스포티한 주행감각과 부드러운 회전질감을 기대해볼 만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꼭 지루하고 재미없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병렬식 하드타입으로, 토요타의 직병렬 혼합식에 비하면 구조가 단순해지는 대신 EV모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토요타 하이브리드는 시내에서 거의 EV모드로만 주행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K5 하이브리드는 출발 시에만 가능할 뿐, 20km/h 정도만 가속하면 엔진 시동이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도를 높이면 탄력주행 중에는 EV모드로 변환되지만 마찬가지로 EV모드로만 주행하기는 힘들다.
배터리 역시 병렬식 하이브리드 특성 상 충전률이 높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배터리 충전률이 낮다는 것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연비 향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전기 모터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배터리는 시승기간 중 50% 이상 충전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외에도 앞서 이야기한 6단 자동변속기는 주행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CVT를 채택하지 않으면서 또 10% 가량의 효율 개선을 포기하게 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전기 모터만으로 뛰어난 연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부분의 효율을 긁어 모아서 우수한 연비를 완성시키는 것인데, K5 하이브리드는 그러한 집요함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 결과 공인연비는 16.8km/L이지만 실연비는 시내에서 12km/L을 넘기 힘들었고, 고속도로 연비는 겨우 공인연비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일반 가솔린 모델에 비하면 좋은 연비지만, 공인연비를 가볍게 뛰어넘는 차가 속속 등장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공인연비 달성조차 쉽지 않다는 점은 K5 하이브리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비교해보자면 오히려 더 크고 무거운데다 배기량도 높은 K7 하이브리드나 공인연비가 12.6km/L에 불과한 렉서스 NX 300h에 비해서도 리터당 2~3km 정도를 덜 가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시승하면서 연비만 실망스럽다는 점은 다소 황당한 일이다.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공인연비를 18.2km/L로 발표하고 실연비 또한 우수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K5 하이브리드 역시 후속 모델에서는 연비 부분이 크게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K5 하이브리드의 완성도는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원가절감 티를 벗겨낸 인테리어나 이질감을 최소화한 부드럽고 조용한 파워트레인, 경쾌한 주행감각은 퍼포먼스 하이브리드 세단의 가능성도 열어주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기왕 환경을 지킨다면 재미있게 지키는 쪽이 운전자에게는 더 좋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비에 관한 한 더욱 분발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효율 개선의 고리들을 모아 전반적인 연비를 향상시키는 토요타 하이브리드의 집요함을 더욱 닮을 필요가 있다. 다만 이미 출시된 지 4년이 지난 모델인 만큼 K5 하이브리드로 현대기아의 하이브리드 기술 현황을 평가할 수는 없겠다. 그 간의 숙성과 연구를 거친 LF 쏘나타 하이브리드나 K5 후속 모델의 하이브리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불과 5년 남짓 된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분발하는 모습은 참으로 기특하다. 아직 부족하지만 수입 하이브리드를 성큼 성큼 따라가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한 국산 하이브리드를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K5 하이브리드는 그러한 기대에 확신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