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낭만파 패밀리카, 시트로엥 C4 피카소 시승기

자동차의 이름은 그 모델의 성격을 단 몇글자에 담아내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때문에 많은 자동차 업체들은 새 모델의 이름을 짓는 데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다. 주로 많은 차들이 동물이나 지명의 이름을 따는데, 투우소의 이름을 딴 람보르기니 모델들이나 ‘에쿠스(준마)’, ‘아슬란(사자)’, ‘카이맨(악어)’ 등이 동물 이름을 따왔고 ‘싼타페’, ‘캘리포니아’, ‘엘도라도’ 등은 지명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추측컨대 화가의 이름을 딴 차는 시트로엥이 처음일 것이다. 그것도 보통 화가가 아닌, 입체파의 거장으로 익히 알려진 파블로 피카소다. 예사로운 차가 아니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C4 피카소는 그런 예상대로 평범함을 거부하는 MPV이다.

시트로엥 C4 피카소의 정체를 정확히 알려면 시트로엥 라인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트로엥은 일반 모델인 C 라인업과 고급형 모델인 DS 라인업으로 나뉜다. 피카소는 C 라인업의 MPV형 모델에 붙는 서브네임이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C4 피카소는 5인승 MPV이며, 지난 3월에 선보인 그랜드 C4 피카소는 더 길고 무거운 7인승 버전이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C4 피카소는 앞서 한국에 출시되었던 DS3, DS4, DS5 등과는 궤를 달리 하는 모델이다. 다른 시트로엥 모델들이 운전자를 위한 차였다면 C4 피카소는 온 가족을 위한 패밀리카이다. 식상한 패밀리카가 되기를 거부하는 C4 피카소와 함께 주말을 보냈다.

익스테리어에 관한 한 C4 피카소는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독특한 스타일링을 뽐낸다. 앞서 출시된 그랜드 C4 피카소와 비교하자면 전체 비례는 계란형으로 200mm나 짧아졌고, 뒷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노즈 디자인은 레이아웃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에 차이가 있다.

전장*전폭*전고는 4,430*1,825*1,610(mm)로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 MD보다도 전장이 짧은 반면 전고는 성인 여성 키와 맞먹게 높다. 차가 컴팩트하고 시야가 높으니 여성이 운전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좁은 시내에서도 그랜드 C4 피카소에 비해 훨씬 수월한 운전이 가능하다는 점은 큰 메리트이다.

전위적인 노즈 디자인은 지극히 미래지향적이다. 주간주행등은 시트로엥 엠블렘에서 이어지는 크롬 라인에 이어지며, 그 밑에 분리된 헤드램프와 코너링 램프를 겸한 안개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지프 체로키, 닛산 쥬크 등이 이렇게 여러 개로 분리된 램프 디자인을 앞서 선보였지만, 그나마 C4 피카소의 디자인이 가장 이질감이 덜하다.

리어는 일견 폭스바겐을 연상시킨다. ‘ㄷ’자 형태였던 그랜드 C4 피카소에 비하면 얌전한데, 입체적인 LED 테일램프의 디자인은 매우 근사하다. 램프 중간에 절개선이 있지 않고 테일게이트에 램프 전체가 내장되어 트렁크 리드가 넓고 실용성이 좋다. 단 그 만큼 테일게이트가 무거워 여성 운전자라면 열기 힘들 수도 있겠다.

‘피카소’ 로고는 입체파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서명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사실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으니 프랑스 차 특유의 낭만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링을 상징하기에 충분하겠다. 여담이지만 시트로엥은 이 피카소 로고를 사용하기 위해 매년 파블로 피카소의 후손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자, 이제 C4 피카소의 하이라이트인 인테리어를 살펴볼 차례이다. 도발적인 익스테리어를 지닌 차들이 인테리어에서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C4 피카소만큼은 예외이다.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다’는 뜻의 파격이라는 단어는 이 차를 위한 것 같다.

물리버튼을 철저히 배제한 터치식 센터페시아와 중앙에 위치한 풀 디지털 계기판, 간결한 형태의 칼럼식 시프트 레버까지 하나 하나가 독창적이다. 특히 실내 정 중앙에 위치하여 3가지 디자인으로 변신하는 계기판은 각각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작은 시프트 레버를 조작할 때에는 종종 와이퍼 레버를 건드렸고, 거의 모든 기능을 디스플레이에 집어넣은 터치식 인터페이스는 운전 중 쳐다보지 않고 조작하기 힘들었다. 블루투스 스트리밍은 인식감도나 반응속도가 불만족스러웠고, 종종 유럽형 내비게이션이 액정에 나타나 기자를 프랑스 시골마을로 안내하기도 했다.

사실 이 문제들은 다른 푸조 시트로엥 모델에서도 종종 지적되는 부분인데,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현지화와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더욱 필요해보인다. 재도약을 꿈꾸는 푸조 시트로엥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자.

소프트웨어적 부분은 차치하고, 차량의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운전석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프런트 윈드실드. 넓은 윈드실드와 글라스 루프는 탑승자에게 엄청난 개방감을 선사한다.

원박스 형태로 윈드실드가 전진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진 A필러 사이에는 오페라 글래스를 추가하여 코너를 탈출할 때도 사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트포지션도 높은 편이라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운전하기 편하다. 아빠 뿐 아니라 엄마가 운전하기에도 좋은 차가 될 것이다.

2열 시트조차 평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2열에는 벤치 타입 시트가 제공되는 반면 C4 피카소의 2열은 3개의 독립된 시트로 이뤄져있다. 각각의 시트는 슬라이딩과 약간의 리클라이닝이 가능해 후열 탑승자 역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시트로엥의 설명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실용도가 떨어지는 2열 가운데 시트를 좌우와 똑같이 편하게 앉아 갈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은 마음에 든다. 더불어 1열 시트 뒷면에 설치된 선반은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날 때 아이들이 간식을 먹기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이 시트들은 개별적으로 폴딩이 가능하다. 시트 옆의 스트랩을 힘껏 잡아당기면 시트가 젖혀지는데, 3개의 시트를 모두 폴딩하면 무려 1,851L의 트렁크 공간이 탄생한다. 이 정도로 짧은 전장에서 이 만한 공간이 나오는 차는 MPV 중에서도 드물다. 그것도 모자라 1열 시트 밑에는 서랍형 수납장이, 2열 시트 발 밑에는 추가 수납함이 숨어있다.

철저히 온 가족을 위한 차로 설계된 만큼 운동성능 면에서는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없다. 2.0L 직렬4기통 e-HDi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7.8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특히 최대토크는 2,000~3,200rpm의 실용영역대에 두루 발휘되면서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6단 자동변속기는 변속 속도도 괜찮고 다운시프팅 시 어느 정도 회전수 보상도 이뤄진다. 다소 소음 진동이 있지만 2.0L급 디젤 엔진 치고는 조용한 편이다.

서스펜션은 시트로엥 차 치고는 부드럽고 스티어링 휠도 가벼운 편인데, 아무래도 패밀리카로써 다양한 운전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차다운 기본기가 탄탄하여 작은 요철을 걸러내고 휘청이지 않는 안정감이 일품이다. 스티어링 휠 역시 고속영역에서는 확연히 무거워지며 안정성을 보탠다.

여느 푸조 시트로엥 모델과 마찬가지로 연비는 우수한 축에 속한다. 공인연비는 14.4km/L인데 실연비는 시내에서 12km/L, 간선도로에서는 17km/L에 달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길에서는 스톱 앤 스타트 시스템이 효율을 더한다. 국산, 수입 모델을 막론하고 동급에서 이 정도의 효율을 내는 차가 드물다는 점은 큰 메리트가 된다.

시트로엥 C4 피카소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낭만파 패밀리카다.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은 파리지엥의 낭만을 서울 한복판에서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패션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패밀리카로써의 실용성과 쾌적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4,190만 원이라는 가격에 비하자면 다소 빈약한 편의사양이나 불편한 인터페이스, 직물시트 등이 불만사항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차를 팔 때까지 한 번 쓸까 말까 한 옵션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실속을 챙기는 구성이 지극히 프랑스 차답다. 추후 연식변경이나 모델 체인지 시에는 마감품질을 향상시키고 편의사양을 추가하여 한국 정서에 맞게 상품성이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어짜피 시트로엥 C4 피카소는 모두에게 매력적일 필요는 없는 차다. 무난하고 심심한 MPV라면 이미 지천에 널려있다. 그러나 시트로엥 특유의 유려한 디자인과 톡톡 튀는 개성, 독보적인 효율과 실용성을 모두 원하는 낭만파 실용주의자에게 C4 피카소는 대안 없이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