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볼보 V40 D4 R-디자인은 폭스바겐 골프 GTD를 능가하는 성능을 북유럽 특유의 여유로움 속에 담아 냈다. 볼보 디자인 최고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멋진 바디라인에 R-디자인의 스포티함을 더해 디자인에서도 어떤 해치백보다 높은 매력을 발산한다. 볼보 전통의 첨단 안전 장비들에, ACC등 첨단 편의 장비까지 더해 동급 핫해치 중 최고의 상품성을 확보했다.
지난 수년간 볼보는 변한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지 않아서다. S60, V60, V40 이후 이렇다 할 신차가 없었다. S80은 이미 모델 체인지 시점을 지난 지 한참 됐다. 그런데 최근 볼보의 행보가 심상찮다. 분명 새 모델은 아닌데 차분하게 내실을 다져가는 모습이 조만간 제대로 된 신차를 쏟아낼 분위기다. 하지만 지금 모델들도, 심지어 너무 오래된 것 같은 모델들도 새로운 파워트레인과 기술들을 적용해 여전히 높은 상품성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하루 빨리 신차가 나와 준다면 더 좋겠지만.
현재 볼보 패밀리 중 가장 젊은 모델은 V40이다. 크기가 가장 작은 모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모델이기도 하다. 컴팩트 세단 S40, S40의 왜건형 V50, 그리고 3도어 해치백이자 스포츠 모델인 C30를 동시에 대체하면서 등장한 V40은 이들 3가지 모델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도 신기하다. 분명 5도어 해치백인데 날렵한 디자인은 C30의 스포츠카 느낌이 강하고, 뒤쪽 디자인은 해치백인지 왜건인지 헷갈릴 정도로 볼도 특유의 왜건 스타일이 살아 있다.
V40은 초기에 가솔린 2.0과 디젤 2.0, 그리고 후에 디젤 1.6 엔진 모델을 국내에 속속 선보였고, 디젤 2.0에는 R-디자인 모델도 선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초 볼보는 매우 혁신적인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선보였는데, 지난 10월 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적용한 모델들을 새로 선보였다.
그 때 V40도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으로 바뀐 R-디자인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오늘 시승한 모델은 그때 등장한 V40 D4 R-디자인 모델이다. 기존의 5기통 2.0 디젤 엔진 대신 새로운 드라이브-E 4기통 2.0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가 장착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볼보가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었던가? V40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이런 볼보 디자인의 변화는 과거 각진 박스형의 차체에 조금씩 라운드를 가미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는데, 2005년에 등장한 S80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사실 그 S80이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모델이다. 이 후 등장한 모델들이 모두 패밀리 룩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볼보를 형성했고, 2008년 등장한 XC60과, 2010년 등장한 S60을 통해 미래적인 느낌마저 드는 현대 볼보의 디자인이 완성됐다.
2012년 등장한 V40은 첫 눈에 S60을 많이 닮았다. 하지만 더욱 젊은 감성이 돋보인다. 옆으로 돌아 뒤로 가면 잘려 나간 허리로 인해 이차가 왜건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얼핏 보면 왜건인 듯 왜건 아닌 해치백이다.
V40 R-디자인에는 R-디자인 만의 스포티한 장식들이 많이 부착됐다. 그릴에는 R-디자인 엠블렘이 더해졌고, 볼보의 상징 아이언 마크는 무광 실버로 처리했다. 헤드램프는 안쪽을 검게 스모크 처리했고,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로 검정색 콧 수염이 더해졌다. 범퍼 좌우에는 볼록한 핀이 더해지고 그 아래 세로로 안개등이 위치한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은색 사이드 미러 캡과 18인치 다이아몬드 커팅 투톤 알로이 휠이다.
V40은 경쟁 모델이 폭스바겐 골프인 만큼 차체 크기에서도 골프와 비교된다. V40은 차체 크기가 4,370 x 1,800 x 1,440mm에 휠베이스가 2,645mm이고, 골프 GTD는 4,255 x 1,800 x 1,450mm 크기에 휠베이스 2,640mm다. V40이 전장 115mm, 휠베이스 5mm가 더 길다. 첫눈에 V40은 매우 늘씬한 차체로 비교적 각이 많이 진 골프에 비해 지붕이 낮아 보이는데, 실제로 차고는 10mm가 낮다. 거기다 V40이 차체가 길고, A필러를 많이 눕혀서 디자인한 때문에 더 날렵해 보인다.
실내는 첫 눈에 그 동안 계속 봐 왔던 볼보자동차의 실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R-디자인이 적용된 덕분에 많이 세련되고 스포티한 느낌이 강하다. 데시보드를 이루는 라인들도 그 동안의 그냥 단순하기만 했던 라인들에 비해서는 꽤 세련된 선을 더했다. 실내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는 요즘 가구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여유로운 감성이 잘 묻어난다.
뒷 부분에 공간을 갖추고 있는 센터 스택이 적용된 센터페시아에는 우측에 세로로 알루미늄 느낌의 띠를 적용했는데, 비대칭의 라인을 통해서 디자인 감각을 자랑한다.
실내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은 R-디자인 시트다. 우아한 곡선들이 많이 사용됐고, 라인들에는 흰색 스티치와 파이핑을 더해 스포티하게 꾸몄다. 비록 통풍시트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뒷좌석까지 열선 시트를 더해 편의성을 높였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에는 R-디자인 엠블렘을 적용했고, 좌측 스포크에 있는 버튼들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조작 버튼들이다. 정속 주행 뿐 아니라 앞 차와의 차간 거리까지 유지하면서 주행할 수 있는 편의 장비로 장거리 주행에서 그 편리함이 빛을 발한다. 익숙해지면 막히는 시내에서 사용해도 무척 재미있다.
계기판은 가운데 큰 원 하나가 위치하지만 실제 계기들은 모두 디지털로 표시된다. 엘레강스, 에코, 퍼포먼스 모드로 계기판 화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데, 엘레강스와 에코 모드에서는 가운데 눈금으로 표시되는 속도계가 위치하고, 회전계는 우측에 세로로 된 미터로 표시된다. 반면 퍼포먼스 모드로 바꾸면 가운데 눈금 회전계가 위치하고 그 가운데 디지털 속도계가 자리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빨간색을 적용해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오디오는 볼보가 자랑하는 하이 퍼포먼스 오디오가 적용돼 꽤 만족스러운 음질을 제공한다. 네비게이션은 터치스크린이 적용되는데, 기본 적용돼 있는 오디오 기능에서는 터치스크린이 적용되지 않고 한글 지원도 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V40 D4 R-디자인에는 드라이브-E 기술이 적용된 신형 4기통 2.0 직분사 디젤 엔진이 적용됐다. 드라이브-E 기술이 적용되면서 가장 크게 개선된 부분은 진동과 소음이다. V40 D4에서도 매우 조용한 실내가 돋보였다. 특이한 것은 다른 모델에 얹히는 드라이브-E 디젤 엔진은 같은 배기량에 181마력을 발휘하는데 비해, V40 D4 R-디자인에는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발휘하는 엔진이 얹힌다.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작은 차체인지라 가장 강력한 달리기를 구현할 수 있는 만큼 폭스바겐 골프 GTD를 견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GTD는 최고출력이 184마력이다. 어쨌든 평화주의자처럼 여겨져 온 볼보가 이렇게 뜬금없이 과감한 행보를 보인 것이 재미있다.
0~100km/h 가속에는 7.2초가 걸린다. GTD급 디젤 핫해치로서는 매우 빠른 가속력이다. 골프 GTD보다 0.3초가 빠르다. 하지만 실제 급가속을 해보면 가속의 질감 면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GTD는 단단하게 가속하는 반면 V40은 빠르지만 여유롭다.
고속에서의 안정감도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여기서도 독일차와는 다른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중저속에서의 승차감을 비교해 보면 그 여유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골프 GTD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승차감을 많이 희생시켰다면 V40은 승차감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에서 안정성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그래서 분명 하체에서 단단함이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위화감이 생길 정도의 딱딱함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V40의 여유가 더 마음에 든다.
전반적인 주행 질감에서 여유가 묻어나는 것은 북유럽 태생 핫해치의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변속기의 스포츠 모드는 기대 이상으로 화끈하다. 기어 레버를 왼쪽으로 밀면 바로 스포츠 모드로 바뀌면서 엔진 회전수가 충분히 높아진 후에 변속이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워낙 토크가 높다 보니 일반 모드보다 1단만 더 낮춰도 펀치력이 크게 상승한다. 상황에 따라 1~2단 정도 낮게 기어를 운용하면서 고회전을 적극 사용하면 항상 강력한 토크의 펀치력을 즐길 수 있다. 폭스바겐 그룹 디젤 차량의 스포츠 모드가 매우 강력한 편인데 V40 또한 그에 못지 않거나 오히려 더 강력한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면 수동으로 변속할 수 있다. 와인딩을 달릴 때는 수동모드로 고회전을 끝까지 사용하는 것이 재미있긴 하지만,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디젤 엔진의 특성상 최고회전수가 많이 높지 않아 시프트 패들로 고회전을 마음껏 쓰는 재미는 가솔린 엔진에 못 미친다. 다만 좀 더 빠른 변속과 상황에 맞게 운전자가 기어 단수를 선택해서 주행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아마 V40 D4 정도의 핫해치에 시프트 패들이 달려 있지 않았다면 많이 아쉬워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디젤 핫해치에 시프트 패들은 계륵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여유와 안전의 대명사인 볼보를 시승하면서 이런 스포티한 주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갑다. 그것도 본격적인 R 모델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제는 볼보도 디자인과 성능으로 이야기하는 시대가 온 것인가?
연비는 복합 16.8km/l(고속도로 연비 20.3km/l)로 1등급이다. GTD의 16.1km/l보다 높다. 오토 스타트/스톱 시스템과 8단 변속기의 효율성이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V40 D4 R디자인에는 첨단 편의 안전장비도 넘치도록 채웠다. 말 그대로 동급 최강이다. GTD에서는 수동으로 조절하는 시트가 V40에서는 당연히 전동이다. 첨단 편의 장비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ACC도 갖췄다. 세그먼트에서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전방의 차량, 보행자, 그리고 자전거 이용자와 추돌 위험이 예측될 경우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인텔리 세이프(Intelli Safe: Pedestrian & Cyclist Detection with Full-Auto Brake)’ 시스템과 함께 작동하면 추돌 안전성은 극대화된다. 2012년 볼보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보행자 에어백(Pedestrian Airbag)도 갖췄다. 그 외에도 사각지대 경보장치인 BLIS 등 그 동안 볼보가 자랑해 온 안전장비들이 모두 적용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가격이 너무 많이 높아졌다. V40 D4 R-디자인이 4,830만원이다. 마치 볼보도 마음 먹으면 이런 차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작심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이 팔릴 모델은 1.6 디젤 엔진을 얹은 V40 D2일 테니까 말이다.
볼보 V40은 디자인과 성능, 연비, 편의 장비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새로운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더한 V40 D4 R-디자인은 동급 핫해치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달리기를 위한 핫해치로의 접근보다는 개성 있는 디자인과 동급 최고의 성능을 북유럽 특유의 여유로움과 함께 즐긴다는 접근이 더 적합해 보인다. 거기다 그 동안 컴팩트 해치백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ACC를 비롯한 최고의 안전 편의사양까지 더해져 프리미엄 컴팩트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V40 D4 R-디자인이 볼보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업그레이드시켜 준 만큼 앞으로 1.6 디젤 엔진을 얹고, 놀라운 연비를 제공하는 V40 D2를 비롯한 다양한 V40들을 거리에서 더 많이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