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고성능차를 ‘재미있는 차’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낮게 깔린 고강성 바디와 천둥같은 배기음을 뿜어내는 엔진, 각종 첨단 전자제어장치가 탑재된 스포츠카들은 분명 멋지고 빠르다.
그러나 확실히 하자면, ‘빠르다’와 ‘재미있다’는 동의어가 아니다. 슈퍼카가 반드시 운전 재미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사실 재미로만 보자면 작고 빠릿빠릿한 소형차체에 제어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성능의 엔진을 얹고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차가 훨씬 재미있게 운전할 수 있다. 미니 쿠퍼나 마쯔다 로드스터같은 차들이 매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이다.
여기, 재미있는 차를 갈구하는 드라이버들을 위한 핫해치가 있다. 바로 쉐보레의 B 세그먼트 해치백인 아베오 RS 터보이다. 이미 지난 해 11월에 선보인 모델이지만, 1년 만에 출력을 10마력 높이며 돌아왔다. 쉐보레의 본적은 미국이지만 아베오는 GM의 소형차 개발본부인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졌으니 혼혈 핫해치라고 해도 되겠다.
그간 1.6L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해왔던 아베오 일반트림이 모두 RS와 동일한 1.4L 터보 엔진을 탑재하면서 RS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엔진이라 하더라도 RS는 스포츠 주행에 더 걸맞게 세팅된 엄연한 고성능 버전이다. 이 재미가 넘치는 해치백 파이터를 며칠 간 시승해 보았다.
아베오 RS 터보는 익스테리어부터 일반 버전과 차별화된다.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프런트 범퍼의 디자인원형을 채택한 일반 버전과 달리 RS 터보에는 날카로운 형태의 안개등이 장착되고 그 주변을 크롬 테두리로 감싼다. 현 아베오의 원조 격인 ‘아베오 RS 컨셉트카’와 더욱 닮은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이 컴팩트한 차체에 17인치 건메탈 그레이 휠이 장착되어 전체적인 측면 스탠스가 매우 공격적으로 완성된다. 타이어 역시 동급에서는 상당히 넓은 트레드 205mm 타이어를 장착하며, 편평비 역시 50 시리즈로 전혀 헐렁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뒷모습 역시 일반 아베오보다 한결 공격적인 인상이다. 더 넓고 엣지를 살린 스포일러와 육각형 메쉬 형태의 디퓨저, 스포츠 머플러 팁, 그리고 ‘아베오’ 레터링 옆의 RS 엠블렘은 명실상부한 핫해치의 뒷태를 이룬다. 큰 변화는 없지만 “나 좀 달린다”고 곳곳의 디테일들이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인테리어 역시 센 놈의 냄새가 난다. 척 보기에도 노멀 아베오에 비해 스포티하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트. 형상은 그대로지만 레드 스티치와 스웨이드 소재, 강렬한 RS 레터링 자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범해 보이지만 시트의 재질감이나 홀딩력 역시 좋다. 스포츠 드라이빙에는 시트 포지션이 조금 높은 점이 흠이다.
일반 버전의 센터페시아 트림이 대부분 은색 메탈릭 컬러로 마감되고, 일부 에디션에서 유채색 트림이 적용되는 데에 반해 아베오 RS 터보는 모두 블랙 톤으로 정리되어 있다. 일반 트림에 비해 훨씬 무게감 있고 재질감도 고급스럽다.
오직 아베오 RS 터보만을 위한 D컷 스티어링 휠도 있다. 이쯤 되면 구색갖추기용 스포츠 모델이 아니라 제법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분위기와 좀 어울리지 않는 바이크 스타일 계기판 역시 타코미터가 RS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유사한 디자인을 채택한 스파크는 기계식 속도계와 디지털 타코미터로 이뤄진 반면 아베오는 그나마 기계식 타코미터와 디지털 속도계로 이뤄져 있다. 스포츠 드라이빙에서는 속도계보다 타코미터를 볼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계기판 시인성은 괜찮은 편이다. 다만 차량 상태에 대한 정보-수온, 유온, 부스트압력 등을 순정 계기판에서 전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전장이 4,040mm에 불과함에도 뒷좌석도 꽤 쓸 만하다. 가운데까지 앉기는 힘들어도 성인 남성 4명이 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루프가 높아 헤드룸은 넉넉하고 레그룸도 앞 뒤 모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이다. 단, 뒷좌석 바로 아래에 뒷바퀴가 위치하기 때문에 승차감이 썩 좋지는 않다. 아베오 RS 터보의 경우 서스펜션이 더 단단하기 때문에 요철에서는 뒷좌석 탑승자가 종종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만 아무리 소형차라도 배제되는 기본사양이 많은 점은 옥에 티다. 뒷좌석을 비춰주는 실내등이나 글러브박스 조명, 선바이저 거울 조명, 열선 스티어링 휠 등은 타사의 동급은 물론 아랫급 모델에도 채택하고 있는 사양이다. 2015년형이 되면서 가격은 50만 원 인상되었지만 오토 헤드램프 등이 빠지며 원가절감의 흔적이 남은 것 역시 불만스럽다. 명색이 아베오의 최상위 트림인데, 가격대에 맞는 기본적인 편의사양에는 인색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여러 디자인적 차별점이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겉모습은 잔뜩 멋을 부려놓고 재미없는 차를 많이 봐왔다. 역시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달리기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랠리 스포츠(Rally Sport, RS)’라는 화려한 서브네임이 과연 아베오를 얼마나 펀 카(fun car)로 탈바꿈시켰는지 검증할 차례다.
아베오 RS 터보의 심장은 쉐보레의 컴팩트 카 라인업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1.4L 에코텍 터보 엔진이다. 최고출력이 140마력으로 현대기아차의 감마 1.6L GDi 엔진과 같지만 최대토크는 20.4kg.m으로 2.0L급 자연흡기 엔진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트랙스에 제일 먼저 도입된 뒤 아베오 RS 터보와 크루즈 터보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베오 전 라인업으로 확대되면서 이제 쉐보레의 소형차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엔진이 될 전망이다.
엔진이 같은데 굳이 2,000만 원에 육박하는 RS 터보를 왜 선택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베오 RS 터보를 경쾌한 핫해치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변속기이다. 비록 RS 터보에는 자동변속기밖에 없지만, 이 변속기는 그간 만나본 여느 국산차의 변속기보다 스포티하고 완성도가 높다.
기본적으로 별도의 스포츠 모드가 없음에도 수동모드에서 변속이 빠를 뿐더러 락업 클러치 역시 빨리 작동하여 직결감이 우수하다. 게다가 다운시프팅 시에도 6,000rpm까지 제법 적극적으로 레브매칭을 해주니 울컥거림으로 인한 거동의 불안정함을 느낄 수 없다.
중요한 점은 바로 기어비. 배기량이 낮지만 터보차저의 보정으로 실용영역대에서 우수한 토크를 내는데, 2단에서 70km/h 정도로 주행 시 레드존을 두드릴 정도로 매우 짧은 기어비를 채택하여 이 강한 토크를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실제 기어비를 확인해보니 종감속은 물론 각 단의 기어비가 일반 오토매틱은 물론 일반 버전의 수동 기어비보다도 훨씬 짧게 세팅되어 있다. 항속연비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4~5단까지도 꾸준한 가속이 가능하다. 또 가속력 위주로 세팅되어 절대적 출력이 낮음에도 처지지 않고 오르막을 박차고 올라간다. 참고로 공인연비는 복합 12.6km/L이며, 시내에서는 10km/L, 고속도로에서는 16km/L 정도의 연비가 나왔다.
탁월한 변속기 외에도 아베오 RS 터보만의 스포츠 세팅은 곳곳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일반 모델 대비 상당히 탄탄하게 세팅된 서스펜션은 급격한 코너링이나 와인딩 로드에서도 전혀 자세 흐트러짐을 느낄 수 없다. 리어가 가벼운 해치백의 특성과 하드한 서스펜션 세팅이 맞물려 언더스티어 성향이 약하고 날렵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주행감각이 일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주행에서 부담이 없을 정도로 컴포트함과 스포티함의 경계선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유럽차에서 종종 느낄 수 있는 하체 세팅을 국산 소형차에서 느끼니 인상적이다.
또 다른 메리트는 스티어링 타각이 작아진 점. 한 쪽 방향으로 1.2바퀴 정도만 돌아간다. 일상주행에서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을 정도의 유격은 유지하되 묵직한 스티어링 휠을 조금만 틀어도 타각이 확보가 되니 와인딩 로드는 물론 서킷에서도 요긴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인 주행감각은 국산차 중에는 비슷한 모델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경쾌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1.5L 터보 엔진을 얹은 미니 쿠퍼와 비슷한 사이즈와 성능, 주행감각이다. 아베오 RS 터보를 ‘국산 미니’라고 칭하고 싶을 정도이다. 콜벳, 카마로 등 스포츠카 제작에도 풍부한 노하우를 지닌 쉐보레가 작심하면 소형차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구나 싶다.
특히 아베오 RS 터보는 고속주행보다는 와인딩 로드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차체가 작고 민첩하기 때문에 테크니컬한 서킷이나 짐카나에서도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140마력의 출력이 아쉽다면 애프터마켓 튜닝도 어렵지 않다. 현재 1.4L 터보 엔진에 제공되는 튜닝 프로그램들은 순정 하드웨어에 ECU 맵핑만을 통해 170마력 선까지 출력을 끌어올린다. 하드웨어의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주행 중 거슬리는 부분들이 없지는 않다. 가령 오른쪽 코너에서 왼쪽 다리를 지지하는 운전석 도어 트림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컵홀더가 정강이를 압박한다거나 시트포지션이 높다는 점, 이 탁월한 변속기를 수동으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패들시프트 대신 낯선 기어 노브의 토글 스위치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주행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단점들은 금새 잊혀진다. 신나게 코너를 달리다보면 문득 느껴지는 정도이다. 추후 피드백을 통해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아베오 RS 터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난 핫해치이다. 가격대비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던 의구심을 완벽히 무너뜨렸다. 만약 기자가 컴팩트하고 재미있는 국산차를 고른다면 주저 없이 아베오 RS 터보를 선택할 것이다. 2,000만 원에서 만 원이 빠지는 가격에 조금 주춤할 수 있지만, 직접 타본다면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스포티하고 만듦새가 좋다.
가장 미련이 남는 것은 역시 수동이다. 300~400마력을 넘나드는 고성능 모델이라면 차라리 자동변속기가 부담없겠지만, 운전에 여유가 있는 100마력대, 게다가 이렇게 빠릿빠릿한 차에는 수동변속기가 역시 제 격이다. 일반 아베오의 수동변속기는 연비 위주의 롱 기어 세팅이고, RS만의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세팅도 아쉬울 것이다.
북미의 경우 RS 전용 수동변속기를 제공하고 있다. 시승차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가속감을 즐길 수 있는 숏기어인데다 RS의 스포츠성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아베오의 수동과 오토 가격 차이가 약 150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RS 터보 수동의 국내 도입가격은 1,850만 원 선이 될 것이다. 가격부담은 덜고 운전재미는 더할 수 있겠다. 향후 쉐보레가 아베오 RS 터보의 수동 모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기자로서는 물론 한 사람의 매니아로서 바라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현재 치뤄지고 있는 KSF, 액센트전 외에도 아베오로만 치뤄지는 원메이크 레이스들이 개최될 예정이다. 동급에서 돋보이는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아베오의 활약이 기대된다. 아베오의 인기가 경쟁사들을 자극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머지 않아 한국의 도로에서도 아베오 RS 터보와 같은 화끈한 핫해치들이 질주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바야흐로 재미없는 차들이 긴장해야 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아베오 RS 터보는 그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