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3대 자동차 브랜드로 꼽히는 닛산은 남다른 달리기 실력을 갖춘 차를 만들기로 정평이 나있다. 앞서 한국시장에 진출한 혼다와 토요타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닛산은 올해들어 9월까지 3,047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기대비 36%의 판매 성장을 이뤄냈다. 최근 잘 나가는 자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의 판매량을 제외하고 이뤄낸 성과라 더욱 의미있다 하겠다.
알티마는 이런 닛산의 선전에 적잖은 공을 세운 미드사이즈 세단이다. 국내에는 4세대가 처음 소개된 뒤 2012년 10월 지금의 5세대가 출시되었는데, 만 2년간 4,000대가 넘게 판매되며 닛산 판매의 중요한 축을 이뤘다. 경쟁모델들의 판매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오히려 입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판매가 지속된다는 점은 그 만큼 만듦새가 괜찮다는 반증이겠다.
사실 알티마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모델이 아니다. 르노삼성의 SM5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통해 플랫폼을 공유하기 때문. 2세대 SM5의 베이스 모델인 닛산의 내수용 모델 “티아나”는 3세대 알티마와 플랫폼을 공유하며, 현행 3세대 SM5는 4세대 알티마의 먼 친척 뻘이다. 닛산이라는 브랜드가 스포티한 성향이 강한 반면 친척인 르노삼성은 정숙성과 부드러움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다는 점도 흥미롭다.
알티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본가인 일본에서도 3세대 티아나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 내수에서도 통할 만큼 만듦새를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미국적인 여유와 일본차 특유의 꼼꼼함, 닛산이 자랑하는 주행성능과 효율을 앞세우는 CVT의 궁합, 세계 10대 엔진에 늘 이름을 올리는 VQ엔진의 질감 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알티마 3.5 SL 시승에는 개인적으로 적잖은 기대를 안고 있었다.
알티마의 익스테리어는 역동성과 차분함이 적당히 섞인 듯한 인상이다. 전장*전폭*전고는 4,860*1,830*1,470(mm)인데, 구형 대비 15mm 길고 30mm 넓은 수치이다. 현재 토요타 캠리의 전장은 4,805mm, LF 쏘나타는 4,855mm라는 것을 감안하면 몸집이 꽤 큰 셈이다. 실제로 주차를 해보면 주차칸에 꽉 들어맞는다.
르노-닛산의 D플랫폼을 이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례가 4세대와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램프가 세로로 배치된 4세대에 비해 가로로 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훨씬 안정적인 스탠스를 완성한다. 맥시마 이후 닛산의 디자인 큐로 자리잡은 부메랑 형태의 램프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특히 4세대에서는 LED 테일램프가 없었는데, 기본형을 제외한 테크 트림 전 모델에는 LED 테일램프가 적용돼 한결 고급스러워졌다.
3.5L 상위트림에서도 휠이 17인치 한 종류인 점은 조금 아쉽다. 타이어는 215/55/17 사이즈인데, 큰 몸집에 비해 하체가 왜소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위모델에 대구경 휠이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트렌드를 고려하여 선택의 폭을 넓혀주면 어떨까 싶다.
젊어보이는 외관에 비하자면 인테리어는 한결 침착하다. 오히려 약간 보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드나 내장재의 재질감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센터페시아는 피아노 블랙 컬러로 마무리되어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버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조작방식이나 인터페이스가 낯설다. 아무래도 버튼류의 조작감성도 독일차나 일본차보다는 미국차에 가까운데,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에서 생산된 모델인 까닭이다. 세세한 부분의 마감품질에서 2%의 디테일 업이 요구된다.
알티마가 내세우는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안락한 저중력 시트이다. “저중력”이라는 수사적 표현이 다소 부담스럽게 와닿긴 하지만, 오래 운전할수록 진가가 나타난다. 푹신하고 부드러운데도 불구하고 스포츠 주행에서도 홀딩이 훌륭해 자세를 잘 잡아준다. 시승기간 중 출퇴근 시간대 정체구간을 여러 번 지날 일이 있었는데, 오래 앉아있다보면 문득 안락함이 느껴진다. 동급에서는 가장 편안한 시트가 아닌가 감히 이야기해본다.
계기판은 2서클 타입의 평범한 디자인인데, 가운데에 위치한 4인치 디스플레이가 재미있다. 트립컴퓨터와 차선이탈경보장치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앞쪽으로 살짝 기울어있어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운전자의 시야가 계기판보다 위에 있으니 기울어진 액정은 시인성이 좋다.
공간은 중형세단 치고는 훌륭한 편이다. 아무래도 바디사이즈가 크다보니 실내가 답답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앞, 뒷좌석이 동시에 넉넉한 레그룸을 확보할 수 있다. 수납공간은 썩 넉넉치는 않지만 부족한 수납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작은 소품을 수납할 수 있는 이중구조의 콘솔박스를 채택한 부분은 재치있다. 운전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수납하기에는 충분하니 큰 짐은 광활한 트렁크로 보내면 되겠다.
또 한가지 알티마의 매력 포인트는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이다. 9개의 스피커로 중형 세단급에서는 상당히 많은 스피커가 장착되는데, 해상도와 공간감이 모두 뛰어나다. 기자가 오디오에 특별한 조예가 있지는 않지만, 누가 들어도 오디오 음질이 우수하다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크게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놀라게 된다. 소음대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엔진 사운드가 잘 들리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는 일본차보다는 BMW 등 달리기를 강조하는 독일차와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알티마의 심장은 2.5L 4기통과 3.5L V6의 두 가지. 시승차는 3.5L 모델인데, 세계적으로 완성도를 인정받는 VQ엔진이다. 최고출력은 273마력, 최대토크는 34.6kg.m에 이르는데, 특히 최대토크는 비교적 낮은 4,400rpm에서 발휘된다. 부드러운 회전질감과 가속감은 자꾸만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고 싶게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많은 브랜드들이 V6 엔진 대신 4기통 터보엔진을 채택하며 다운사이징에 열을 올리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VQ엔진의 질감은 독보적이다. 성능은 비슷할 지 몰라도 6기통만의 감성을 따라오기는 힘들다.
그런데 VQ엔진도 훌륭하지만, 단연 압권은 엑스트로닉 CVT 변속기다. CVT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염없이 같은 rpm을 유지하는 CVT는 지루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더군다나 한 때 마티즈나 쏘나타같은 일부 국산차종에 도입된 CVT가 내구성과 성능 면에서 안좋은 추억을 남긴 전례가 있기에, 기자 역시 CVT를 매치시키기에는 VQ엔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편견을 버리자. 단언컨대 알티마의 변속기는 기존의 재미없는 CVT와는 클래스가 다르다. 영리한 변속로직은 저속이든 고속이든 최적의 회전수를 찾아 민첩한 반응성을 보여준다. 무단변속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최적 기어비의 단수를 설정하고 수시로 변속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속충격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스포츠 모드도 있다. CVT에 스포츠 모드라니! 처음에는 구색 갖추기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포츠 모드에서는 정말 뛰어난 주행성능을 보여준다. 빠른 페달 반응과 더불어 감속 시에는 적극적으로 엔진 브레이크를 활용하는 점까지, 전혀 CVT답지 않다-물론 이것은 칭찬이다. 패들시프트로 수동모드 조작을 실시하면 7단 변속기로 변신한다. 변속이라 레브매칭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대신 부드럽게 진행된다. 패들시프트는 2.5 테크 트림 이상에 적용된다.
서스펜션 역시 적당히 요철을 걸러주는 실력이 나쁘지 않다. 방지턱 등을 넘은 뒤에도 크게 출렁이지 않고 자세를 잘 잡는다. 스티어링 휠이 굉장히 무거운 편이라 고속 안정성은 우수한데, 오히려 골목길 운전이나 주차 시에는 조금 버겁다. 스피드 레인지에 따라 약간 변화를 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안전사양도 대폭 강화되었다. 2013년형이 처음 선보인 이후 이번 2015년형에서는 상품성이 대폭 개선되었는데, 차선이탈경보(LDW), 사각지대경보(BSW), 후방 이동물체감지(MOD) 등이 테크 트림에서 기본사양으로 채택되었다. 또 기본장착된 어드밴스드 에어백 시스템은 아직까지 한 세대 구형인 디파워드 에어백이 주류인 동급시장에서 돋보이는 부분이다. 물론 그 성능을 확인할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일의 사태에는 꼭 필요한 기능이다.
연비는 복합기준 2.5L 엔진이 13.3km/L, 3.5L 엔진이 10.5km/L이다. 효율적인 최적기어비를 사용하는 CVT 덕분에 동급에서 눈에 띄는 연료효율을 자랑한다. 실연비도 나쁘지 않았는데, 20km/h 이하의 극심한 정체구간에서는 7km/L 정도를 유지했고, 90km/h 정도로 간선도로를 크루징하면 13km/L까지도 올라갔다. 아무래도 3.5L의 배기량때문에 기초대사량이 높아 정체구간에서는 다소 불리하지만, 어느 정도 속도를 내는 일반 시내주행이나 크루징에서는 배기량 대비 썩 나쁘지 않은 효율을 보인다.
닛산 알티마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소리없는 강자”이다. 신차효과도 진작에 끝난 차가 거창한 홍보 없이도 꾸준히 소비자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만의 강점이 뚜렷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연식변경 모델 역시 여러가지 추가사양이 적용되었음에도 가격을 동결하여 끊임없이 조금씩 가격이 인상되고 있는 시장에서 유독 더 예뻐보인다.
알티마의 경쟁상대는 수입 브랜드의 미드사이즈 세단 내지는 국산 준대형 모델들이다. 경쟁모델과 비교했을 때 확실한 일장일단은 있다. 알티마에게는 캠리의 정숙성이나 파사트의 디젤엔진, 그랜저의 편의사양은 없다. 하지만 호쾌한 드라이빙 실력과 VQ 엔진의 매력적인 회전질감, 대배기량임에도 효율을 보장해주는 똑똑한 CVT 변속기는 “일본차는 재미없고 CVT는 스포츠 주행에 부적합하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알티마만의 색깔을 오롯이 드러낸다.
냉정히 말해서 알티마가 편의성이나 안락함으로 승부하는 차는 아니다. 대신 오너 드라이버로 하여금 가족과 함께 할 때는 다정한 아버지가, 혼자 운전할 때는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선데이 레이서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차다. 심심한 세단보다 운전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패밀리카를 찾는다면 알티마를 만나보라. CVT에 대한 편견은 버려도 좋다. 기분 좋은 엔진 사운드와 함께 ‘지루한 일본차’라는 인식을 한 번에 날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