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다가올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있다. 자동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까? 13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자동차의 심장이 되어 준 내연기관은 발전의 한계가 보이고 있으며, 화석연료는 나날히 강력해지는 환경규제 앞에 점차 설 곳이 줄어들고 있다.
많은 자동차 회사들은 수소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가장 현실적인 자동차로 전기차를 지목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생산국들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상용화된 전기차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짧은 주행거리로 인해 시티 커뮤터(City Commuter)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행중인 곳에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충전식 전기차는 다가오는 미래시대에서 분명히 적잖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BMW i3 역시 그 중 하나다. 독일 프리미엄 3사 중 가장 먼저 선보인 양산형 전기차이며, 한국에 최초로 출시한 수입 전기차이기도 하다. 사실 BMW라는 이름은 “바이에른 원동기 회사(Bayerische Motoren Werke)”의 약자이다.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항공기, 선박용 엔진 등을 만드는 회사였던 BMW가 이제는 엔진이 없는 전기차를 선보였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만 하루가 조금 넘는 기간동안 BMW i3를 타봤다. 지난 번 쏘울EV의 시승을 진행하면서 국내-구체적으로는 수도권-에서의 전기차 운행이 제법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독일제 전기차는 어떤 감성을 품고 있을지 궁금했다. BMW가 제시하는 미래 솔루션이 과연 서울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i3를 실물로 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독특하다’는 것이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BMW는 여지껏 이런 원박스 형태의 자동차를 선보인 적이 없다. 게다가 전용 설계로 미래적인 터치가 묻어나는 디자인은 운전자로 하여금 도로 위에서 미래의 전도사가 된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어딜 가나 이목이 집중된다.
시선을 끄는 앞모습이 지나가면 뒷모습은 더욱 파격적이다. 최근 BMW의 스타일링이 살아있는 U자 형 테일램프는 트렁크 해치와 일체형으로 디자인되었다. 객관적으로 예쁘거나 멋진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한 세대 앞선 미래자동차의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감히 성공적이라고 하겠다.
i3의 익스테리어는 기존 BMW의 디자인과는 많은 부분에서 궤를 달리한다. 유서깊은 C필러의 호프마이스터 커브가 사라졌고, 롤스로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어사이드 도어가 채택되어 짧은 전장에도 뒷좌석 탑승을 용이하게 했으며, 원형 대신 U자형 엔젤아이와 구름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얇은 대구경 타이어는 BMW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이 차가 BMW임을 알아볼 수 있는 뚜렷한 아이덴티티는 남아있다.
i3는 설계면에서도 돋보이는 부분이 많다. ‘라이프드라이브(LifeDrive)’구조로 명명된 i3의 바디는 파워트레인과 배터리가 탑재된 ‘드라이브 모듈’ 프레임 위에 탑승공간인 ‘라이프 모듈’이 얹히는 바디 온 프레임 형태이다. 무거운 배터리를 저중심으로 탑재하고 향후 전기차 라인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된다.
게다가 비싼 가격으로 양산차에 적용하지 못하던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을 바디 전체에 적용하여 공차중량은 1300kg로 억제되었다. 전기차에 최적화된 전용설계는 양산차를 베이스로 전기 파워트레인을 얹은 여타 전기차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라는 것이 BMW의 설명.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전용설계가 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i3는 외부패널까지 CFRP로 이뤄져 사고 발생 시 찌그러지지 않고 깨지거나 부러진다. 판금이 불가능하고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CFRP는 고가의 소재이므로 수리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판매댓수가 적은 만큼 부품 수급이 원활할 리도 없다.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양산차와 부품을 공유하지 못하므로 자연히 유지 부분에서 이점을 찾기 힘들다. 물론 사고나 고장이 없다면 좋겠지만, 자동차를 유지하다보면 불가피한 부분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익스테리어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문을 열고 탑승해보면 감탄사가 나온다. 북유럽 가구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인테리어는 기대 이상으로 고급스럽다. 미래에도 재생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으레 ‘친환경’이라는 말이 디자인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 반해 i3의 인테리어는 디자인적 완성도가 높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전동장비나 편의사양은 상당수 배제되었다. 또 작은 차체에서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을 분리하고 시프트 레버는 스티어링 칼럼으로 옮겨갔다. 모터가 트렁크 밑에 탑재된 RR 레이아웃이므로 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뒷좌석도 제법 넓직하다.
계기판 역시 통상적인 다이얼 식이 아닌 풀 디지털 형태로 장착되었으며, 주행중에는 타원형 게이지를 통해 전력을 얼마나 소모하는지, 또는 충전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외도 주행가능거리나 연비(단위는 km/kWh) 등 일반 자동차와 동일한 데이터들을 계기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납공간은 앞뒤에 모두 있다. 보닛 내부에는 작은 가방을 하나 놓을 만한 공간이 있는데 수납공간이라기 보다는 비상용품함에 가깝다. 트렁크는 아래에 모터를 품고 있기 때문에 깊지 않다. 하지만 i3는 시티 커뮤터이고, 이 차로 장거리 여행을 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뜻밖의 짐을 옮기거나 장을 보는 데에는 충분한 크기이다.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더욱 할 이야기가 많지만, 역시 전기차로써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 차를 일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냐는 부분이겠다. 제원상 i3의 1회 충전시 주행가능거리는 132km인데 이틀간 약 160km을 주행했고, 총 3회 충전을 실시했다. 완속으로 100% 충전은 엄청난 시간을 요구했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충전하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충전했다.
전기차는 기온에 따라 배터리 용량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날이 추워지면 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든다. 쏘울EV를 시승할 때만 해도 일교차가 적어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해가 저물어 날씨가 쌀쌀해지자 주행가능거리와 연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반면 한낮에는 계기판상의 주행가능거리가 늘어나고 연비도 올라갔다.
쏘울EV가 크루징보다는 시내연비가 더 좋았던 것에 비해 i3는 크루징에서 연비가 1km/kWh 이상 올라간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간선도로를 80km/h정도로 크루징하면 연비는 공인연비를 훌쩍 넘는 7.7km/kWh까지 오르고 주행가능거리도 함께 늘어난다.
주행감성을 다뤄보자면 쫀득하면서도 경쾌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1,500kg가 넘는 쏘울EV에 비해 무게는 200kg 가볍고 출력은 60마력 가량 높으니 치고 나가는 느낌도 훨씬 좋다. 최고속도는 150km/h에서 제한되는데, 최고속까지 가속도 어렵지 않게 이뤄진다.
BMW가 전기차의 주행방식으로 제안한 원 페달 드라이빙도 흥미롭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즉시 발전기가 충전을 시작하며 강력한 엔진 브레이크(충전 브레이크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가 걸린다. 덕분에 시내에서 소비한 전력을 조금씩 채울 수 있고, 브레이크에 발을 올릴 일이 거의 없다.
서스펜션 세팅도 BMW 답게 탄탄하고 스티어링도 제법 묵직했던 반면 차체가 높아 휘청이는 것은 약간 아쉽다. 배터리와 모터 등을 낮게 배치한 저중심 설계인데, 바디사이즈에 비해 차고가 높아 MPV같은 느낌을 준다. 전륜과 후륜 타이어는 각각 트레드 155mm, 175mm에 편평비 60~70, 내경 19인치의 기형적인 스펙을 자랑한다. 구름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용 타이어라는데, 접지면이 적어 코너를 돌아나갈 때는 다소 불안하다.
i3를 타면서 디자인이나 럭셔리함, 주행성능 등 많은 부분에서 만족을 얻었는데, 딱 한 가지 쏘울EV보다 불편한 점이 바로 충전이었다. BMW i3에 맞는 충전기는 많지 않은데다 그 마저도 시승차의 충전소 찾기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곤란했다.
현재 전기차의 충전방식은 세계적으로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일본차들과 현대기아차가 사용하는 “챠데모(CHAdeMO)”, 자동차기술자협회(SAE)가 표준으로 채택한 “타입1 콤보(Type 1 Combo)”, 그리고 르노 등 프랑스 업체들이 내세우는 “AC 3상” 방식이 그것이다. BMW i3는 타입1 콤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국내의 충전인프라가 챠데모와 AC 3상 방식만을 표준으로 채택, 충전기를 배치했다는 점. 쉐보레 스파크 EV와 BMW i3가 사용하는 타입1 콤보는 공영 충전소에서 사실상 찾기 어렵다. 전국에 전기차 충전기는 2,000기가 훌쩍 넘었는데, 그 중 타입1 콤보가 지원되는 것은 200기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30분 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한 타입1 콤보 방식의 급속충전기는 아예 국내에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물론 변론을 하자면 많은 도시인들의 일일 주행거리는 20km 이하이므로 매일 수시로 충전할 필요는 없다. 퇴근 후 밤시간에 충전할 수 있는 완속충전기가 집에 있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퍼스트 카가 있다면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BMW는 포스코, 이마트 등과 협력을 통해 타입1 콤보 방식을 민간 충전소 중심으로 확대하는 데에 열의를 보이고 있으며, 정부에 지속적으로 표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 전기차 보급이 시작단계인 만큼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하면 충전문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어쨌든 전기차가 차차 그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이미 거부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또 운전자의 의지와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감수할 여유만 있다면 수도권, 제주 등 충전인프라가 확보된 지역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전기차를 운행하는 것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오는 11월12일까지 일반인의 전기차 구입 신청을 받고 추첨을 통해 182대를 민간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지자체별로 전기차 구입 혜택내용이 상이한데, 서울시의 경우 구매가에서 2,000만 원을 지원해주고 700만 원 상당의 완속충전기 설치비용도 지원한다. 구매 시 세제혜택도 엄청나다. 실로 파격적인 혜택이고, BMW i3도 이 지원을 통해 3,000만 원대부터 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지원은 전기차 구입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퍼포먼스일 뿐, 이렇게 “통 큰 지원”을 향후 지속해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전기차 지원에 정말 의지가 있다면 소수에게 혜택을 몰아주기보다는 더 많은 구매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 운용 및 유지에 대해서도 혜택을 줄 수 있겠다.
더불어 전기차를 제조하는 업체들도 이익율을 낮추고 출고가를 낮추어 전기차의 공급에 더욱 힘써야 한다. 길 위의 운행댓수가 늘어나야 소비자들의 인식이 개선되면서 전기차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개체 수가 늘어나면 자연히 인프라 역시 강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전기차를 이웃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게 비현실적인 풍경은 아니게 될 것이다.
BMW i3는 잘 만들어진 전기차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만큼 전반적인 완성도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한 여타 전기차보다 한 수 위다. 나쁘지 않은 실주행연비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역시 매력적이다. 국산 전기차에 비해 가격이 1~2,000만 원 상당 비싸지만, BMW만이 제공할 수 있는 브랜드 밸류와 차량 자체의 가치를 생각하면 경쟁차종 대비 그렇게 터무니 없는 가격은 아니다.
덧붙여 지원금이 종료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는 2기통 엔진의 충전기를 추가하여 3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레인지 익스텐더 모델도 수입된다고 하니 앞으로 i3를 길에서 보기는 점점 쉬워질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국내 1위의 수입차 브랜드가 전기차에 상당한 열의를 보이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어제까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던 전기차의 실질적 효용성을 논의하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2% 부족한 부분들을 만회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좀 더 빨리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