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UV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북미에서 CUV는 SUV, 픽업 등이 포함된 전체 트럭 시장에서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매년 두자릿수의 빠른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자동차 업체들이 너도나도 CUV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경쟁이 과열되니 각각의 모델들은 차별화를 위해 나름의 강점을 찾는다. 디자인, 럭셔리, 달리기 성능, 험로주파력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맞게 개성있는 CUV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여기, 요즘 가장 핫한 3대의 CUV가 있다. 출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디자인과 럭셔리함으로 무장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피아트 산하에서의 첫 신차로써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는 지프 체로키, 그리고 특유의 유쾌한 감각을 잊지 않으면서 실용성을 더한 미니 컨트리맨이 그것이다.
셋 다 메이커의 기존 철학을 넘어선 모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은 오프로드 명가인 랜드로버와 지프가 만든 도시형 모델이고, 하나는 작은 시티카로 시작된 미니 브랜드에서 만든 역사상 가장 큰 미니라는 것이 차이점이겠다. 최신 트렌드와 첨단기술로 무장한 인기만점의 CUV들을 하나씩 비교해본다.
Style
첫인상은 셋 다 예사롭지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시선을 끈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멋져서, 컨트리맨은 귀여워서, 그리고 체로키는 희안해서.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경우 컨셉단계부터 호평을 받은 디자인이고 현재 랜드로버의 패밀리룩에 지대한 영향을 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일견 작은 차체가 여성적인 느낌을 주지만 자세히 보면 예리한 라인들이 오히려 샤프한 도시남자같은 이미지를 발산한다. 차량 구매 시 디자인을 많이 신경쓰는 한국시장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니 누가 봐도 멋진 디자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체로키는 늘 진지한 디자인을 고집해온 지프로써는 파격에 가까운 변신을 감행한 모델이다. 주간주행등 및 방향지시등이 헤드램프와 분리되어 마치 눈과 눈썹처럼 보이는 것도 모자라, 수직으로 떨어지던 지프의 세븐 슬롯 그릴은 도중에 꺾이는 포인트가 들어간다. 뒷모습도 역시 여타 지프 라인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군용차에 뿌리를 둔 지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도시적이고 혁신적이지만, 그렇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어쩔 수 없겠다.
반면 컨트리맨은 근육질이지만 앙증맞다. 셋 중 가장 작은 차체이지만 짧은 오버행과 넓은 트레드가 미니 특유의 주행감각을 암시한다. 미니의 디자인은 아이코닉한 클래식 미니로부터 유래한다. 미니 가문에서 가장 몸집이 큰 컨트리맨도 예외가 아니라서 동그란 헤드램프와 곳곳에 숨은 재치있는 디테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Comfort
차에 올라타면 세 대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실내는 마치 고급 요트같다. 컴팩트 사이즈 CUV이지만,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에 걸맞게 럭셔리하다. 부드러운 가죽 재질의 내장재와 개방감을 극대화시켜주는 파노라믹 글래스루프, 안락하면서도 불안감 없이 탄탄한 하체는 비록 편의사양이 풍부하지 않음에도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가치를 높여준다.
체로키의 실내는 전형적인 CUV의 구성을 따른다. 최고의 강점은 보기보다 넓은 실내와 풍족한 편의사양. 동급에서 찾아보기 힘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스마트폰 무선충전기 등이 매력적이다. 내장재는 가격에 비하면 아쉽지만 적당히 고급스럽다. 단 잡소리 나는 파노라마 선루프와 조작편의성이 떨어지는 센터페시아는 다소 거슬린다. 승차감은 전형적인 미국차답게 부드러운데, 요즘 인기있는 유럽차의 탄탄한 승차감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갈린다.
컨트리맨은 점잖고 우아한 이보크나 심심한 체로키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재기발랄한 인테리어는 2세대 미니의 그것을 확대시켜놓은 느낌이 역력하다. 저렴한 플라스틱 재질감과 부족한 편의장비는 아쉽지만,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거대한 속도계와 미니 엠블렘을 연상시키는 조작버튼은 위트가 넘친다. 단단한 서스펜션과 꼭 조이는 시트, 무거운 스티어링과 페달은 편안함보다는 공격적인 드라이빙에 더 적합하다.
Performance
세 대 모두 파워트레인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셋 다 가솔린과 디젤 엔진을 모두 제공하고,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했다. 시승차는 모두 디젤 모델이었는데, 그 중 둘은 변속기를 공유한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셋 중 가장 강력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190마력을 발휘하는 2.2L 디젤엔진은 ZF 9속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넉넉한 토크로 스트레스 없는 주행이 가능하다. 세계최초로 승용차에 탑재된 9단 자동변속기는 고속주행시에 낮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하며 실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저속영역에서 약간의 변속충격이 느껴지며, 스포츠모드에서도 달리기 실력은 심심한 편이다. 그러나 이 차는 레인지로버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같은 9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는 체로키는 170마력, 35.7kg.m 토크를 내는 2.0L 멀티젯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피아트에서 가져온 이 디젤엔진은 수치로 드러나는 성능에 비해서는 둔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9단 변속기는 이보크와 마찬가지로 시내에서도 10km/L 이상의 우수한 연비를 내지만, 저속에서 불쾌한 변속충격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감점요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서스펜션이 매우 무르고 출렁이기 때문에 고속주행이나 코너링에서는 다소 불안정함이 있다.
컨트리맨은 가장 재미있는 CUV이다. 미니 특유의 고-카트 필링은 몸집이 커져도 그대로이다. 빠른 변속과 뛰어난 레브매칭 실력을 겸비한 6단 자동변속기는 143마력을 내는 2.0L 디젤엔진과 나쁘지 않은 조화를 이룬다. 탄탄한 하체와 묵직한 조작감, 빠릿빠릿한 변속기의 조합은 제원상 출력보다 훨씬 경쾌한 드라이빙을 선사한다. 물론 달리기에 더 집중하기 위해 휘발유 엔진을 선택한다면 오리지널 미니와도 견줄 만한 주행도 가능하다. 소형 CUV 중 컨트리맨보다 재미있는 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Off-road
CUV도 SUV의 한 장르인 이상 적잖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험지주파능력을 갖추길 기대한다. 특히 이들 셋 중 둘은 오프로드 명가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가문의 모델들. 과연 오프로드에서도 실망스럽지 않은 주행성능을 보여줄 것인가?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랜드로버의 막내다. 아무리 도심형 CUV를 지향하고 저편평비 타이어를 장착해도 오프로드에서는 본능을 숨길 수 없다.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전자식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진흙, 모래밭, 눈길 등 다양한 환경에 맞는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오프로드에 더 적합한 디스커버리나 디펜더에 비하자면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유사시에는 충분히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에 체로키는 처음부터 동급에서 가장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해왔다. 랜드로버 터레인 리스폰스와 비슷한 액티브 드라이브 시스템을 통해 다이얼을 조작하면 전자제어를 통해 노면상태에 대응할 수 있는 주행모드로 바뀐다. 높은 지상고와 짧은 앞뒤 오버행 덕분에 진입각과 이탈각도 뛰어날 뿐더러, 동급에서 찾아보기 힘든 로우기어가 있어 웬만한 환경은 돌파할 수 있는 오프로드 실력을 발휘한다. 셋 중에서는 단연 탑이라고 하겠다.
컨트리맨은 앞서 살펴본 둘에 비하자면 오프로드 성능은 다소 빈약하다. 주행모드 변경이 불가능하고 지상고도 낮은 편이라 혹여 모래사장에라도 들어가면 바퀴가 헛돌며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나 BMW x드라이브에 기반한 미니 고유의 ALL4 시스템은 앞뒤 동력배분을 통해 모래밭 정도는 돌파할 수 있다. 가벼운 비포장길이나 임도에서는 충분히 부족하지 않은 오프로드 능력이다. 숲 속으로 캠핑을 가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서로 다른 색깔을 뽐내는 세 대의 CUV들. 럭셔리한 요트같은 여유와 남다른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면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풍부한 편의사양과 전천후 실용성을 원한다면 체로키를, 그리고 CUV로도 즐거운 드라이빙을 즐겨야겠다면 컨트리맨을 추천한다. 어떤 모델을 선택하든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 나름의 매력이 뚜렷하니 말이다.
세 모델의 가격은 레인지로버 이보크 6,630~8,190만 원, 체로키 4,990~5,640만 원, 컨트리맨 3,990~5,790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