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 카 레이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단연 서킷이다. 서킷(circuit)은 순환도로 형태의 자동차 경주장을 총칭하는 말로, 많은 모터스포츠 이벤트가 바로 이 서킷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서킷은 그 자체로 레이스 DNA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국내에는 현재 용인, 태백, 인제, 영암 및 안산 등 5개의 상설 서킷이 있으며, 송도와 같이 대회가 있을 때만 설치되는 비상설 서킷도 존재한다. 서킷 주행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자격요건을 확인하는 라이센스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와 비용이 만만찮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서킷은 소음과 공간 문제로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또한 일반인들의 서킷 입문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모든 서킷 주행이 그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명 “탑기어 트랙”으로 잘 알려진 경기도 안산의 “안산 스피드웨이”의 경우 별도의 라이센스 취득 없이도 주행이 가능하다. 또 서울권에서 1시간 내외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누구나 부담없이 올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이다.
지난 9월 28일, 안산 스피드웨이에서 “제1회 드라이빙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서킷 문화에 일반인도 누구나 쉽게 다가가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개최된 이번 행사는 기존에 군소 동호회나 레이싱 팀 위주로 진행되던 트랙데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디팩토리, 범스, 지노모터스, H모터스 등 4개 프로팀의 연합행사로 진행되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차별점이라면 바로 실제 레이싱에 출전중인 현역 선수들이 강사 및 인스트럭터로 참여하는 드라이빙 스쿨이 함께 진행된다는 것. 제대로 된 스포츠 드라이빙과 서킷 주행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국내 환경에서 드라이빙 페스티벌이 더욱 매력적으로 와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 역시 본격 서킷 주행 경험이 적은 터라 이번 기회를 통해 드라이빙 스쿨에 직접 참가해보기로 하였다.
드라이빙 페스티벌은 크게 3개의 섹션으로 나뉘었다. 조를 나누어 자유롭게 서킷을 주행하는 자유 주행,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소음과 타이어 소모 부담 없이 드리프트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드리프트 스쿨, 그리고 기초적인 레이싱 이론을 다지는 드라이빙 스쿨이 그것이다. 드라이빙 스쿨은 자유 주행이 진행되는 동안 이론강의를 수강하고 20분 간 서킷 자유주행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드라이빙 스쿨 프로그램은 초급, 중급, 고급 클래스로 나뉘어 각각 서킷 입문자와 서킷 및 스포츠 드라이빙 유경험자, 고급 서킷 교육 희망자를 대상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이론교육에서는 시트 포지션과 아웃 인 아웃, 슬로우 인 패스트 아웃 등 가장 기초가 되는 내용부터 안산 스피드웨이를 중심으로 한 코너 공략법에 이르기까지 서킷 주행에 입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드라이빙 스쿨의 큰 메리트는 다른 차량들 없이 스쿨 참가자들끼리 트랙 주행을 할 수 있다는 점. 특히 초심자의 경우 빠르게 달리는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면 상호간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데, 비교적 적은 참가자들끼리 주행을 함으로써 부담없이 서킷을 공략해볼 수 있었다.
매 타임을 거쳐가면서, 인스트럭터들이 직접 스쿨 참가 차량에 동승하여 1:1 레슨을 진행해주기도 하였다. 조금 전 배운 이론을 실전에 사용하면서 미흡한 부분을 맨투맨으로 코치받음으로써 훨씬 쉽게 이론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었다. 오전에 3회 직접 서킷주행을 했는데, 매 타임마다 코치를 통해 빠르게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체감되었다.
점심시간에는 막간을 이용해 프로선수들이 운전하는 레이스카에 동승하는 택시타임도 있었다. 택시 드라이빙은 진짜 레이스카를 체험할 수 있다는 재미 외에도 프로선수의 주행스타일을 보면서 자신의 주행습관과 라인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어서 오후에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직 한낮에는 더운 날씨였지만, 다행히 구름이 끼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서 차량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았다. 기자의 차는 연식이 있는 만큼 가혹주행이 이어진 프로그램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다음에 다시 트랙주행에 도전한다면 오전이나 오후 하프타임만 주행하는 것이 덜 무리가 갈 것 같았다.
어쨌든 오후에는 오전에 배운 이론과 인스트럭터의 지도를 접목하여 조금 더 적극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거칠게 코너를 밀어붙이고 예상보다 깊은 코너에서 놀라는 일이 다반사였던 오전에 비해, 서킷도 점차 익숙해지면서 부드러운 코너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랩타임도 첫 주행에 비해 대략 5초 이상 줄어들었다.
마지막 타임 주행에서는 드라이빙 스쿨 참가자들의 합의로 즉석 레이스가 이뤄졌다.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날 스쿨 참가자 6명이 레이스 대결을 펼쳐보는 것. 서로 차급이 달라 출력과 기량에 따라 그리드를 지정받았다. 기자는 뒤에서 두 번째인 5위로 레이스를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참가자 중 출력이 가장 뒤떨어져 출발과 동시에 첫 코너에서 6위로 출발한 랜서 에볼루션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경기는 총 5랩 주행, 일반적인 레이스에 비해 랩이 적은 만큼 적극적으로 달려야 했다.
2랩에서 바로 앞서가던 크루즈 디젤을 추월했지만, 이내 욕심을 부리다가 라인이 부풀어 다시 6위가 되었다. 코너마다 조금씩 조금씩 격차를 좁혀가면서 다시 크루즈를 추월했을 때는 이미 한 바퀴밖에 남지 않은 상황. 4위로 달리던 닛산 쥬크는 차고가 높아 앞의 코너를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쥬크의 꼬리를 물고 마지막 바퀴가 끝나가는 찰나, 메인 스트레치를 앞둔 7번 코너에서 쥬크가 언더스티어로 밀려나가는 기회를 잡았다. 재빨리 안쪽 라인을 잡고 가속을 시작했다. 직선가속이 시작되면 출력이 한참 위인 쥬크에게 이길 수 없어 마지막 힘을 다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간발의 차이로 4위로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아! 추월의 순간에 느껴지는 아찔한 스릴감이 모터스포츠에 빠져드는 이유라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행사였던 만큼 긴 하루가 될 줄 알았는데,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행사를 주최한 디팩토리 모터스포츠의 오재국 대표는 “드라이빙 페스티벌”이 단발성 행사가 아닌, 향후 한국 아마추어 모터스포츠의 저변 확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접근성이 뛰어난 안산 스피드웨이 뿐 아니라 설비가 뛰어난 영암 KIC 서킷이나 아찔한 고저차를 느낄 수 있는 인제 스피디움 등 주요 서킷들을 돌며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것. 특히 기존에 서킷 달리기에만 치중해있던 트랙데이 문화에서 체계적인 드라이빙 스쿨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며 더 안전하고 즐거운 모터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장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마땅한 아마추어 레이싱 스쿨을 찾아보기 힘든 국내 여건에서 대기업의 후원 없이 레이싱 팀들의 자발적인 도전으로 첫 발을 내딛은 드라이빙 페스티벌의 앞날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킷을 달려보는 것은 자동차를 좋아하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서킷에 들어가면 올바른 주행습관을 기를 수도 없을 뿐더러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제대로” 서킷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드라이빙 스쿨과 함께 서킷 입문에 도전해보자. 자동차 매니아로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