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3일 한국시장에 공식 시판된 애스톤마틴(Aston Martin)은 1913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유서깊은 스포츠카 브랜드이다. 더불어 현재 완성차 업체 중 몇 안되게 영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풍파를 겪어왔지만, 그 만큼 강인해진 애스톤마틴은 오늘날 브리티쉬 GT카의 순수혈통을 과시하며 남다른 품격을 원하는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유명한 첩보액션 시리즈인 “007″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제임스 본드의 애마로 등장하며, 애스톤마틴은 그 자체로 007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되기도 하였다. 영국 신사의 품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애스톤마틴의 역사를 지금부터 차근 차근 짚어보자.
1. 격동의 시대를 이겨낸 태동기
애스톤마틴의 초창기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1913년, 영국 런던에서 “싱어” 자동차를 판매하던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는 자신들만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회사를 설립한다. 당시 라이오넬 마틴은 런던 근교의 애스톤 언덕에서 힐 클라임 레이스에 출전했기에 애스톤 언덕의 이름을 따와 자신들의 자동차에 “애스톤마틴”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최초의 애스톤마틴은 이탈리아제 “이소타 프라스키니”의 섀시에 4기통 엔진이 얹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첫 차를 판매하기 위해 공장을 세웠지만, 1차 대전의 발발로 두 창업자는 군에 입대하고 생산설비는 항공기 제조사에 넘어가게 된다.
전후 애스톤마틴은 회사의 재건을 시작했고, 1920년 공동창업자인 로버트 뱀포드가 회사를 떠났지만 레이서였던 루이스 즈보로프스키 백작의 후원 아래 회사는 생산을 재개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 출전하기 위해 3대의 레이스카를 만들기도 했지만 수익은 여의치 않아 1924년 다시 파산했고, 1926년에는 라이오넬 마틴마저 회사를 떠나며 애스톤마틴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애스톤마틴은 명맥을 이어갔고, 1936년부터는 공도용 양산차 생산에만 사업을 집중하기로 결정, 2차 대전 발발 이전까지 약 700여 대를 생산하였다. 2차 대전 중에는 다시금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되어 승용차 생산을 중단하고 항공기 부품을 제작했다. 이처럼 애스톤마틴은 설립 이후 3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2. 전설적인 “DB” 시리즈의 탄생
2차 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트랙터 회사를 이끄는 데이비드 브라운 경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애스톤마틴을 전격 인수하여 본격적인 소생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해 W. O. 벤틀리가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었던 고급차 브랜드 “라곤다” 또한 인수되어 애스톤마틴과 합병되었다. 이후 두 회사는 인력과 자원을 공유하며 신모델 개발에 앞장섰고, 그 결과 1950년 최초의 “DB” 시리즈인 DB2가 탄생한다. 오늘날 까지도 애스톤마틴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 중 하나인 DB 시리즈는 현재 DB9에 이르는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DB는 당시 사주였던 데이비드 브라운 경의 이니셜에서 따왔다.
클래식한 아름다움과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두루 갖춘 DB 시리즈는 애스톤마틴의 정통 그랜드 투어러이자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하는 간판모델로 등극하였고, 마침내 1963년, 가장 유명한 DB5가 모습을 드러낸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막강한 카리스마와 애스톤마틴 특유의 럭셔리함을 뽐내는 DB5는 4L 직렬6기통 엔진과 ZF제 5단 변속기를 갖추고 285마력의 최고출력과 230km/h의 최고속력을 자랑했다.
특히 1964년에 007 시리즈 제3탄 “골드핑거”에서 본드카로 등장하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는데, 신사적인 이미지와 파워풀한 액션이 공존하는 007 시리즈의 이미지와 잘 매치되면서 이후 수많은 007 시리즈에서 애스톤마틴이 본드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DB5는 후속작에서도 여러 차례 오마주되어 2006년 개봉한 “카지노 로얄”에서도 등장했었으며, 2012년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으로 개봉한 “스카이폴”에서도 여전히 환상적인 자태를 선보이며 본드카로 출연하는 영예를 얻었다.
3. 위기와 기회의 7~80년 대
그러나 데이비드 브라운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애스톤마틴의 만성적인 적자는 개선되지 않았다. 1972년 기업 컨소시움에 매각된 뒤 1975년에는 다시 미국계 사업가인 피터 스프래그와 조지 민든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들은 노후한 애스톤마틴 라인업을 전면 재정비하고 360명의 새 직원들을 고용하며 체질개선에 나섰고, 그 결과 미래적인 스타일링의 4도어 세단 라곤다와 “최초의 영국제 슈퍼카”를 자처한 V8 밴티지를 각각 76년과 77년에 선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1980년 애스톤마틴은 다시 기업시장에 매물로 등장했고, 영국의 석유사업가이자 자동차 매니아로 유명한 빅터 건틀렛이 애스톤마틴을 매입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4도어 세단”임을 강조하며 라곤다의 중동 판매길을 열었고, 신모델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 동안 엔지니어링과 모터스포츠 등 다방면으로 마케팅을 확장하며 애스톤마틴의 재정상황을 개선했다.
1986년, 빅터 건틀렛은 애스톤마틴을 다시금 본드카로 내세워 영화 마케팅을 활용하기로 한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V8 밴티지를 선뜻 촬영에 제공할 정도로 애스톤마틴의 영화출연에 적극적이었는데, 마침 007의 주연배우가 티모시 달튼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분위기와 함께 애스톤마틴은 007 시리즈 제15탄 “리빙 데이라이트”에서 본드카로 등장했다. 여담이지만, 빅터 건틀렛은 심지어 극중에서 소련의 KGB 대령으로 분하여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4. 포드 산하에서 21세기를 맞이하다
1987년, 유럽 포드는 그간의 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잠재력을 지닌 애스톤마틴을 전격 인수한다.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자가토”와의 콜라보레이션과 80년 대 말 경제회복, 신모델의 출시에 힘입어 애스톤마틴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며 판매가 신장되었고, 유럽 모터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발휘한다. 1968~88년에 이르는 20년 간 애스톤마틴의 전체 생산량은 5,000여 대에 불과했지만, 포드 인수 이후 1995년 한 해에만 700대 이상을 생산할 정도로 판매가 급성장했다.
1994년 출시한 DB7은 10년 간 무려 7,000대가 생산되며 역대 DB 시리즈의 총생산을 앞질렀고, 이안 칼럼의 디자인을 통해 오늘날 애스톤마틴과 유사한 실루엣을 최초로 선보였다. 1999년에는 처음으로 V12 엔진을 탑재한 V12 밴티지를, 2001년에는 플래그쉽 모델인 뱅퀴시를 연이어 선보이며 라인업 역시 크게 확장되었다. 바야흐로 양적 성장으로만 보자면 애스톤마틴 최고의 전성기가 찾아온 셈이었다.
2003년 애스톤마틴은 2005년 시즌부터 모터스포츠 복귀를 선언하고, 모터스포츠 디비전인 “애스톤마틴 레이싱”을 출범시킨다. 2004년 출시된 DB9을 바탕으로 개발한 GT 레이스카 DBR9은 2005년 데뷔와 동시에 세브링 12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애스톤마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모회사인 포드는 경영난을 이유로 2006년 애스톤마틴을 경매에 내놓는다.
5. 슈퍼 럭셔리 GT카로 발돋움하며
2007년 3월, 레이스카 개발을 통해 인연을 맺은 영국의 자동차 엔지니어링 회사 “프로드라이브”의 회장 데이비드 리처드는 애스톤마틴을 약 8억 4,800만 달러에 사들인다. 새 주인을 맞이한 애스톤마틴은 신흥부자들이 모여있는 중동과 중국 판매를 늘리기 위해 도쿄에서 이스탄불까지 V8 밴티지를 타고 12,089km를 횡단하며 내구성을 홍보하였다. 한편, 영국 곳곳에 산재해있던 생산설비를 게이든 공장으로 일원화시키고, 오스트리아의 마그나 슈타이어와의 협업을 통해 2010년부터는 오스트리아에서 4도어 스포츠카 라피드를 생산하였다.
애스톤마틴은 단순히 고성능이기만 한 차를 넘어서서 유려하고 클래식한 디자인과 영국 코치빌더의 수제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심금을 울리는 파워풀한 배기음과 더불어 모터스포츠를 통해 증명되는 강력한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여타 슈퍼카와는 차별화된 매력을 발산한다. 또 애스톤마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007 시리즈에서도 출연을 이어가며 영국 신사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럭셔리 GT카로써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현재 애스톤마틴의 라인업은 V8 밴티지부터 뱅퀴시에 이르기까지 크게 확장되었으며, (비교적) 대량생산을 통해 판매를 견인하는 볼륨모델과 슈퍼카급 희소성을 자랑하는 플래그쉽 GT의 조화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토요타와의 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애스톤마틴 최초의 시티카 “시그넷”이나 오직 77대만 생산된 한정판 슈퍼카 “One-77″과 같이 다양한 모델들을 수시로 선보이며 역동적이면서도 품격있는 슈퍼 GT의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