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룹이 19일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낙찰 받았는데, 낙찰 금액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한전이 제시한 감정가가 3조 3천억 원이었는데, 현대차는 감정가의 무려 3배가 넘는 10조 5,500억 원에 낙찰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였던 삼성전자는 4조 5,000억 원 정도를 써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삼성전자가 제시한 금액에 비해서도 2배가 훌쩍 넘는 금액이다. 이 정도면 정확한 분석에 의한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100년 뒤를 준비하겠다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일단 비쳐지는 모습은 어떻게든 가지겠다는 힘의 논리와, 그 정도 투자를 하더라도 차지하기만 하면 결국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는 투기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비쳐진다.
최근 현대차가 꾸준히 이야기해 온 ‘본질’은 어디 가고 허세와 투기만 남은 것일까?
한전 부지의 면적은 7만 9,342평방미터이므로 낙찰가 10조 5,500억 원을 평당으로 계산하면 1평 가격이 무려 4억 3,879만원에 달한다.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터무니 없는 가격 상승을 현대차 그룹이 주도한 셈이다.
현대차는 이와 관련하여 공식입장을 밝혔다. 현재 양재동 사옥의 공간이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전 부지 인수는 단순한 중단기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 차원에서 30여개 그룹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사옥 건립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부지 매입 비용 뿐 아니라 향후 건립비 및 제반 비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장기적으로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현대차 그룹은 사내 유보금만 하더라도 114조원에 이르고 있어 어찌 보면 10조원 정도의 비용을 투자해 세계적인 그룹 위상에 걸맞은 사옥과 다양한 문화, 비즈니스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특히 그 위치가 강남의 요지인 삼성동이라면 그 위상은 얼마나 높아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여러 매체들과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현대차 그룹이 굳이 이 땅에 사옥을 지어야 할 명분은 부족해 보인다. 특히 천문학적으로 쌓여 있는 사내유보금을 본질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투기에 사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현대차 그룹이 밝힌 공식 입장에서도 명분보다는 투자 가치에 대한 변명이 두드러지고 결국 ‘남는 장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대차가 향 후 이 곳에 건립할 통합 사옥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줄 박물관, 체험관, 출고센터 등 복합 문화 공간, 예를 들어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 같은 공간이 더해질 전망인데 이 부분에서도 많은 반대 의견들이 나왔었다. 현대는 이미 도산대로에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오픈한 바 있는데, 보다 본질적인 접근과 준비 없이 우리도 남들처럼 뭔가 보여 줄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마련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아우토슈타트의 경우 독일의 수도나 주요 대도시가 아닌 실제 폭스바겐 공장이 위치한 볼프스부르크에 지어졌다. 이를 통해 그 도시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입장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BMW 박물관과 벨트도 뮌헨 공장 옆에 지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현대차는 울산에 복합 문화 공간을 건립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 적인 특성을 최대한 고려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확보한 수준에서 대도시가 아닌 곳, 혹은 대도시 근교에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더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보다 여유있고 내실있는 문화 공간을 건립할 수 있다. 결국 서울 강남의 한 복판에 그런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그 공간을 소유하겠다는 욕심에 대한 변명이고, 사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부지 매입이 터무니 없는 가격에 낙찰된 것은 결국 최고 경영자의 강력한 의지의 결과물이며, 이는 현대차의 공식 입장에서도 ‘제 2의 도약을 추구하려는 최고경영층의 구상과 의자가 담긴 결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런 상징적인 공간의 확보로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고 결국 제 2의 도약을 이룰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대차 그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결코 부드럽지가 않다. 제 2의 도약을 위해 집중해야 할, 현대차가 그 동안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왔던 ‘본질’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 현대차는 괄목한 만한 기술적 성장과 품질 상승을 이뤄 냈었다. ‘품질 경영’을 기치로 내건 최고경영자의 주도 아래 글로벌에서 큰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 최근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을 쏟아내는 독일과 일본의 경쟁 업체들에 다시 한 참 뒤쳐지고 있다. 품질 문제도 계속 불거져 LF 쏘나타와 여러 신차들의 해외 리콜이 이어지고 있고, 품질 평가에서도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현대차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강남 삼성동 한전 부지에 현대차가 건립할 통합 사옥과 복합 문화 공간이 성공할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미 한 번 혼이 나 봤으니 현대모터스튜디오처럼 날림으로 이 공간을 채우지도 않을 것이며, 충분한 공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면 그 위상은 기대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과 스스로 강조해 온 ‘본질’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향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