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올 뉴 카니발은 무려 9년 만에 풀 모델 체인지 된 기아의 대표 미니밴이다. 사실 국내시장에서 미니밴이라고 해봐야 선택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그 중에 올 뉴 카니발은 최근 가파른 판매 성장을 보이고 있다. 미니밴이 가족을 위한 최고의 선택지가 될 지언정 운전자에게는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하는 차종이었다면, 올 뉴 카니발은 미니밴에 대한 그런 편견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사실 미니밴은 뚜렷한 용도를 갖지 않는다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차종이기도 하다. 식구가 많거나 짐을 싣고 다닐 일이 많다면 모를까 투박한 인테리어와 떨어지는 승차감, 큰 차체 등은 승용차보다는 승합차에 가까운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고급스러운 수입 미니밴을 선택하자니 높은 가격대와 가솔린 엔진, 고속도로 전용차선에 오르지 못하는 7인승 레이아웃이 걸린다. 그러한 까닭에 최근 미니밴은 SUV의 강세 아래 시장의 주류에서 밀려나 판매가 주춤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카니발은 이러한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해준다. 승용차같은 주행감각과 안락한 승차감, 효율적인 엔진과 9~11인승 구성은 국산, 수입 미니밴을 막론하고 여느 경쟁차에 빗대어도 뒤지지 않는다. 입에 발린 칭찬처럼 들리겠지만, 그 만큼 올 뉴 카니발은 9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올 뉴 카니발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기아의 패밀리 룩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구형 카니발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모두 세로형으로 배치되어 승합차 내지는 화물차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가로배치된 올 뉴 카니발의 램프는 승용차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과 LED 주간주행등은 강렬한 인상을 주고, 면발광 형태의 테일램프 디테일 역시 눈여겨볼 만 하다.
9인승(뉴 카니발)과 11인승(그랜드 카니발)이 각각 숏, 롱바디로 구분되었던 2세대와는 달리, 올 뉴 카니발은 승차정원과 상관없이 롱바디를 사용한다. 전장*전폭*전고는 5,115*1,985*1,740~1,755(mm)로 구형 그랜드 카니발에 비해 전장이 15mm 짧아지고 전고가 40mm 낮아졌다. 휠베이스는 3,060mm로 늘어나 안락한 탑승공간을 확보해준다.
올 뉴 카니발은 제원상 9인승과 11인승의 차이는 대동소이하지만, 외관상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프런트 범퍼의 형상이 다른데, 뉴 쏘렌토 R과 비슷한 사각형 안개등을 장착한 11인승과 달리 9인승 모델의 경우 패밀리 룩을 반영한 에이프런 주위로 크롬장식을 두르고 원형 안개등을 채택해 한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앞뒤 범퍼에 장착된 은색 스키드 플레이트도 11인승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올 뉴 카니발의 운전석으로 들어와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구형 카니발의 인테리어를 기억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투톤 컬러와 엠보싱 재질로 구성된 마감재와 블랙 하이그로시 트림은 준대형 급 이상의 승용차를 연상시킨다. 센터페시아는 조작편의성을 위해 운전석 쪽으로 살짝 기울어있고, 그립감이 좋은 3스포크 스티어링 휠 역시 미니밴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경쟁모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센터콘솔의 디자인이다. 현재 시판중인 미니밴들이 모두 시프트 레버를 센터페시아 쪽에 배치하고 센터터널과 콘솔박스를 분리시켜 다분히 승합차적인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있는 반면, 세단처럼 센터페시아와 콘솔박스를 연결하고 그 위에 시프트 레버와 컵홀더를 배치한 올 뉴 카니발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매우 인상적이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사람도 이질감 없이 조작할 수 있고, 기존에 애매하게 비워두던 공간을 채워 안정감이 느껴진다.
서랍식으로 구성된 콘솔박스는 생수병도 들어갈 만큼 깊어서 태블릿 PC나 노트북까지 수납할 수 있다. 콘솔박스 내부에는 선글라스 보관함과 충전전용 USB 포트, 12V 시거잭이 위치하고 있어 손쉽게 휴대용 전자기기를 충전하거나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다. 콘솔박스 커버는 팔걸이를 겸하고 있어 슬라이딩 방식으로 늘어난다.
8인치 LCD 모니터는 터치를 지원하여 큰 이질감 없이 조작이 가능하고 트렌드와 사용편의를 고려하여 배치된 버튼류는 승용차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제는 기본이 된 열선 스티어링 휠 외에도 1열 열선/통풍시트,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등 다양한 편의사양을 장착하고 있다. 안전사양으로도 차선이탈경보장치, 후측방경보장치, 급제동경보시스템 등이 두루 탑재되고 전모델에 6에어백이 기본 탑재된다.
다만 편의사양 확대를 통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전동식 텔레스코픽 스티어링 휠이나 장거리주행에 적합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브레이크를 늘 밟고 있어야 하는 부담을 덜어줄 오토홀딩 시스템과 같은 추가장비를 옵션으로라도 선택할 수 있게 구성했다면 더욱 좋았을 뻔 했다. 차량이 큰 만큼 운전자도 주행에 대한 부담이 더 큰데, 이러한 옵션들이 적용된다면 운전부담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시트 배치는 9인승임에도 불구하고 3+3+3이었던 구형 뉴 카니발과 달리 2+2+2+3의 4열 레이아웃을 채택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4열 시트의 활용도가 낮고, 9인승 이상 차량에 6인 이상 탑승 시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사용할 수 있는 국내 법규 하에서 최적의 배치인 셈이다. 이 점은 올 뉴 카니발이 토요타 시에나, 혼다 오딧세이 등 7인승 수입 미니밴과의 경쟁에서 갖는 최대의 장점이다.
4열 시트는 팝업 싱킹 시트를 채택해 간단히 손잡이를 당기며 누르는 것 만으로 차체 바닥 밑으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덕분에 최대 546L의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4열을 접은 뒤에는 2~3열 캡틴 시트가 매우 안락해진다. 넓은 레그룸과 편안한 시트형태 덕분에 6명이 타고 장거리 주행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기존의 3+3+3 구조에서는 2, 3열 시트를 모두 펴면 간이침대처럼 활용할 수 있었는데 올 뉴 카니발에서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 2, 3열 시트를 펴서 어떻게든 누울 수는 있지만, 오래 누워있기는 불편하다. 온 가족이 캠핑을 간다면 이런 기능이 사라진 점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
2열 열선시트와 실용성이 높은 220V 인버터, 2, 3열 썬블라인드 등 뒷좌석 편의사양도 수준급이다.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듀얼 선루프는 독립조작이 가능해 답답할 수도 있는 뒷좌석에 개방감을 더해준다.
올 뉴 카니발의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202마력/3,800rpm, 최대토크 45kg.m/1,750~2,750rpm을 발휘하는 2.2L R엔진과 6속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R엔진은 유로6 환경기준을 충족하며 복합 11.5km/L의 연비를 낸다(트림에 따라 차이가 있음). 기아 쏘렌토 R에 처음 탑재된 이후 오랫동안 성능이 검증된 R엔진은 2.1톤이 넘는 올 뉴 카니발의 거구를 여유롭게 움직인다.
속도를 높여보면 100km/h까지 전혀 힘에 부치지 않고 가속이 가능하다.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느낌이다. 11인승의 경우 110km/h에서 최고속도가 제한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퍽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다. 구형과 달리 9인승 모델도 롱바디의 넉넉한 실내를 제공하는데 오직 세금혜택을 위해 속도제한이 걸린 11인승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구형 카니발은 소음진동에 취약했는데, 올 뉴 카니발에서는 주행 중 풍절음과 엔진 소음진동을 잘 억제하고 있다. 그런데 주행 중에는 디젤엔진 특유의 덜덜거림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정차하여 공회전하는 동안에 소음과 진동이 상당하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그랜져 디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인데, 기왕 고급스러운 승용 미니밴을 추구한다면 정차 중 소음진동 억제에도 좀 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효율까지 생각한다면 ISG를 추가하여 정차 중 엔진을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고속 주행 중에는 제법 뛰어난 안정성을 선보이는데, 마치 커다란 방을 운전하는 듯 불안한 느낌을 받았던 이전 세대에 비해 상당히 개선되었다. 올 뉴 카니발의 휠베이스는 3,060mm로 구형에 비해 40mm나 길어졌는데, 이는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숏바디보다도 긴 것이다. 길어진 휠베이스는 낮아진 무게중심과 더불어 주행안정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덕분에 고속도로 뿐 아니라 코너가 많은 와인딩 로드에서도 승용차 못지 않게 안정적인 주행을 선보인다. 이처럼 뛰어난 주행안정성은 올 뉴 카니발의 주행감각이 승용차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길어진 휠베이스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장은 유지되면서 휠베이스가 길어지니 리어 오버행이 상대적으로 짧아졌는데, 주차 시 스토퍼에 바퀴가 걸린 후에도 뒷쪽으로는 공간이 넉넉한 반면 전면부는 주차라인을 한참 넘어선다. 주차공간이 비좁은 곳에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휠베이스 때문에 회전반경도 커져 좁은 코너를 돌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 덕분에 그나마 운행이 수월하지만, 운전이 미숙하다면 좁은 길을 지나거나 주차를 할 때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다.
기아 올 뉴 카니발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미니밴의 실용성과 승용차의 고급스러움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심지어 비슷한 가격대의 준대형 세단에 비해 뛰어난 거주성과 공간활용도를 갖춘 올 뉴 카니발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입 미니밴과 비교해봐도 승용차 감각과 효율성을 두루 갖추고 전용차선까지 이용할 수 있는 올 뉴 카니발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올 뉴 카니발을 완전히 프리미엄 미니밴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의외의 편의장비가 빠져있다거나, 국내환경을 고려해 재배치됐지만 다용도성은 포기하게 된 후열 시트, 미니밴에 익숙치 않은 운전자가 운전하기에는 너무 긴 휠베이스 등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다. 오는 10월 국내시장에도 수입 미니밴을 정조준한 7인승 모델이 출시되는데, 앞서 이야기한 부족함들이 해결되기를 기대해본다.
여전히 옥에 티같은 아쉬움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성큼 올라선 국산 미니밴의 수준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이미 국내시장에서는 지난 5월 출시 이후 8월 말 누적 계약 27,000대를 넘어서며 올해 목표판매량을 조기 달성하였다. 그간 딱히 경쟁력있는 모델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결과라 할 만 하다. 기아는 과거 1세대 카니발을 필두로 국내시장에 미니밴 돌풍을 불러일으킨 전적이 있다. 탁월한 만듦새가 돋보이는 올 뉴 카니발이 과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지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