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엔에 이어 포르쉐가 2번째 SUV 마칸을 선보였다. 국내에는 마칸 S, 마칸 S 디젤, 그리고 마칸 터보의 3가지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들 중 가장 강력한 마칸 터보를 먼저 만났다. (가솔린 2.0 터보 엔진의 마칸이 후에 추가됐다.) 카이엔에 비해 훨씬 컴팩트해진 차체에 날렵한 스타일을 갖춰 이제서야 포르쉐가 만든 SUV의 진수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제는 모두가 답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포르쉐의 SUV가 등장했으니, 포르쉐가 굳이 SUV나 세단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를 다시 생각해 봤다.
역시 문제는 돈이다. 스포츠카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기본적으로 팔리는 대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카만 만들어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포르쉐도 90년 대 초 재정 위기를 겪었는데 다행히 소형 스포츠카 박스터를 내 놓으면서 기사회생 할 수 있었는데, 그 후 아예 자존심을 버리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차를 만들었다. 바로 카이엔이다. 2002년 야심차게 카이엔을 내 놓자 수많은 포르쉐 매니아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판매는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카이엔의 판매 비중은 무려 50%에 이른다. 카이엔을 팔아서 911 개발 비용을 마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요즘 가장 핫한 세그먼트가 컴팩트 SUV인 만큼, 더 잘 팔릴 수 있는 모델, 거기다 덩치가 많이 큰 카이엔에 비해 좀 더 포르쉐의 아이덴티티를 녹여 넣을 수 있는 모델로 컴팩트 SUV 마칸을 내 놓은 거다. 틀림없이 포르쉐는 더 많은 돈을 벌 거다.
이상은 포르쉐 내부의 이야기이고, 또 다른 측면은 사람들이 고성능 SUV를 원한다는 점이다. 가족과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나갔다면 가끔은 험한 길도 잘 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출근했다 퇴근하는 길에는 가끔 스포츠카처럼 신나게 달리고도 싶은 것이다. 결국 자동차 한 대로 여러 가지 욕구를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세단을 베이스로 한 고성능 버전, 그러니까 BMW M이나 메르세데스 AMG, 아우디 RS 같은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있는 것이고, 스포츠카 뺨치는 고성능을 갖춘 SUV도 있는 거다. 포르쉐가 만큰 파나메라와 카이엔, 마칸이 일종의 이런 다목적 차량의 정점에 있는 모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카이엔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카이엔은 그냥 단순한 SUV일지 아니면 스포츠카 같은 SUV일지 관심이 많았는데 결론은 포르쉐가 만든 SUV답게 운동성능이 뛰어나긴 했지만 SUV의 태생적 한계로 제대로 된 스포츠카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그후 파나메라가 나왔고 파나메라는 스포츠카의 느낌이 더 강했다.
마칸은 더 컴팩트한 차체이다 보니 이미 외신에서도 거의 911 느낌이 난다는 평들이 많다. 과연 마칸 터보는 제대로 된 SUV이면서 동시에 제대로 된 스포츠카의 모습도 보여 줄 수 있을까?
마칸은 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라는 뜻이다. 실제 인도네시아 발음으로는 ‘마찬’에 가깝다고 하는데 영어식으로 읽어서 마칸으로 표기하게 된 거다. 형인 카이엔은 고추라는 뜻이었는데 카이엔에 비하면 훨씬 근사한 이름이다.
마칸은 아우디 Q5를 베이스로 개발됐지만 포르쉐가 약 80% 정도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디자인에서는 얼핏 카이엔을 많이 닮아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혼자 서 있어도 카이엔에 비해 덩치가 작은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모습엣 카이엔과 쉽게 구별되는 부분은 라디에이터 그릴이다. 그릴 상단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뻗어 있는데 카이엔은 곡선이 많이 강조돼 있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리프트 된 뉴 카이엔은 그릴이 마칸을 닮은 모습으로 바뀌어서 앞으로는 더 구분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마칸 터보와 마칸 S의 구분도 그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릴 좌우에 ‘ㄷ’자 모양으로 라이트가 적용된 것이 마칸 터보인데 상단 가로 바는 방향지시등이고, 하단 가로 바는 LED 주간 주행등이다. 마칸 S는 ‘ㄷ’자 형상 없이 가로 핀으로만 구성돼 있는데 상단에 LED 주간 주행등만 배치돼 있다. 또 다른 구분 포인트는 안개등인데 터보는 일자형이고, S에는 원형 안개등이 적용돼 있다
옆이나 뒤에서 보면 구분이 훨씬 쉬워진다. 지붕에서 뒤로 떨어지는 D필러 라인이 마칸은 훨씬 많이 누워있기 때문이다. 쿠페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911 라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결국 마칸은 허리 벨트를 기준으로 위만 보면 스포츠카, 특히 911 분위기가 나고, 아래는 허리가 높은 것이 SUV의 구조를 하고 있다.
2세대 카이엔이 나왔을 때 앞모습은 다들 마음에 들어 했지만 뒷모습 특히 리어 램프가 어색하다는 평이 많았는데 마칸은 리어 램프가 아주 세련됐다. 살짝 918 스파이더 느낌도 나는데 자세히 보면 커버가 단순한 곡면이 아니고 입체적인 모습이어서 세련미를 더한다.
마칸은 컴팩트 SUV 세그먼트 최초로 차고 조절이 되는 에어서스편선을 장착했다. 차고를 높여 험로를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실내는 최근 포르쉐가 새롭게 구축해 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따르고 있다. 비스듬하게 내려오는 센터터널과 화려한 버튼들이 꽤 복잡하게 배열돼 있는 모습 등이 그렇다.
이 디자인의 시작은 사실 카레라 GT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후 파나메라가 완벽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선보였고, 카이엔에 이어서 지금은 911, 박스터, 카이맨에 이어 마칸까지 이 스타일로 통일됐다.
하지만 스티어링 휠 왼쪽에서 시동을 거는 방식은 마칸에도 여전히 지켜져 오고 있는데, 다행히 스마트 키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이제는 키를 꽂지 않고 그 자리에 장착돼 있는 노브를 돌리기만 하면 시동이 걸린다.
원형 계기판의 전통도 재미있다. 포르쉐 911은 전통적으로 계기판에 동그라미 5개로 게이지를 구성하는데, 그 전통이 카이엔에도 이어져서 카이엔도 5개의 원으로 계기판이 구성돼 있다. 이후 박스터와 카이맨은 911의 동생이니까 원을 3개만 넣었는데, 이번에 마칸도 카이엔의 동생답게 계기판에 원이 3개가 들어있다. 아 물론 지금 원들은 서로 포개져 있기는 하다.
시트는 보기에는 버킷시트가 아니어서 그냥 편안해 보이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몸을 감싸는 느낌도 꽤 좋다.
마칸에는 새롭게 개발된 V6 3.6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올라갔는데, 최고출력은 400마력/ 5,500~6,500rpm, 최대토크는 56.1kg.m/ 1,450~5,000rpm에 이른다. 변속기는 듀얼 클러치 7단 PDK다.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는 4.8초가 걸리고 최고속도는 266km/h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플러스 옵션이 적용돼 있으면 론치컨트롤을 사용해서 0~100km/h 가속을 0.2초 단축시킬 수 있는데 시승차에는 적용돼 있지 않았다.
가속은 정말 강력하다. 무게가 2톤에 육박하는 SUV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달리기 실력이다. 급가속해도 앞이 많이 들리거나 허둥대는 모습도 없다. 지극히 안정적으로 달려 나간다. 사실 스포츠카에 비해 시트 포지션이 높고 사운드가 상대적으로 억제 돼 있는 데다 변속도 매끄러워 체감 가속력은 그에 못 미친다. 350마력의 911 카레라 가속력과 수치 상 똑같은데도 실제 체감 가속력은 많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차의 성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가속할 때 계기판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앞 뒤 구동력 배분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평소에는 뒷바퀴에 훨씬 많은 구동력이 배분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속할 때는 거의 50:50으로 구동력이 배분된다.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자극은 한 층 더 커진다. 서킷에 들어선다면 시프트 패들을 사용해 코너에서 한계까지 밀어 부칠 수 있다. 에어 서스펜션은 2단계로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은 사운드다. 실내에서는 너무 많이 억제된 기분이다. 가변 스포츠 이그조스트가 장착되면 강력한 가속을 더욱 자극적으로 즐길 수 있겠다.
고속에서도 탁월한 안정성은 동급 최강이다. 디자인 면에서도 SUV로서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디자인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카에 비하면 공기 저항을 엄청나게 받기 때문에 가속력이 비슷한 911 카레라와 비교하더라도 최고속은 많이 낮은 편이다.
고속 안정성이 매우 좋은 편이긴 하지만 솔직히 에어 서스펜션이 아닌 포르쉐 기본 서스펜션이 장착됐다면 안정성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마칸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으로 적용돼 있다. 험로에 들어 갈 때 차고를 높여서 험로 주파력을 극대화 시켜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주행에서는 보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해 준다. 일반적인 SUV라면 이와 같은 에어 서스펜션 적용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 주인공이 포르쉐라면 시각은 달라진다. 에어 서스펜션 적용을 반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포르쉐이기 때문에 탁월한 주행 성능을 기대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한다. 아마 포르쉐에 물어 본다면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고도 최고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답할 것이다. 물론 사실이다. 컴팩트 SUV 세그먼트에서는 동급 최초로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됐는데, 에어 서스펜션의 적용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주행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기자가 고른다면 디젤 모델에는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고, 터보 모델에는 장착하지 않는 것을 고르지 않을까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카이엔은 오프로드에서도 탁월한 주파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마칸도 동급 최강의 험로 주파력을 갖췄다. 이 부분에서는 당연히 에어 서스펜션이 최고의 무기다. 지상고가 높아지면 웬만큼 부드러운 모래밭도 부담 없이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카이엔 만큼 다양한 오프로드 주파 장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오직 ‘오프로드’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끝’이다. 지상고를 높여주고 전자적으로 각 바퀴의 상태를 제어해 최적의 조건으로 견인력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험로용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지 않으니 큰 돌들이 깔린 곳에서는 휠이 상할까 염려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마칸 터보는 카이엔에 비해서는 훨씬 포르쉐스럽다. 아마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지 않은 GTS 버전이 나온다면 제대로 스포츠카 느낌이 날 것도 같다. 처음 시승을 시작하면서 기대하기는 마칸 터보가 제대로 된 SUV이면서 동시에 제대로 된 스포카이길 기대했는데 상당 부분 근접하기는 했지만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한다. SUV의 태생적 한계에다 양면의 날을 가진 에어 서스펜션의 적용으로 인해 스포츠카에 대한 기대는 약간 낮추는 것이 좋겠다. 그마저도 포르쉐라는 이름이 선사하는 기대감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포르쉐 마칸 터보는 SUV로서는, 특히 컴팩트 SUV 동급 세그먼트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SUV라 할 만하고, 스포츠카로서는 전 SUV를 통틀어 가장 스포츠카에 근접한 모델이라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