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 한국 땅을 밟았다. 198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25년 만의 방한인 만큼 우리나라는 기쁜 마음으로 교황의 방문을 환영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인 행보와 검소한 생활로 가는 곳마다 이슈를 몰고 다녔는데, 이번 방한 때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달라”고 요청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기아의 준중형 CUV인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어 5일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이 되어줄 예정이다.
그런데 교황이 타는 의전차량은 ‘포프모빌(popemobile, 이탈리아어로 papamobil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역대 교황들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이 포프모빌을 사용하였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자동차가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반면, 교황이 의전용 자동차를 사용한 것은 한참 뒤인 1976년의 일이다.
가마에서 자동차로, 초기의 포프모빌
물론 50~60년대 부터 교황이 외국을 방문할 때면 각국 자동차회사들이 앞다퉈 교황을 위한 최고급 의전차를 제공하였다. 가령 포드는 교황을 위한 ‘프레지덴셜 리무진’을 제작했었고,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최고급 리무진인 ’600 풀만 런들렛’을 교황의 의전차량으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동을 위한 운송수단의 성격이 강했고, 교황이 대중을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 포프모빌의 시초는 1976년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대중을 만날 때 교황 바오로 6세가 탑승한 토요타 ‘랜드크루저’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교황은 무엇을 타고 다녔을까? 20세기 중반까지도 교황은 ’세디아 게스타토리아(sedia gestatoria)’라고 불리는 가마를 탑승하고 다녔다. 이 가마는 최초의 포프모빌이 등장한 이후에도 몇 년 간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세디아 게스타토리아’를 탑승한 교황은 1978년 즉위한 지 33일 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였다.
이어서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르러서야 포프모빌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었다. 이 포프모빌들은 교황을 일반 자동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거나 설 수 있도록 특수하게 개조되어 멀리서라도 교황의 모습을 보고싶어 하는 세계 각지의 신도들의 소원을 이뤄주었다. 초기 포프모빌들은 완전히 지붕이 없는 지프나 트럭을 사용하였으나,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저격사건 이후로는 방탄유리로 사방을 두른 포프모빌이 주를 이뤘다.
포프모빌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번호판이 ‘SCV’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 때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할 것이다. SCV는 ‘Status Civitatis Vaticanae’의 약자로, 라틴어로 ‘바티칸 시국’을 의미한다. 바티칸 내의 차량들은 모두 SCV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부여받는데, 의전용 포프모빌은 일반적으로 ‘SCV 1′~’SCV 9′의 번호를 사용한다.
다양한 모습의 포프모빌들
일반적으로 교황을 모시는 포프모빌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제작한다고 알려져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방탄유리를 갖춘 ‘G바겐’이나 ‘ML클래스’가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여러 회사들이 포프모빌을 제작하였다. 특히 거의 30년 가까운 기간동안 세계 각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차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포프모빌을 탑승했다.
80~90년대에는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자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포프모빌을 제작했다. 잘 알려진 메르세데스-벤츠의 ‘G바겐’은 1980년 교황의 서독 방문 당시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스페인 방문 때는 스페인 자동차회사 세아트의 ‘판다’ 모델이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필리핀과 칠레 방문 시에도 각국에서는 기술력과 정성을 다해 포프모빌을 개발, 제공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포프모빌들은 교황의 다음 방문이나 교황 선종 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일부는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지하에는 교황의 ‘마차 박물관(Carriage Museum)’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교황이 사용한 마차나 세디아 게스타토리아, 그리고 현대에 사용된 다양한 포프모빌들이 전시되어있다.
한편 교황에게 지루한(?)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이탈리아의 슈퍼카 제조사인 페라리는 단 400대만 생산된 슈퍼카 ‘엔초 페라리’의 400번 째 차량을 교황에게 기증했다. 물론 교황이 페라리를 타고 드라이빙을 즐긴 것은 아니다. 교황청은 그 해 6월 ‘엔초 페라리’를 경매에 내놓았고, 출시가격의 2배가 넘는 95만 유로에 낙찰되었다. 이후 낙찰금은 동남아 쓰나미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프모빌
이번에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낮은자의 교황’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평소 늘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후에 사제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제나 수녀들은 좋은 새 차를 타기보다는 검소한 차를 갖기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교황은 바티칸 내에서 준중형차인 포드 ‘포커스’를 손수 운전하고 다닌다.
작년 9월에는 한 이탈리아 신부가 교황에게 20년이 넘은 ‘르노 4′ 중고차를 선물했다. 그 차는 교황이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몰던 것과 같은 차종으로, 교황의 검소함에 감동한 신부가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교황은 선물받은 차를 직접 운전하며 즐거워했는데,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직접 운전하는 교황을 보며 주변의 경호원들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방한에서 준중형차인 기아 ‘쏘울’을 타듯이 다른 방문에서도 늘 작고 검소한 차를 요구해 화제가 되었다. 교황이 즉위 후 처음으로 방문한 람페두사 섬에서 그는 오래된 피아트 ‘캄파뇰라’를 타고 시민들을 만났다. 또 브라질 방문 때는 메르세데스-벤츠 ‘G바겐’에 탑승했는데, 선대 교황들이 사용하던 방탄 포프모빌이 아닌, 양옆이 오픈되어있는 차량이었다. 이는 방탄유리보다는 신도들을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18일까지의 방한일정 중 이동 시에는 기아 ‘쏘울’을, 퍼레이드 시에는 현대 ‘싼타페’와 기아 ‘카니발’ 개조차량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는 자사의 모델이 포프모빌로 사용되는 것을 상업적 마케팅에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교황의 방한소식이 전세계 언론을 타면서 간접적인 홍보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