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브랜드들은 저마다 새로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더불어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알리는 데도 마찬가지로 심혈을 기울인다. 아우디도 해마다 전 세계 기자들을 초청해 자신들의 신기술을 선보이는 ‘아우디 테크 데이’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아우디가 TDI 엔진을 처음 선 보인지 25년이 되는 해여서 아우디 테크 데이를 ‘아우디 TDI 테크 워크샾’으로 열었다. 기자는 이 워크샾에 참석하기 위해 선배 기자와 함께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날아갔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다. 파리까지 비행기로 11시간을 날아간 후 파리에서 2시간 정도를 대기하다 다시 1시간 반 정도를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일정은 그야말로 단출했다. 단 하루 워크샾에 참석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루를 날아가서 하루 워크샾에 참석한 후 바로 다음날 다시 하루를 꼬박 날아와야 하는 일정인 것이다. 그 먼 곳으로 날아가서 겨우 하루 머물다 돌아오다니 참 허무한 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일정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흔하지 않은 시승이 일정 중에 포함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관심을 끌었다. 바로 컨셉트카를 시승해 보는 것이다. 아, 물론 컨셉트카라고 해서 완전히 새로운 신차나 화려한 쇼카 같은 것은 아니고 기존에 있던 모델에 새로운 파워트레인을 적용한 컨셉트카여서 디자인적으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 양산이 되지 않은 컨셉트카인 것은 사실이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시승의 대상은 아우디 ‘RS5 TDI 컨셉트’다. 지금까지 아우디의 고성능 모델 S와 RS는 거의 대부분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고, 디젤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S 모델은 SQ5 TDI였다. 그나마 아직까지 RS 모델에 디젤 엔진이 얹힌 적은 없었으니, 조만간 RS5 TDI가 양산된다면 RS 최초의 디젤 모델이 될 전망이다. 얼마나 강력한 디젤 엔진을 얹었기에 아우디 고성능의 대명사 RS 배지를 붙일 수 있게 됐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행사는 오전에 코펜하겐에 있는 ‘디젤 하우스’에서 아우디 TDI의 역사와 현재, 미래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으로 디젤 하우스 투어를 마친 후, 준비된 다양한 시승차를 타고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 사이의 외래순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말뫼에 있는 ‘스투룹 서킷’까지 시승을 하고, 서킷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기자들이 3개의 조로 나눠 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개의 세션 중 하나가 바로 ‘RS5 TDI 컨셉트’와 ‘A6 TDI 컨셉트’ 시승이었다.
서킷에 도착하자 25년 전 최초로 TDI 엔진을 얹고 등장했던 ‘아우디 100 2.5 TDI’가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될 것 같은 모델인데 그 곳에서는 누구나 마음대로 타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어서 점심을 먹고 짬을 내서 잠깐 타 봤다. 지금 기준으로도 충분히 파워풀하고 날렵하게 달려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다리던 RS5 TDI 컨셉트를 시승할 시간이 됐다. 서킷을 각각 2랩씩 주행하는 시승인데 나름 재미있는 이벤트도 준비돼 있었다. 먼저 A6 TDI 컨셉트에 올라서 주행을 시작하는데, 페이스카로는 아우디 고성능 모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무려 560마력을 발휘하는 RS6 아반트가 등장했다. A6 TDI를 타고 RS6 아반트의 뒤를 따라 서킷에 들어선 후 처음 짧은 직선 주로 시작 지점(위 사진에서 체커기가 그려진 지점)에서 A6 TDI와 RS6 아반트가 나란히 멈춰 선다. 그리고 RS6 아반트의 신호에 따라 동시에 가속을 시작해서 서로의 가속 성능을 비교해 보는 거다.
560마력의 RS6 아반트를 326마력의 디젤 엔진을 얹은 A6 TDI 컨셉트가 앞지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 RS6 아반트가 약간 여유를 부려주자 A6 TDI가 초반 거의 RS6 아반트를 따라잡을 기세였다. 그러고 보니 이 A6 TDI 컨셉트 가속력이 예사롭지 않다. 이후 RS6 아반트의 꽁무니를 따라서 서킷을 잘도 달렸다. 그냥 세단 A6인데도 서킷을 달리는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2번의 가속력 테스트를 더해서 2랩 주행을 마치고는 피트로 돌아왔다.
피트에는 고대하던 RS5 TDI 컨셉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 먼 곳까지 가서 꼭 만나고 싶었던 주인공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RS5 TDI 컨셉트는 쇼를 위해 여기 저기 현란한 스티커를 붙여 둔 것을 제외하면 외관 상 이미 봐 온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다만 컨셉트카는 RS 배지 대신 ‘S라인’ 배지를 곳곳에 부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라면 가솔린 엔진이 아닌 디젤 엔진이 장착됐다는 점이고, 따라서 계기판에는 레드존이 5,500rpm부터로 표시돼 있다. D컷 스티어링 휠과 시프트패들이 전투의지를 북돋워 준다.
기어 레버 주변 센터터널에는 엔진 스타트 버튼과 개선된 MMI가 자리하고 있다.
시트는 몸을 푹 감싸는 고급스런 버킷 시트가 적용됐다. 역시 RS로고 대신 S라인 로고가 새겨져 있다.
자, 이제 과연 디젤엔진으로도 RS 배지를 달기에 부족함이 없는지 직접 시험해 볼 시간이다. 앞서 A6 TDI 컨셉트를 인도했던 RS6 아반트가 다시 페이스카를 맡아 서킷으로 진입했다. 기자는 이번에는 RS5 TDI 컨셉트로 그 뒤를 따른다. 서킷에 진입해서 첫 코너를 지난 후 직선 구간에 다시 나란히 멈춰 섰다. 어쨌든 둘다 RS 배지를 붙인 모델이다. RS6 아반트는 더 크고 더 무거운데다 왜건이다. 반면 RS5는 쿠페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긴장됐다.
역시 RS6 아반트 운전자가 손을 창 밖으로 내 밀어서 손가락으로 카운트다운을 셌다. 동시에 출발하자 엄청난 가속력이 RS5 TDI 컨셉트를 쏘아 붙였다. 이차가 과연 디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즈음 RS6 아반트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A6 TDI 컨셉트를 탔을 때처럼 페이스카 운전자가 출발 때 살짝 여유를 부려줬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출발과 함께 내가 탄 RS5 TDI 컨셉트가 앞서 나갔고, 조금 지나서야 페이스카가 추월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RS5 TDI 컨셉트, 이차 분명 디젤 엔진을 얹었는데 이렇게 가속력이 뛰어날 줄 미처 몰랐다. 괜히 RS 배지를 붙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RS6 아반트에는 V8 4.0 바이터보 가솔린 엔진이 얹혔는데, 최고출력 560마력의 성능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RS5 TDI 컨셉트에는 도대체 어떤 엔진이 얹힌 것인가? 400 혹은 500마력 급의 엔진이 얹혔을 것 같지만 사실 RS5 TDI 컨셉트에는 V6 3.0 TDI 385마력 엔진이 얹혔다. 그리고 RS6 아반트의 0~100km/h 가속은 3.9가 걸리는 반면 RS5 TDI 컨셉트는 4초가 걸린다. 불과 0.1초 차이가 날 뿐이다. V6 3.0 TDI 385마력 엔진으로 그렇게 빠른 가속력이 나는 비밀은 도대체 뭘까?
그렇다. RS5 TDI 컨셉트의 핵심인 그 비밀은 바로 ‘전기 바이터보’ 기술이다. 기존의 TDI 엔진은 배기가스 압력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는 터보차저로 과급압을 얻고 있다. 좀 더 뛰어난 응답성과 효율성을 얻기 위해 바이터보를 장착하기도 한다. 아우디가 처음 TDI를 발명한지 25년이 지난 지금, 아우디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다.
아우디는 V6 3.0 TDI 엔진에 기존 터보차저와 함께 전기로 컴프레서를 돌리는 전기 터빈을 직렬로 추가해 ‘전기 바이터보’를 완성했다. 이 전기 터빈은 7kW의 최대 구동력으로 단 250밀리초 내에 컴프레서를 최대 속도로 가속한다. 전기 터빈의 장점은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도 즉시 강력한 과급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효율성은 일반 바이터보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며, 최고출력이 385마력에 이르고, 최대토크 76.5kg.m는 1,250 ~ 2,000rpm 사이의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이처럼 초반 응답성을 높인 덕분에 RS5 TDI 컨셉트는 출발 후 단 4초 만에 100km/h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560마력 초고성능 RS6 아반트와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RS7보다 0.1초 뒤지는 수치다.
그리고 전기 터빈을 구동하는 전기는 회생 제동을 통해서 확보하는데, 트렁크에 콤팩트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갖춰 충전하고, 기존 12V 전기 시스템 대신 더 강력한 48V 전기 시스템으로 구동한다. 48V 전기 시스템은 다양한 전기 장비 구동에서도 더 효율적이며, 높은 전압 덕분에 더 가는 배선을 사용할 수 있어 배선의 총 중량 저감도 이룰 수 있다. 기존 12V 전기 시스템도 일부 기능을 위해 유지하고 있다.
강력한 가속력의 비밀이 풀렸으니 RS5 TDI 컨셉트의 거동을 이해하는 것도 좀 더 쉬워졌다. 총 3번의 직진 가속 테스트와 함께 나머지 구간에서는 앞서 도망가는 RS6 아반트를 쫓아 달렸다. 이번에는 앞서는 RS6 아반트도 본격적인 실력을 발휘하며 달렸는데도 이전에 A6 TDI 컨셉트로 달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페이스카를 압박할 수 있었다. 275/30ZR20 피렐레 P-제로 광폭타이어 덕분에 코너를 돌아나가는 속도도 크게 높아졌고 무엇보다 코너 탈출과 함께 이루어지는 재가속에서 더 폭발적으로 페이스카를 추격할 수 있게 됐다.
디젤 엔진이라 최고 회전수가 5,500rpm으로 제한되다 보니 더 높은 고회전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기어를 변속한 후에도 즉각적인 파워가 뿜어져 나와서 사실 연속되는 코너를 공략하면서도 디젤 엔진의 한계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2랩을 도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너무도 아쉽게 시승이 끝이 났지만 여운은 오래 남았다. 3리터 디젤 엔진으로 이 정도의 가속력과 뛰어난 밸런스를 선사하는 고성능 모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었다. 기존 모델에 파워트레인과 전기 부분만 새롭게 적용한 모델이다 보니 양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아우디는 곧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RS5 TDI 컨셉트에서 내리면서 2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연비다. RS 배지를 단 이런 고성능 모델을 타면서도 연비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지 모른다. 정확한 연비 제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연비가 잘 나올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야말로 에브리데이 스포츠카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겠다. 0~100km/h 가속 4초의 에브리데이 스포츠카라니…… 두 번째는 아우디가 TDI 엔진으로 르망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TDI 엔진으로 8번 종합 우승을 거머쥔 그 기술력과 성능을 이제 양산차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 다양한 TDI 엔진들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V8 TDI 엔진을 장착한 SUV도 소개됐는데, 그 때 사실 많은 실망을 했던 기억이 안다. V6 TDI가 보여준 뛰어난 성능을 감안할 때 V8 TDI의 엄청난 토크로 인해 기대가 높았지만 실제 주행에서 파워풀한 가속성능은 보여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기술이 발전돼 지금 아우디는 V8 4.2 TDI 엔진을 얹은 A8 모델로 0~100km/h 가속 4.7초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런데 멀지 않은 미래에 모습을 드러낼 새로운 RS5 TDI는 3리터 V6 TDI 엔진에 전기 바이터보 기술을 접목해 친환경적이면서도 V8 엔진을 능가하는 초강력 디젤 스포츠카의 세계를 선사할 예정이다.
세계는 이미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의 시대에 진입했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더 친환경적인 모델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최근 셰일 오일과 관련한 이슈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솔린과 디젤 엔진이 더 오랫동안 사랑 받을 것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아우디 TDI 워크샾에서도 아우디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TDI 기술 개발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시승한 RS5 TDI 컨셉트는 의미 있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