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본 BMW 중에서 비례가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을 만났다. 4시리즈 쿠페다. 시승은 디젤 버전인 420d 쿠페를 시승했다. 혹시 2시리즈 쿠페를 타 보면 마음이 다시 바뀔지 모르겠다. 어쨌든 420d 쿠페를 탔을 때까지는 그랬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E92 M3와 비교해도 차체 비례에서 주는 안정감 면에서는 420d쿠페가 더 좋다는 생각이다.
4시리즈와 2시리즈의 등장으로 BMW는 1부터 7까지 모든 시리즈를 갖추었다… 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직 8이 복귀하지 않았다. Z8이 8시리즈의 명맥을 잇는 듯했지만 현재는 단종된데다 Z가 붙기 때문에 제대로 된 8시리즈의 후예로 보긴 어려웠고, 2, 4, 6이 완성된 마당이니 8의 복귀를 기대해 볼 만하다.
4시리즈의 등장은 6시리즈의 등장과 함께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낌은 조금 다르다. 5시리즈와 7시리즈에는 쿠페 버전이 없었던 만큼 6시리즈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로 등장한 반면(물론 과거 6시리즈의 대를 잇긴 하지만), 4시리즈는 3시리즈의 쿠페와 컨버터블 모델의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4시리즈가 등장과 함께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 디자이너가 디자인 한 멋진 디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3시리즈와 언뜻 닮은 듯 보이지만 미묘한 선의 변화가 가져다 준 차이는 컸다. 누가 보더라도 4시리즈는 3시리즈보다 훨씬 예쁘다.
얼굴 이목구비가 매우 조화롭고 선명한 인상을 하고 있어 얼굴이 예쁜 모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몸매도 정말 잘 빠졌다. 3시리즈가 4,624mm x 1,811mm x 1,429mm 크기에 휠베이스가 2,810mm인데, 4시리즈 쿠페는 4,638mm x 1,825mm x 1,362mm 크기에 휠베이스가 2,810mm이다. 휠베이스는 같지만 길이가 14mm, 폭이 14mm 늘어났고, 키는 67mm가 낮아졌다. 3시리즈보다 길어지고, 넓어지고, 낮아진 만큼 달리기 실력도 늘어났겠다.
그랬다. 420d쿠페는 그냥 예쁜 것이 다가 아니었다. BMW에서 가장 보편적인 2.0 디젤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뛰어난 달리기 실력은 감춰지지 않았다.
4시리즈 쿠페는 가솔린 모델인 428i와 디젤 모델인 420d가 선보였는데, 시승한 차는 420d다. 엔진은 2.0 직분사 터보 디젤로 최고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8.8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당연히 자동 8단이고, 0~100km/h 가속은 7.3초가 걸린다. 3시리즈 세단과 같은 파워트레인이지만 가속력은 0.3초 빠르다. 하지만 420d 쿠페의 가속력은 4시리즈의 달리기 실력이 아니다. 4시리즈의 달리기 실력은 안정감이다.
디젤 엔진을 장착했지만, 그리고 그 디젤엔진은 가속력 보다는 평상시 효율적인 주행에 더 잘 어울리지만, 420d 쿠페를 타면 탁월한 주행 안정감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부드럽게 주행하는데도, 굳이 코너를 강하게 달리지 않는데도 낮은 자세에서 전해지는 안정감이 신기했다. 같은 휠베이스에서 조금 더 넓어진 차체, 낮아진 무게 중심이 주는 효과가 이렇게 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서스펜션은 세단보다 조금 단단한 느낌이고, 스티어링도 조금 더 무겁다. 예리한 핸들링과 빠른 엔진 응답성 등은 여전하다. 결국 이런 것들이 어울려 굳이 빠르지 않아도 달리기 실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엄청 편하다. 어디 스트레스 주는 데가 없다. 쿠페 자체가 조금은 불편할 수 밖에 없지만 몸에 잘 맞는 편한 정장을 입은 듯 원하는 대로 잘 움직여준다.
420d 쿠페도 드라이브 셀렉터를 통해서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에코 프로 등의 주행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 스포츠 쿠페이니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디젤 모델이다 보니 에코 프로를 선택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에코프로를 선택하면 회전계 아래 모니터가 에코프로 게이지로 전환되면서 파란색 그래프가 현재 주행의 에코 정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엑셀을 좀 과하게 밟으면 옆에 엑셀에서 발을 들어 올리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여준다. 속도가 90km/h를 넘어서면 파란색 그래프가 회색으로 바뀌면서 역시 속도를 낮추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주행하면 고속도로에서 연비 20km/L를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스포츠 모드에서 시프트 패들을 사용해서 달리면 분명 더 경쾌한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가솔린 엔진의 고회전을 만끽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빠르게 달리면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고속 순항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420d 쿠페를 스포츠카처럼 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워낙 멋진 스타일이다 보니 2.0디젤 엔진으로는 파워풀한 달리기에 대한 기대를 다 채울 수가 없다. 그대신 420d 쿠페는 신나게 달려도 뛰어난 연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시프트 패들을 사용해 가며 잠시 신나게 달리고 나면 금새 연비 생각이 나서 억지로 ‘이만큼 달렸으면 됐어’ 라고 자위하며 꼬리 내리게 되는 가솔린 모델과는 다르다.
물론 이 멋진 스타일의 쿠페를 매일 출퇴근은 물론 미팅이나 장거리 출장, 혹은 쇼핑이나 데이트에 항상 몰고 다녀도 부담이 없다. 아니 420d 쿠페를 선택한 순간 방랑벽을 제대로 만끽해야 본전을 뽑는 것이다.
이런 매력을 염두에 두고 디젤 쿠페를 골랐더라도 조금 더 즐겁게 타자면 에어스커트나 스포일러 등으로 드레스업 해서 타는 것도 좋겠다. 물론 8등신 미녀는 그 자체로 빛이 나지만 화려한 액세서리가 더해진다면 더 완벽해 지지 않겠는가?
실내는 도어가 2개인 것과 그로 인해 시트 구조가 다른 것을 제외하면 3시리즈와 똑같다. 시트도 양쪽 팔 부분에 박음질로 꾸밈이 더해진 정도만 다르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몸을 지지해 주는 실력이 뛰어나다.
420d 쿠페에는 헤드업디스플레이가 적용됐고, 네비게이션 내용이 HUD에 보여지는 것은 정말 편하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은 최신 국산 제품에 비하면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블루투스는 쉽게 설정이 가능하고, 새로 차에 탈 때마다 바로 잘 찾아준다. 오디오 스티리밍도 당연히 되는데, 얼마 전까지 BMW 일부 모델들이 폰 속에 저장된 음악 재생은 잘 하지만 멜론 등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블루투스로 음악을 재생해 주지 못했는데, 420d 쿠페는 멜론도 잘 지원 된다. 오디오 버튼을 눌러서 다음 곡으로 이동도 된다. 반갑다. 음질도 비교적 뛰어난 편이다.
아쉬운 것은 통풍시트와 오토홀드가 적용되지 않은 점이다. 엔진 오토 스타트/스톱은 적용돼 있어서 차가 잠시 정차하면 시동이 꺼지는데 오토홀드가 없어서 브레이크는 계속 밟고 있어야 한다. 발을 쉬게 하려면 기어를 P로 옮겨야 하는데 다행히 전자식 변속기 레버여서 버튼만 한번 누르면 되므로 그나마 편한 편이다. 오토 스타트/스톱은 시동을 걸고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한 경우에도 시동이 꺼질 때가 있었다. 개선된 부분이다.
4시리즈 쿠페는 흔히 말하는 퍼스널티 쿠페다. 편의성보다는 개인적인 운전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차다. 그런데 420d 쿠페는 거기에다 합리적인 카라이프를 더했다. 본격적인 스포츠카가 되기는 힘들지만 매우 안정적인 하체를 바탕으로 충분히 즐겁게, 경쾌하게 달릴 수 있고, 그러면서도 연비는 뛰어나다. 가족을 같이 생각하면 선택하기 어려운 차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은 이들에겐 새로운, 그리고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아주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