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여러 브랜드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보였지만 완성도에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따라 잡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토요타가 오랫동안 갈고 닦은 하이브리드 기술력은 뛰어났다.
그런데 최근 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시승해보고 나서 현대의 하이브리드 기술도 놀랍게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는 2009년 아반떼에 LPI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LPI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면서 처음으로 양산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는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판매면에서도 많이 부족했던 모델이었다. 어디 첫 술에 배 부르랴?
그리고 현대는 2011년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선보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토요타의 하이브리드가 아니라면 관심을 가질 것이 못 된다는 생각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지난 해 등장한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기대 이상의 놀라운 완성도를 선보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일반 모델과 완전히 다른 라디에이터 그릴로 차별화 한 것과는 달리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외관상 일반 모델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하이브리드 배지와 하이브리드 전용 알루미늄 휠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실내도 큰 차이는 없다. 거의 유일한 차이는 계기판으로, 좌측에 회전계 대신 에코 가이드가 자리하고 있다. 계기판 가운데 모니터와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서는 하이브리드의 작동 상황을 보여주는 에너지 흐름도가 제공된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2.4리터 DOHC MPI 세타Ⅱ 하이브리드 전용엔진이 최고출력 159마력과 최대토크 21.0kgm를 발휘하고, 여기에 35kW(45마력)의 전기모터를 더해 시스템 출력 204마력을 발휘한다. 이는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150마력 2.0 엔진과 30kW(41마력) 전기모터의 합인 191마력에 비해 조금 더 높은 수치다.
토요타의 직병렬혼합식과는 달리 병렬식 구조인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엔진 출력과 전기모터의 출력을 산술적으로 더한 값이 시스템 출력이 된다.
2차 전지는 5.3Ah 270V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가 얹혔고, 변속기는 하이브리드 전용 6단 자동변속기가 얹혔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에는 CVT가 얹힌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배터리가 충분할 경우 시동이 바로 걸리지 않고 출발 준비가 되었다는 ‘READY’ 표시가 계기판에 나타난다. 이는 다른 시스템들과 같다. 이 상태에서 출발하면 엔진 구동 없이 전기모터만으로 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기모터 구동만으로 가속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2~30km/h 정도에서는 시동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한적한 도로여서 주변 차를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가속할 경우 그보다 더 높은 속도까지 전기모터만으로 가속되긴 하지만 분명 토요타 시스템에 비해 초기 전기모터 구동 영역은 더 좁다.
주행 중 엔진이 꺼지고 켜지는 것이나 엔진과 전기모터 간의 구동력 전환 등은 매우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주의해서 살피지 않으면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충전 효율도 좋고 배터리 매니지먼트도 잘 되는 것 같다.
가속력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특히 이 차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임을 감안해서 부드럽게 주행하고자 한다면 힘은 충분히 넉넉한 편이다.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고속 주행 안정성도 한층 더 높아진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에서 높은 점수를 줄 부분은 고속에서도 가능한 EV모드다. 가장 뛰어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는 토요타의 경우에도 매우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 아니라면 8~90km/h 이상에서는 EV모드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거의 120km/h 이상의 속도에서도 약간만 내리막이라면 엑셀에서 발을 뗐을 때 EV모드가 작동한다. 거의 평지에서도 엑셀을 한번 뗐다가 미세하게 조절하면 전기모터의 힘으로 탄력주행 할 수 있는 속도가 상당히 높았다.
물론 이런 특성 만으로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전체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초반 가속 시 전기모터 작동 구간이 좁은 것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주행 조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현대의 하이브리드 개발 역사를 돌아보면 불과 몇 년 만에 이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시승 동안의 연비는 공인연비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 나왔다. 시승 동안 마침 부산을 다녀올 일이 있어서 고속도로를 통해 부산을 다녀왔는데, 고속도로에서는 거의 110~120km/h 정도로 달렸고, 서울과 부산 시내 주행 일부를 포함해서 연비는 15.4km/ℓ가 나왔다. 860km를 주행 후 연료경고등이 들어왔고, 그 때 주행가능거리는 73km였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공인연비는 복합 16.0km/ℓ(도심 15.4km/ℓ 고속도로 16.7km/ℓ)이다.
참고로 리셋 후 수동모드로 기어를 내려가면서 고회전을 마음껏 사용했을 때 연비는 6.8km/ℓ 정도가 나왔고, 평일 오전 10시경 양재 인터체인지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도로를 거쳐 용답동까지 가는 구간에서 막힐 때 2~30km/h, 뚫릴 때 80km/h 정도로 주행했을 때 약 20km/ℓ의 연비가 나왔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외 부분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면 하이브리드 모델에서는 어드밴스드 스마트크루즈컨트롤(ASCC)을 선택할 수 없다. 이제는 LF 쏘나타에도 선택장비로 제공되는데 그랜저에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그 동안 현대차들이 스마트키 시스템에서 시동을 끌 때 전원이 동시에 차단되는 것이 불편했었는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잠시 정차할 때 자동으로 시동이 꺼질 경우 오디오를 비롯한 모든 전원이 살아 있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오토홀드와 함께도 작동한다.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이 연비에 매우 민감한 가운데 디젤 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고 있고, 그 틈새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 무척 높다. 특히 소음과 진동에 예민한 이들에게 하이브리드는 무척 괜찮은 대안이다. 하지만 그 동안 토요타와 렉서스의 하이브리드가 아니라면 큰 주목을 끌지 못했고, 또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분명 눈 여겨 봐야 할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가격과 편의장비, 정비편의성까지 고려하면 경쟁력은 좀 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