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을 위해 태어난 닛산의 7인승 SUV 패스파인더는 평상 시 5인승으로 사용한다면 뛰어난 공간 활용성이 장점이다. 디젤 엔진이 아닌 점은 연비 면에서는 최고의 약점이지만 동급 사이즈의 유럽 SUV에 비하면 가격 경쟁력이 월등해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하면 나름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좀 더 적극적인 오프로드 성능과 정숙성, 부드러운 주행감각에 초점을 맞춘다면 경쟁력은 더 올라간다.
한국 닛산이 신년 벽두부터 신차를 선보였다. 4세대로 진화한 7인승 SUV 패스파인더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인피니티 JX와 플랫폼을 공유한 모델이다.
디자인은 상당히 미래적인 느낌이었던 무라노에서 터프한 이미지로 발전시킨 모습이다. 특히 넓은 크롬으로 장식한 대형 V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최근 미국 대형 SUV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모습이다. 앞뒤 펜더를 강조한 모습은 무라노와도 닮았다.
패스파인더는 크기가 5,010 × 1,960 × 1,770mm에 휠 베이스가 2,900mm로 7인승으로 도입되긴 했지만 전형적인 유러피언 중형 SUV와 비슷한 크기다. BMW X5가 4,886 x 1,938 x 1,762mm 크기에 휠베이스 2,933mm, 포르쉐 카이엔이 4,846 x 1,954 x 1,702mm 크기에 휠베이스 2,895mm이니 휠베이스는 X5와 카이엔 중간이고, 길이는 가장 길다. 7인승이라 얼핏 ‘대형 SUV’로 부르기 쉽지만 글로벌 기준으로 중형 SUV로 봐야 한다.
독일 모델 중 7인승인 아우디 Q7은 5,089 x 1,983 x 1,772mm에 휠베이스 3,002mm로 이들보다 전반적으로 한치수 더 크고, 국내에서 7인승으로 기대 이상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현대 맥스크루즈는 4,915 x 1,885 x 1,700mm 크기에 휠베이스 2,800mm로 이들보다는 한 치수 작은 모델로 볼 수 있다.
동일한 플랫폼에 동일한 휠베이스를 가진 인피니티 JX와 비교하면 좀 더 보급형 모델로 보면 되겠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인피니티의 흔적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스티어링 휠과 각종 다이얼, 버튼 들이 인피니티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지만 소재면에서는 고급성이 조금 떨어진다. 아무래도 닛산이 인피니티 같을 수는 없으니까.
패스파인더의 실내에서 가장 관심을 둘 부분은 시트 변환이다. 기본적으로 7인승 구조여서 2+3+2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평상 시 5인승으로 많이 활용하게 되는 것을 감안하면 3열의 2개 좌석은 비상용으로 봐야 한다. 평소에는 접어두고 화물 공간을 넓게 사용하면 된다. 7인승 시트를 5인승으로 활용할 경우 슬라이딩이 되는 2열 시트 덕분에 2열 공간도 매우 넓게 활용할 수 있다.
3열에 사람이 타거나 2열 시트를 통해 3열에 짐을 싣는 경우에 2열 시트를 접는 방법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시트 관절 부분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 시트 등받이가 앞으로 폴딩만 되고, 시트 등받이 옆 부분에 있는 레버를 위로 당겨 올리면 시트의 방석 부분이 위로 접히면서 등받이와 포개져서 시트를 앞으로 밀 경우 꽤 넓은 2열 출입 공간이 확보된다.
편의 장비는 많이 갖추어져 있는 반면 꼼꼼히 따졌을 대 불편한 부분도 꽤 있다. 우선 스마트 키가 적용돼 있고, 엔진 시동도 버튼을 눌러서 건다. 1열 시트에는 냉방 시트가 모두 적용됐고, 스티어링 휠에는 열선이 내장됐다.
네비게이션은 아틀란이 적용됐고, 오디오는 역시 보스 시스템이 장착돼 뛰어난 사운드를 제공한다. AUX 연결은 2채널 오디오전용 잭으로만 연결된다.
패스파인더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4륜 구동 시스템이다. 앞바퀴 굴림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4륜 구동 시스템인데 기어 레버 아래의 다이얼을 통해 앞바퀴 굴림 2WD, 4륜 구동 AUTO, 4WD LOCK을 선택할 수 있다. 맑은 날 일반적인 도로를 주행한다면 앞바퀴 굴림 2WD에 고정하고 달려도 충분하다.
만약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이라면 안전을 위해 4륜 구동 AUTO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AUTO를 선택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앞 바퀴에 거의 100%의 구동력이 전달되고, 출발할 때나 급 가속할 때, 그리고 바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 순간적으로 필요한 구동력을 뒷바퀴로 전달해 준다. 이런 구동력 배분 상황을 계기판 가운데 모니터 화면에서 그래프로 표시해 주는 것도 무척 재미있다.
물론 가끔씩이라도 진흙이나 모래밭 등 험한 길에 들어갈 땐 4WD LOCK을 선택하면 된다. 최근 많은 도심형 SUV들이 아예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만 갖추고 있지만, 명색이 SUV라면 가끔은 이처럼 적극적인 4WD가 그리울 때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패스파인더는 이름 그대로 길을 찾아 나가는 개척자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
더불어 최근 열풍인 캠핑에도 적당한 것이 트레일러를 견인할 수 있는 장비도 잘 갖추고 있어 다양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기에도 좋다.
파워트레인은 3.5리터 V6 DOHC VQ35DE 가솔린 엔진과 차세대 엑스트로닉 CVT가 조합됐다. 모두 닛산이 자랑하는 장비들이다. 엔진은 최고출력 263마력/6,400rpm, 최대토크 33.2kgm/4,400rpm을 발휘한다.
닛산의 최신 CVT들은 단순히 연비 뿐 아니라 운동 성능 면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최근 모델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예 수동모드를 갖추지 않았다. 시프트 패들은 당연히 없다. 오토홀드나 오토 스타트/스톱도 없다. 효율성 좋은 CVT 본연의 시스템만으로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패들 시프트나 수동모드는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그래도 남들 다 있는데 내 차에 없다면 좀 서운할 수 있겠다.
주행 성능은 부족함이 없다. 뛰어난 엔진으로 평가 받고 있는 VQ엔진 덕분에 가속력도 좋은 편이고, 회전 상승도 무척 매끄럽다. CVT의 특성상 급가속 때는 엔진 회전이 먼저 레드존 부근까지 올라가서 유지된 상태에서 속도가 꾸준하게 올라간다. 기어 변속도 없고 변속 충격도 없다.
닛산 무라노나 인피니티 FX, JX 등을 타보면 매우 안정감 있는 서스펜션이 돋보였는데, 패스파인더 역시 요철의 정보를 잘 걸러내서 전달하는 부드러운 승차감과 고속에서도 롤이나 휘청거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뛰어난 안정감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감각들이 운전 중에는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힘이 넉넉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무래도 디젤 엔진에 비해서는 장점이다. 미국이 주력 시장인 탓에 아직 가솔린 엔진만 얹히지만 연비를 생각하면 디젤 엔진이 얹히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인피니티 FX에 얹히는 3.0 디젤 엔진을 얹어 준다면 훨씬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련만. 시승 중 연비는 8km/L 정도가 나왔다.
닛산 패스파인더는 연비 때문에 국내에서 패밀리카나 비즈니스 용도의 주력 SUV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패밀리 단위로 주말 여가를 즐기는 등 레저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꽤 괜찮은 선택이다. 넉넉한 실내와 강력한 파트타임 4륜 구동 시스템, 매끄럽고 조용하면서도 파워풀한 주행, 독일 SUV 대비 뛰어나 가격 경쟁력 등에 주목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 길을 찾아 어디로든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