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긴 하지만 오슬로를 떠나기 전 꼭 들러보고 싶은 곳으로 바이킹 박물관을 꼽았다. 타이틀이 북유럽 투어이고, 북유럽 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바이킹을 떠 올리는 건 당연한 순서라 생각했다.
바이킹 박물관은 오슬로 시내에서 남서쪽 시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월요일 이른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았다. 여기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주차는 역시 유료다. 주차 티켓을 미리 끊어 차 앞에 올려 둬야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사진에서 많이 봐 왔던 바이킹 선이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물살을 가르고 돌진할 기세로 꼿꼿이 서 있다. 하늘 향해 뻗어 올린 뱃머리의 예리함이 아찔하다. 순간 멍해진 상태로 잠깐 쳐다보고 있다가 아직 표를 끊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굳이 표를 끊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그 유명한 바이킹 선은 그냥 볼 수 있도록 전시가 되어 있다. 순간 이렇게라도 바이킹 선을 봤으니 그냥 돌아갈까 하는 유혹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표를 끊었다.
입장료는 성인 60 크로네, 우리 돈으로 1만 원이 좀 넘는다. 비싼 음식값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티켓 개찰을 하고 나서 당당하게 바이킹 선 앞에 마주섰다. 입구 쪽 맨 앞에 전시된 배는 9세기 여왕의 장례에 함께 수장되어 오랫동안 피요르드 바닥에 가라 않아 있던 것을 1904년에 발견해 인양 복원한 것으로 발견된 지명을 따서 오세베르크 호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천년 이상을 물 속에, 어쩌면 흙 속에 파 묻혀 있었지만 복원된 상태는 매우 좋아 보였다. 원래는 무슨 색이었을 지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모두 검은색으로만 되어 있다.
박물관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계단을 올라가서 바이킹 선의 윗 부분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맨 앞의 바이킹 선을 지나서 더 들어가면 배와 함께 출토된 다양한 부장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좌우에 2척의 배가 더 전시되어 있다.
좌측의 것은 고크스타 호로 이름 붙여진 전형적인 바이킹 선으로 이것 역시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다.
하지만 우측에 있는 배는 배의 바닥 몸체 부분만 남아 있을 정도로 많이 훼손되어 있는데, 이름은 투네 호다.
주변 벽에는 발견 당시의 사진과 발굴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다양한 설명 자료들이 걸려 있는데, 사실 읽을 수도 없을 뿐더러 마음이 급해 관심을 둘 수도 없었다. 급하게 사진으로만 담고, 나중에 한국에 와서 자료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입구 쪽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초라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그 옛날 바이킹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도 있는 박물관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실물 바이킹 선을 보존하고 있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에는 바이킹 선보다 더 위대한 거북선이 있지만 현재 단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으나 얼마나 안타까운가? 단 한 대 만이라도 발견된다면 정말 멋지게 박물관을 지어서 전 세계에 자랑할 텐데 말이다.
박물관을 나서며 서둘러 남으로 갈 길을 잡았다. 창 밖으로 아름다운 섬들과 바다도 스쳐 지나고, 멋진 다리도 건너고, 북유럽스럽게 여유롭게 돌아가는 고속도로의 모습에 취하기도 하면서 계속 남으로 달렸다.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들어섰지만 스웨덴에서는 어느 도시도 들를 계획이 없었다. 수년 전 볼보의 초청으로 예테보리를 방문해서 볼보 공장과 박물관 등을 둘러 본 적도 있어서 더욱 이번에는 스웨덴을 둘러 볼 여유를 만들지 않았다. 날씨는 계속 좋아서 푸른 하늘이 끝없이 이어졌다.
예테보리를 스쳐 지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스웨덴 서쪽을 따라 줄곧 남으로 향해 달려 스웨덴의 거의 최 남단에 있는 도시 말뫼에 이르렀다. 말뫼에서 외래순 해협을 건너면 덴마크 코펜하겐이다. 지도를 보고는 당연히 페리를 타고 건널 줄 알았는데, 왠걸 말뫼에서 해안쪽으로 향하자 저 멀리 꽤 긴 다리가 보인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맞아 보였고, 결국 다리를 건너는 것이 확실해 졌다.
그렇게 스웨덴의 남단 도시 말뫼를 떠나 다리를 건너 덴마크로 향했다.
다리는 우리 서해 대교를 연상케 했는데, 아무래도 서해대교가 더 늦게 지어진 다리인 만큼 서해대교 만큼 멋지진 않았다. 하지만 길이는 무척 길어 보였다. 다리를 다 건넜을 때 쯤 길 가에 여유 있는 공간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워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금 서 있는 곳은 섬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출발하자 이번에는 터널이 나타났다. 이 섬에서 덴마크 코펜하겐까지는 해저 터널로 연결된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 정말 재미있다. 그렇게 긴 다리를 지어서 해협의 절반 이상을 건너왔는데, 그 다리를 계속 이어가지 않고 이번에는 해저 터널이라니. 참 멋지다. 마냥 다리 밖에 생각해 내지 못한 내 단순함이 부끄러워진다.
덴마크로 들어섰지만 덴마크 역시 도시를 둘러 볼 계획이 없다. 코펜하겐은 정말 그냥 지나치기 아쉬웠지만 일정을 생각하면 아직 한 참을 더 달려야 한다. 그렇게 코펜하겐도 스쳐 지나고 계속 남으로 달려 코펜하겐이 있는 섬의 남단에 이르렀다. 이 곳에서 바다를 건너면 독일이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고, 빗 방울도 조금씩 떨어진다.
이번에 바다를 건너 독일로 가는 길은 뱃길이다. 페리를 타야 한다. 덴마크에서 노르웨이 스타방게르로 갈 때만 해도 페리 시간이며 운임이며 미리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예약도 했지만, 노르웨이에서 십 수 차례에 걸쳐 페리를 이용하면서 페리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예약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덴마크 남단에서 발트해를 건너 독일로 가는 페리는 노르웨이 국내에서 피요르드를 건너는 페리와는 달랐다. 시간마다 향하는 행선지도 달랐고, 독일로 향하는 배는 운항 간격도 꽤 길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 없이 페리를 타겠다고 선착장 앞에 줄을 서고 보니, 그제서야 저 멀리 전광판에 페리 일정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에 들어오는 배 편이 독일로 가는 배다. 야호. 이런 행운이 또다시. 만약 시간이 맞지 않았으면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고, 밤 10시에나 페리를 탔다면 오늘 예상 목적지인 함부르크까지 갈 수나 있었을까?
어쨌든 오래 기다리지 않아 도착한 페리를 탔고, 배는 그리 오래지 않아 발트해를 건너 독일에 도착했다.
함부르크로 향하는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가고 있어서 잠시 고속도로에서 내려 주유를 하고는 다시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그렇다. 고속도로다. 독일의 아우토반이다. 이 얼마 만에 다시 만난 아우토반인가?
아우토반에 올라서는 것은 축지법을 사용하는 것과 다름 아닐 정도다. 무제한 구간이 나타나면 170~180km/h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 일수다. 우리가 타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CLS 슈팅브레이크 350 CDI 라면 마음먹고 달리면 230km/h로 줄곧 달릴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달리면 연비가 나빠지기 때문에 마음 놓고 달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축지법을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함부르크로 들어서면서 야경이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큰 공업도시인데도 무척 아름다운 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밤 10시가 넘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슬로에서처럼 시내로 나가 차 안에서라도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밀린 작업도 해야 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함부르크는 그래도 독일이니 언젠가 좀 더 쉽게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길었던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이렇게 4개 국 땅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