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은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계기판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기본적으로 계기판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가운데 아래쪽 4각형 모니터에 있는 그림과 연관된 것들이다. 우선 현재 속도는 약 시속 84km다. 우측 게이지를 보면 순간연비는 30km/l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회전계가 없어서 현재 엔진이 얼마나 빨리 돌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중앙 모니터의 상태로 보면 현재 엔진은 정지해 있다. 시속 84km로 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비록 약간의 내리막일 수는 있겠지만 바퀴에 동력이 전달되면서 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엔진은 정지한 상태고, 휘발유는 전혀 소모되지 않고 있다. 바로 전기모터로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전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캠리 하이브리드는 전기자동차가 아니므로 외부에서 전기를 충전하지 않는다. 가솔린 엔진으로 주행하는 중에 순간순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기를 만들어서 배터리에 충전해 뒀다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아니었으면 그냥 사라졌을 에너지를 모아서 지금은 휘발유 대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이름.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하이브리드에 대해 다양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자동차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부터 시작해서 막연한 불안감 혹은 비현실적인 기대감 등 그 양상도 다양하다. 그래서 캠리 하이브리드를 소개하는 김에 하이브리드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하이브리드라는 말은 2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종이 합쳐진 것을 말한다. 하이브리드를 자동차에 적용하면 서로 다른 종류의 동력원을 한 대의 자동차에 함께 적용한 것을 말한다. 서로 다른 종류인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연기관 엔진에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이 있는 만큼 하이브리드 자동차에도 가솔린 하이브리드와 디젤 하이브리드가 모두 존재한다. 국내에는 최근에 디젤 하이브리드가 소개되기 시작했고, 과거 현대자동차가 LPG 엔진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바 있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158마력을 발휘하는 4기통 2.5리터 DOHC 듀얼 VVT-I 가솔린 엔진과 143마력을 발휘하는 전기모터가 함께 얹힌다. 두 동력이 함께 작동할 경우 최대 출력은 203마력이 된다. 그런데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사용되는 가솔린 엔진은 일반 자동차의 엔진과는 달리 출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효율이 훨씬 뛰어난 엣킨슨 사이클 엔진을 사용한다. 그래서 회생 충전이 많지 않은 고속도로 정속 주행에서도 효율이 뛰어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왜 탄생했나?
휘발유를 태워서 동력을 만들어 내는 엔진은 연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불과 20% 정도만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나머지 80% 정도는 모두 낭비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연소실에서 폭발할 때 열 에너지로 전환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운동에너지가 변속기와 각 종 연결 장치를 거쳐서 타이어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유실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동차가 정차해서 공회전하는 동안이나, 내리막을 내려갈 때 등 굳이 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데도 엔진은 계속 돌아가고 있어서 불필요하게 연료를 낭비하기도 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다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즉 어디선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연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에너지를 최대한 재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인 것이다.
어떻게 사라지는 에너지를 재사용하는가?
아주 쉬운 원리지만 물리나 공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발전기와 전기 모터는 동일한 장치라는 것이다. 그 장치에 외부의 전기를 흘려주게 되면 장치의 중앙 축이 전기에 의해서 돌게 되는데 이럴 경우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주는 전기모터가 된다. 반대로 외부의 힘으로 장치의 중앙 축을 돌려 주게 되면 거기서 전기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발전기다. 다시 말하면 장치는 하나이지만 외부에서 전기를 넣어주면 회전력이 만들어 지고, 회전하는 힘을 넣어 주면 반대로 전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마치 무슨 마술처럼 들리겠지만 그냥 단순한 과학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이런 전기의 마법을 엔진 자동차에 적용한 것이다.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해 달리고 있다가 감속할 때는 이미 달리고 있는 그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서 저장한다. 그러자면 발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발전기를 엔진과 바퀴 사이에 배치했다. 그리고 감속할 때는 엔진에 투입되는 연료를 끊어 버려서 더 이상 연료를 사용하지 않게 만들고, 회전하고 있는 바퀴의 회전력으로 전기모터를 돌리면 그 순간 발전기가 되어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감속 시 재생되는 전기는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 처음 들어간 에너지만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상당량 운동에너지로 바뀌어 자동차를 움직이는데 사용되었고, 운동에너지로 남아 있는 일부가 전기로 바뀌는 것인데 여기서도 손실이 발생하므로 이렇게 모아지는 에너지는 사용된 에너지에 비해 별로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아니면 그냥 사라져 버릴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다시 사용할 수 있느니 훨씬 이득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모아둔 전기를 필요할 때 발전기에 흘려주면 이번에는 발전기가 전기모터가 되어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 전기모터는 가솔린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혼자 움직이기도 하고, 가솔린 엔진에 힘을 보태 더 큰 힘을 내게도 해 준다. 이렇게 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같은 연료를 사용하더라도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다. 모 보일러 회사 광고처럼 같은 연료를 두 번, 세 번 사용하는 셈이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하이브리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토요타의 대표적인 하이브리드 패밀리 세단이다. 프리우스처럼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도 있지만,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모델에도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토요타 하이브리드의 뛰어난 기술력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캠리가 캠리 하이브리드로 바뀌어도 중량이 조금 늘어나는 것 외에 디자인과 공간에서 큰 변화는 없다. 캠리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늘어난 중량은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포함한 하이브리드 장비에 의한 것이지만 이 장비가 재생시켜 내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난 무게에 의한 손실에 비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이득인 것이다.
캠리 하이브리드를 재미있게 타는 방법에는 보통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에 더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휘발유을 사용하지 않고 공짜(?)로 달리는 상태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돈 버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다. 짠돌이다운 재미다.
큰 흐름에서 볼 때 공짜로 최대한 많이 달리기 위한 운전 원칙은 오직 한가지다. 가속할 때도 천천히 부드럽게, 감속할 때도 천천히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캠리 하이브리드가 다 알아서 해 준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휘발유 사용을 멈추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기를 더 많이 충전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운전하면서 돈 버는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출발할 때 엑셀을 급하게 밟으면 바로 엔진 시동을 걸어서 주행하지만, 배터리가 어느 정도 이상 충전된 상황에서는 엑셀을 부드럽게 밟으면 전기로만 출발하고 가속한다. EV모드다. 혼자 출발 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천천히 가속하는 것이 좋다. 계기판 좌측의 바늘을 보면서 파워 상태로 들어가지 않도록 엑셀을 조절하면 된다.
하지만 교차로에서 신호에 따라 출발할 때 EV모드로만 출발하기에는 가속력이 좀 부족한 편이어서 EV모드를 고집하면 주변 차들은 다 나가는데 혼자 늑장 부리며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이때는 초반에 엑셀을 충분히 밟아서 모터랑 엔진으로 함께 가속하고, 30~40km/h 정도 됐을 때 엑셀을 한 번 살짝 뗐다가 다시 부드럽게 밟으면 엔진 시동을 안 걸고 EV모드로 전환돼서 모터로만 충분히 주행할 수 있다. 그 순간부터는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 안 될 정도로 가속이 가능하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굳이 동력이 필요 없는데 에너지가 낭비되는 상황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주행 중 엑셀 페달에서 발을 떼면 즉시 엔진을 멈추고 발전을 시작한다. 다시 가속을 위해 엔진이 시동을 걸고 주행을 시작해도 차체가 울컥거리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모든 변화는 몸으로는 감지하기 힘들고 계기판 모니터 등을 통해서나 확인할 수 있다.
캠리 하이브리드가 얼마나 짠돌이 같은지, 오르막을 올라갈 땐 전기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니까 엔진을 돌리게 되는데, 오르막을 오르는 중간에도 교통 흐름에 따라 잠깐 엑셀에서 발을 땔 때가 있는데, 그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고 충전을 한다. 마치 틈만 나면 엔진을 세우고 충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돈 버는 재미가 정말 남다르다.
내리막 길은 거의 공짜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리막을 갈 때 엑셀을 살짝 만 밟고 가면 80km/h 이상에서도 엔진 없이 전기로만 주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전기로 가는 중에도 엑셀을 살짝 뗄 경우가 많은데, 그 순간에는 역시 즉각적으로 충전한다. 결국 충전하고, 충전한 전기 쓰고, 충전하고, 전기 쓰는 반복이 이뤄진다. 물리적으로는 내리막의 꼭대기에서 출발하면 그 위치에너지를 모두 운동에너지와 전기에너지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여러 신차들에 탄력 주행, 혹은 코스팅 기능이 적용되고 있는데, 가속을 멈추고 관성으로만 달릴 때, 엔진을 아이들링 상태로 유지해주는 기능으로 연비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캠리 하이브리드는 이런 상황에서 아예 엔진을 꺼버리고, 전기까지 만들어내니 연비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효율적인 것은 당연하다.
감속할 때도 요령이 있다. 감속해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미리 예측해서 일찍 엑셀 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아서 오래 유지해야 충전이 더 많이 된다. 엑셀 페달에서 발을 떼기만 해도 충전이 시작되긴 하지만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주면 좀더 적극적으로 충전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너무 강하게 밟으면 충전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현재 달리면서 가지고 있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많이 바꾸지 못하고 그냥 버리게 된다. 따라서 계기판 좌측의 바늘이 충전 눈금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도록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고 오래 그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좋다. 고속으로 달리다 천천히 브레이크를 오래 밟아서 정지하는 경우 배터리에 눈금이 쑥쑥 올라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결국 전방 주시를 잘 하고 있다가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엑셀을 일찍 떼고, 탄력주행 상황을 오랫동안 길게 가져 갈 수 있는 게 돈 버는 습관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기자동차로 가기 위한 과도기라거나 디젤 엔진에 비해 합리적이지 않다는 등의 주장이 있긴 하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과학이 만들어 낸 정말 멋진 에너지 재활용 시스템임에 틀림없다. 시스템 가격 면에서 디젤 엔진 가격과 비슷하고, 연비도 비슷하고, 스포티한 주행 면에서는 불리하지만 정숙성 면에서는 월등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하이브리드라고 모두 성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회생시킬 수 있어야 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가솔린 및 전기를 사용해야 연비가 더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토요타가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는 이견이 없다. 캠리 하이브리드가 주는 또 다른 운전의 재미가 더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