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 박기돈 모터리언 편집장]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독특한 감각이 찾아온다. 이곳은 단순한 자동차 전시관이 아니다. 독일 제조업의 기틀을 다진 벤츠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예술적 자동차들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메탈릭 실버의 독특한 외관을 가진 박물관 건물은 외부에서 보면 세 개의 나선형 구조가 얽힌 듯한 독특한 형상이다. 실내로 들어가면 9층에 걸쳐 펼쳐진, 138년에 달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역사가 방문객을 기다린다. 가장 먼저 1886년 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만나게 된다. 마차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점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오르면,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차에서 시작된 이동수단은 이제 수백 마력의 엔진을 품은 슈퍼카로 진화했다. 목재 프레임과 쇠로 된 바퀴를 가진 초기 자동차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투박했지만, 그 속에서 점점 발전해가는 기술의 흔적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
벤츠 박물관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진보만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심플릭스 40PS와 같은 초창기 모델부터 1936년의 500K 스페셜 로드스터, 그리고 전설적인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까지. 이 차들은 단순한 탈것이 아닌,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 곡선, 디테일 하나하나가 마치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특히, 벤츠의 레이싱카 전성기를 상징하는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는 그 자체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이 실버 애로우는 메탈릭 실버 컬러로 마감된 차체를 통해 빛과 속도의 상징이 되었다. 은빛의 차체는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벤츠가 레이싱 무대에서 전설적인 역사를 써 내려간 상징이다.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수십 대의 레이싱카들은 마치 트랙을 질주하는 듯한 생생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클래식카들은 그저 옛날의 기념품이 아니다. 전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이 감탄할 만한 진귀한 모델들로, 과거의 영광을 복원해 온전히 보존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탔던 방탄차 230G 파파모빌 ‘SCV7’, 히로히토 일왕의 ‘770 그랜드 메르세데스’,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500SL’ 등 역사적인 인물들과 함께한 차량들도 그 의미를 더한다.
슈투트가르트 인근 펠바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 센터’는 또 다른 시간 여행을 선사한다. 1993년에 문을 연 이 센터는 벤츠가 자랑하는 클래식카들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공간이다. 클래식카 애호가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이곳에서는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차량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의 복원 작업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원형 그대로를 되살리는 작업이다. 작은 볼트 하나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전 세계에서 부품을 찾아내는 것이 기본이다. 혹여나 찾지 못한 부품은 직접 만들어 내기도 한다. 클래식 센터는 벤츠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을 통해, 수십 년을 넘어 지속되는 품질과 명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복원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기록으로 남겨진다.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작업이 있을 만큼, 복원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노력 덕분에 벤츠의 100년 전 모델들이 지금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과 클래식 센터는 단순히 자동차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벤츠가 걸어온 시간 속에서 어떻게 혁신과 예술이 결합되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박물관을 거닐다 보면, 이곳에 전시된 차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역사를 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다.
2006년 개관 이후 13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다.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단순한 오래된 자동차가 아닌, 벤츠가 지닌 역사적 유산과 그 유산을 통해 얻은 영원한 가치다. 벤츠 박물관은 시간을 넘어 전설을 이어가고 있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