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흠 잡을 것 없는 자동차도 시간이 지나면 새 모델로 진화해야 한다. 그럴 때 개발자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까? 3세대 X5가 등장했다. 1세대 X5는 스포츠카 같은 느낌의 주행 성능으로, BMW가 만들면 SUV도 스포츠카가 된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 X5는 SUV라는 말 대신 SAV(Sport Activity Vehicle)라는 용어를 사용해 자리를 잡았다. 2세대 X5는 SAV에 연연하지 않고 SUV 본연의 편안함을 더 강조한 모델로 개선됐다. 이런 상황에서 3세대는 또 어떤 변화로 더 나은 X5를 선보일 수 있을까?
경남 남해와 전남 여수 구간에서 BMW 3세대 X5를 시승했다. 사실 BMW의 최신 모델 여럿을 골고루 시승할 수 있는 시승회였지만 짧은 시승 시간 동안 이것 저것 다 타 봐서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소개하기 힘들 것 같아서 X5를 집중적으로 시승했다. 집중적이라고는 해도 1박 2일 기간 동안 주어진 시승 시간은 2시간여에 불과해 넉넉하진 않았지만, 훌륭한 2세대 X5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는 시승이었다.
우선 디자인 이야기를 하자면, 큰 틀에서 변화는 없다. 동일한 휠베이스에 차체 길이가 32mm 길어지고, 키가 3mm 낮아졌다. 비례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만일 두 대의 실루엣만 포개보면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거다. BMW 측에서는 최적의 균형을 갖췄기 때문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자도 충분히 공감한다.
디자인을 자세히 뜯어보면 변화는 많다. 헤드램프 디자인이 바뀌었고, 범퍼를 X 형상으로 디자인한 것이 독특하다. 범퍼 좌우에는 에어 벤트를 뚫어서 펜더 쪽 에어 브리더로 공기를 흘려 보내는 기능을 더해 에어로 다이나믹을 강조했다. 옆모습에는 뒤 펜더 위에 캐릭터 라인을 하나 더 추가했고, 루프 끝 부분에는 리어 스포일러에 에어로 블레이드를 더했다.
이런 각각의 변화들은 모두가 기능적으로 개선된 부분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외관 디자인이 무척 복잡해진 느낌이다. 작은 선들이 너무 많다. 불필요한 것들을 가능한 뺌으로써 선을 단순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보다는 필요한 것들을 계속 덧댄 느낌이어서 별로 매력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인테리어도 큰 틀에서의 변화 없이 세부적인 면에서 변화를 주었다.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최근의 다양한 BMW 모델들을 통해서 많이 익숙해진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굳이 이전 X5의 실내 사진과 비교해 보면 ‘틀린 그림’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긴 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센터페시아에 박혀 있던 모니터가 데시보드 위로 돌출한 것과 i 드라이브가 신형으로 바뀌면서 윗면에 터치패드가 적용된 것 정도다. 10.25인치 풀 컬러 대형 모니터 역시 세단 모델들에서 이미 경험한 터라 별로 새로워 보이지 않지만, 기존 X5에 비하면 좋은 개선이다. 특히 전방 카메라 영상을 보여줄 때 좌우 영상이 단절 없이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 눈에 띈다. 어라운브 뷰 모니터 영상도 깔끔하다. i 드라이브는 터치패드에 손으로 쓴 한글도 곧잘 인식한다고 하는데 테스트해 보지는 못했다. 손가락 두 개로 지도를 줌인, 줌아웃 할 수도 있지만 기존 지도에서는 안되고 별도의 모드로 전환했을 때만 가능한 점은 좀 불편하다.
기어 레버 주변은 새로운 i드라이브 외에도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와 카메라 영상 작동 버튼, HDC 버튼 등이 더해지면서 상당히 화려해졌다.
편의장비로는 풀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20GB 하드디스크, 360도 서라운드 뷰, 열선 스티어링 휠, 파노라마 루프 등이 마련된 반면, 냉방시트가 없고, 키리스 엔트리에 해당하는 컴포트 억세스가 50d에만 있고, 30d에는 없다. 블루투스 음악 스트리밍은 여전히 스마트폰 내의 음악은 재생이 되는데, 멜론 등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은 재생이 안된다.
X5로는 처음으로 이번에 7인승이 추가되었다. 5인승과 7인승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전동식 테일 게이트는 기존처럼 상하가 나뉘어 열려 매우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3.0리터 직렬 6기통 트윈파워 터보 디젤 엔진이 최고출력 258마력/4,000rpm, 최대토크 57.1kgm/1,500~3,000rpm을 발휘한다. 기존 엔진보다 13마력과 2.0kgm가 증가했다. 변속기는 BMW가 자랑하는 자동 8단이다.
3세대 X5는 차체에 초고장력 강판, 사이드 패널에 열가소성 플라스틱, 보닛에 알루미늄, 인스트루먼트 패널에 마그네슘을 적용하는 등 경량화를 통해 몸무게를 약 40kg(독일기준) 정도 줄였다. 그런데다 출력이 소폭 상승하면서 주행 성능이 한층 개선됐다. 제원상으로도 0~100km/h 가속 시간이 기존보다 0.7초 줄어든 6.9초를 기록한다.
실제 주행에서도 몸 놀림이 한층 가벼워진 느낌이 확연하다. 어떤 영역에서도 가속 페달에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서스펜션도 2세대에 비해서는 좀 더 예리해진 느낌이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여유가 많이 배어있다.
기어 레버 옆의 버튼으로 드라이브 모드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에코 프로 모드에서는 코스팅 기능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주행 중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회전수를 아이들링 수준으로 떨어뜨려서 연료 소모를 줄이는 기능이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살짝 만 들어도 회전수 바늘이 즉시 뚝 떨어지는 반응이 상당히 반갑다. 하지만 회전수가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가속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을 때 회전수 회복이 조금 더딘 지 약간의 머뭇거리는 느낌이 나타난다. 포르쉐 등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반응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1세대 X5가 4.4 가솔린 엔진을 주력으로 단단한 하체와 어울려 스포츠카와 같은 달리기 실력을 뽐냈던 반면, 2세대는 국내에 디젤 엔진이 주력으로 판매되면서 1세대의 SAV 성격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편안하고 넉넉한, 그러면서 도심 생활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SUV가 되었었다. 그리고 3세대에 와서는 여전히 디젤 엔진이 주력이긴 하지만 조금은 더 초대 X5의 매력을 되살리려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3.0리터 디젤 엔진 버전은 여전히 BMW다운 럭셔리 SUV의 느낌이지 SAV를 강조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BMW가 X5를 SAV로 강조하는 데는 앞•뒤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분배하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인텔리전트 xDrive를 장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전, 후륜의 구동력을 0 ~ 100%까지 능동적으로 조절해 줌으로 험로 주행 뿐 아니라 도로 주행에서 보다 역동적인 주행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 X5에는 나침반, 바디의 롤링과 조향각 등 차량의 현재 주행 정보 등을 iDrive 모니터에서 새로운 3D 그래픽을 통해 보여주는 기능이 더해졌는데, 오프로드나 오지탐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엔 그다지 활용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BMW X5는 도심에 더 잘 어울리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럭셔리 SUV다. BMW가 만든 SUV답게 주행성능이 예리하고 역동적이어서 스스로는 SAV라 강조한다. 하지만 초대 X5의 그 충격적인 주행 성능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도 커서인지 지금의 X5는 너무 편하다. 시대가 변하니 그 흐름을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3세대 X5가 2세대에 비해서는 조금 더 다이나믹한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앞으로도 BMW라면 더 역동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다. 더욱이 X5보다 더 다이나믹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X6가 있고, 또 그 아래 새롭게 X4가 더해질 예정이니 이제는 BMW SUV 중에서도 취향에 따라서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지고 있다.